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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정책 2022-9월호 제45호]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한일관계 정상화의 길

등록일 2022-09-01 조회수 1,731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한일관계 정상화의 길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yjpark607@daum.net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15일의 광복절 경축사와 817일의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의 방향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생각을 밝혔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과거의 일본이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서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지만, 현재의 일본은 세계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면서 한일관계의 포괄적 미래상을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여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킬 것이며, “양국 정부와 국민이 서로 존중하면서 경제, 안보, 사회, 문화에 걸친 폭넓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해야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한일관계가 지난 정부 때 불거진 강제징용공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제와 위안부 합의의 재검증 문제와 같은 역사 이슈로 인해 국교수립 이후 최악의 관계에 처해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한일간 과거사 현안에 대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선 한일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는 원칙적인 언급에 머물렀었다. 그런데 817일의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보다 구체적으로 과거사 현안에 대한 해결 방식도 언급하였다. 대통령은 강제징용공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해 피해자들이 법에 따른 보상을 받게 되어있음을 소개하면서, “다만 그 판결을 집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문제의 충돌없이 채권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깊이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같은 대통령의 연설과 발언은 그간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며, 외교안보나 일본전문가들이 제시해온 대안들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필자를 포함한 국내의 대다수 안보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능력 증강 및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 경향에 대응하여, 한국이 한미동맹에 더해 한미일 안보협력의 태세를 강화해야 하며, 동맹국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적극 관여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해 왔다. 그런 차원에서 역사문제로 인한 양국간 갈등이 외교안보문제로 비화하는 사태는 회피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한 강제징용공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이해에 관해서도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바라는 전문가들은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의 한일간 기본협정을 고려하여, 일본 기업이 부담하게 될 부담을 한국 정부가 소위 대위변제의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제언을 제시한 바 있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은 그같은 전문가들의 제안을 주의깊게 수용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한일관계 정상화를 향한 원칙과 수순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광복절 경축사와 기자회견에서 표명한 입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한일관계 악화가 초래한 한국 국제적 위상의 위축>

 

지난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 한일관계에 관해 양국간 역사문제를 여타 외교 및 경제문제들과 분리하겠다는 소위 투트랙 기조를 밝혔고, 양국간 협력을 증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512월에 양국 정부가 발표한 위안부 합의를 재검증하겠다고 하였다. 결국 20181, 강경화 외교장관이 이 합의를 양국 정부간 공식적 합의로서 인정한다는 결론을 발표했지만,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조성한 화해치유재단을 일방적으로 해산하였다. 그에 더해 강제징용공 피해자들이 201810,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따라 미츠비시 등 일본 기업으로부터 위자료 1억원을 받을 수 있도록 되었다. 이같은 일련의 흐름에 대해 일본은 개인의 배상청구권 문제도 해결되었다고 암묵적으로 양국이 합의한 1965년 한일기본협정을 한국이 어기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한국에 대해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201810,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의 제주 국제관함식 참석을 허가할 수 없다는 정부의 방침이 결정되었고, 그해 12월에는 동해상에서 우리 측 해군 함정과 일본 해상초계기의 레이더 조준 문제가 불거지면서 양국 간 갈등은 안보분야에도 파급되었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20197, 전략물자 3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자, 당시 우리 정부는 양국간 군사정보공유협정인 지소미아 탈퇴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국내에서는 시민들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고,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국산화 노력이 경주되는 등 반일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해 졌다. 코로나 19의 여파가 있긴 했지만, 양국간 지속되던 학생과 시민단체, 지자체 간의 교류도 상당 부분 중단되었다.

 

다만 전후 최악의 관계로까지 치달은 지난 4-5년간의 한일관계를 되돌아 보면, 과연 양국간 관계 악화가 우리의 국가이익이나 국제적 위상에 무슨 도움이 되었던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방면에 걸친 한일간 관계 악화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국제적 존재감의 약화 내지 외교안보적 고립으로 이어졌다. 한일 양자 차원의 정상회의 및 다자간 회의체인 한중일 정상회의도 개최되질 않았다. 양국간 협력어젠다가 적지 않은 다자간 외교무대에서 한일간 접촉과 협력이 진전되지 않으면서 한국 외교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 기간 일본은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참가하면서, 미국과 더불어 호주 및 인도 등과 쿼드를 결성하고, 나아가 영국, 프랑스 등과 외교안보적 협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국제안보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쿼드 참가 등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국력 수준에 걸맞는 국제안보질서에서의 존재감을 보여주질 못했다. 결과적으로 한일관계 악화는 한미동맹의 강화에도 역행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지소미아 탈퇴 시도는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미일간 안보협력을 기대하는 미국측의 우려를 자아내며 한미동맹 차원에서도 긴장감을 조성한 것이다. 한국 내에서 일본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에서도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대일 공공외교 차원에서도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기도 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여건을 고려한다면 한일관계 악화는 한국의 안보역량을 크게 손상시킬 수 있는 자충수에 다름아니었다. 20192, 북미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핵 및 미사일 능력 증강의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승전기념일 연설이나 김여정 부부장의 연설에서 보여지듯, 공세적 대남정책 경향마저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경직되게 주장하며 남중국해 및 타이완 방면에 대한 해, 공군 활동을 급증시키고 있고, 이같은 공세적 군사활동은 한국의 국가안보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북한의 핵능력 강화, 미중간 전략적 경쟁 심화 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중국의 현상변경적 대외정책, 그리고 올해 들어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격화 속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일본과 협력하면서, 공동의 동맹국인 미국과 더불어 한반도 및 글로벌 안보정세의 안정을 도모해야 했었다. 그러한 양국 관계가 지난 4-5년간 악화일로를 걷게되면서, 경제력과 군사력 측면에서 세계 10위권에 도달했다고 평가받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스스로 약화시켰고, 국제안보질서에 대한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살리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한일 양국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동협력해야 한다는 방향을 재천명한 것은 우리의 국가이익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한일관계 정상화의 수순과 과제>

 

다만 악화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세심한 정책적 노력과 수순이 필요하다. 우선 양국간 관계 악화의 계기가 된 강제징용공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양국간 합의 문제에 관해, 한국 정부는 1965년의 한일기본협정, 그리고 201512월의 위안부에 관한 기존 양국간 합의를 준수하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동시에 강제징용공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행될 경우 일본 기업이 받게 될 부담을,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일본에 대한 주권문제의 충돌없이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관계 전문가들이 제안한 것처럼 우리 정부가 그 부담을 대신하는 소위 대위변제의 방식이 강구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지난 정부가 일방적으로 해산시켰던 화해치유재단을 복원시키는 것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 재개 및 일본과의 신뢰 재구축 차원에서 적극 고려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일 양국간 역사 및 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기존에 한중일 3국간에 실시해오던 캠퍼스 아시아 사업이나, 동북아역사재단 등을 통해 실시해오던 역사 공동연구 사업들도 국제협력 증진의 차원에서 재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강제징용공이나 위안부 피해자들,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안보면에서는 북한의 핵능력 증강, 그리고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한미동맹 강화에 더해 한미일 안보협력의 복원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간 중단되었던 한미일간 대북정책 공동협의, 그리고 대잠 및 미사일 공동방어 훈련도 재가동되어야 한다. 일본이 주최하는 202211월의 국제관함식에도 적극 참가하여 안보적 신뢰구축을 추진해야 한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토대 위에서 핵능력을 증강하고 있는 북한, 그리고 현상변경적 대외정책을 추진하려는 중국에 대해 양면적 정책, 즉 억제태세의 강화와 더불어 관여정책의 지속을 동시에 추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전력 증강에 대해서 한국과 일본, 호주 등은 비핵국가로서 각각 미국으로부터의 확장억제를 개별적으로 제공받아 있다. 차제에 한국, 일본, 호주 등이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미국과 더불어 가칭 확장억제 공동연대를 구성하여, 나토 국가들과 같은 핵공유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대북 핵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적극 검토할 만 하다.

 

중국은 경제 측면에서는 제1의 무역상대국이지만, 안보측면에서는 그 공세적 정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 인도 등이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유사한 입장에 놓여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 및 일본, 호주, 인도 등과 더불어 경제적으로는 기회이지만, 군사적으로 잠재적 위협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공동의 대응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지난 4-5년간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던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 안보협의체에 적극 참가하여, 공동의 대중 인식과 정책을 마련하는데 협력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중국도 참가하는 양자간 혹은 다자간 협의를 통해 지역 질서 전체적인 안정과 상호 신뢰를 증진하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될 것이다.

우리와 일본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개방된 시장경제, 안보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 등 많은 국가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우방 국가이다. 그러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우리의 외교적, 안보적, 경제적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적 위상을 증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표명된 대통령의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재구축의 방향 제시가 우리의 국가이익을 증진하고 국제적 위상에도 부합하는 외교안보전략 대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