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커스

일본수출규제조치에 대한 평가와 대응 방향 [정세와 정책 2021-8월호-제29호]

등록일 2021-08-02 조회수 6,700

일본수출규제조치에 대한 평가와 대응 방향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jincs@sejong.org

 

일본이 반도체소재 등에 수출규제조치를 한지 2021년 7월로 2년이 되었다. 2019년 7월 1일 발표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는 두 가지 내용이었다. 첫째 화이트 국가들에게 주던 혜택을 한국에게는 더 이상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주요전략수출품목인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그리고 스마트폰 등의 화면에 사용되는 불화폴리이미드의 3개 품목을 개별허가로 변경한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에 대한 한국정부의 초기 대응은 한국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일본을 배제하고 한일군사보호협정(GSOMIA)의 연장 중지를 선언하였다. 또한 첨단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WTO에 제소하는 강경자세를 취하였다. 그리고 문 정부는 탈일본화를 추진하기 위해 소재,부품, 장비 산업 육성에 57천억원(5600억엔)의 예산을 집중 배정하였다. 그렇지만, 바이든 정부의 탄생과 더불어 한국 정부의 대응도 변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반 강경자세로 일관한 지소미아는 결국 연장되었고, 일본정부가 주장하는 수출규제조치 개선사항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일본의 요구사항인 1)한일정책대화 지속  2) 재래식 무기에 대한 캐치올 규제에 대한 정비 3)수출관리조직과 인력 보충 등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수출규제조치를 지속하여 한일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이번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일정상회담을 추진한 문정부도 한일간 현안 해결의 우선과제로 수출규제조치 철회를 들고 있다. 이 글에서는 수출규제조치의 이후의 평가와 한국의 대응 방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수출규제조치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 

 

 

 

 2년 전 일본의 수출 규제 발표 이후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오히려 자생력을 키웠다고 한국 정부는 평가한다. 수출규제조치 품목의 대()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다변화와 더불어 국내 수요·공급기업간 협력이 확대되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민·관 합동 노력으로 3대 품목의 공급망 안정화를 달성했다고 강조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체 소부장 산업에서 대일 의존도는 20191~516.8%에서 20211~5월에는 15.9%0.9%p 하락했다. 품목별로 보면 불화수소의 경우 20191~5월 대일 수입액은 2840만 달러에서 국내 업체 생산 확대 등에 힘입어 올해 1~5월에는 83.6% 급감한 460만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구체적인 지수로 불화폴리이미드는 대체소재 채택 등으로 대일 수입 비중은 사실상 '0'으로 감소했다.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왔던 EUV 레지스트는 벨기에산 수입을 12배 늘리는 등 공급망 다변화로 대일 의존도가 50% 이하로 내려갔다. 같은 기간 '100대 핵심품목'에 대한 대일 의존도 또한 31.4%에서 24.9%로 약 6.5% 줄어들었다. 특히 이들 품목에 대한 대일 의존도는 2019년을 기점으로 감소 추세가 3배가량 빨라졌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일본의 설명은 다르다. 일본경제신문(2021/06/25)에 따르면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는 다시 커졌다는 것이다. 반도체 제조 장치 등의 수입 증가로 1~5월의 대일무역적자는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한 100억 달러(11100억엔)였다. 13개월 연속으로 전년 동월대비 적자 폭이 늘어났다는 것을 지적한다. 따라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이후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탈일본 정책은 아직 멀었고 문정권의 정책 또한 성공이라고 볼 수 없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양국의 평가가 다른 것은 서로가 유리한 통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양국 모두 수출규제조치가 한국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에 큰 충격을 주지 못한 사실은 인정한다. 개별허가로 변경된 전략 3품목 중 불화수소는 실제로도 수입량이 감소하였다. 하지만 불화수소는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수입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국산화율도 높았기 때문에 무역보복 효과는 크지 않았다. 포토레지스트와 불화폴리이미드는 규제하고 있는 사양이 한국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사양에 해당하지 않았다. 실제로 포토레지스트와 폴리이미드필름의 수입량이 줄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불화수소와 마찬가지로 무역보복의 효과가 크지 않았다. 올해 1~5월을 보면 포토레지스트와 불화폴리이미드는  수출규제조치 이전시기보다 오히려 늘었다. 수출처를 잃고 싶지 않은 일본기업과 싼 가격으로 질이 좋은 소재를 적절한 타이밍에 확보하고 싶은 한국기업의 의도가 맞아떨어지면서 한일 기업협력은 지속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일본에 대한 수입의존이 단시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것에는 양국의 생각이 일치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일적자의 최대 요인은 반도체 제조장치의 수입 증가였다. 1~5월의 수입액은 29억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55% 늘었다. 반도체 재료를 포함한 정밀 화학 원료의 수입도 12% 늘었다.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등을 이유로 삼성전자 등이 생산 설비 투자 확대를 발표하며 일본의 제조 장비나 소재를 수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산화는 일부에 그쳤다. 문 정권은 일부에서 국산화 실현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일무역적자의 확대를 보더라도 한국의 구조적인 한계는 여전하다. 대일적자가 확대된 것은 일본이 소재를 수출해서 돈을 벌고, 한국은 그것을 사용해 완성품을 수출하는 구조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기술축적이 필요한 소부장 산업 특성 상 2년 내 R&D성과가 도출될 수 없는 한계는 여전하다. 대일무역적자가 확대된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한국 기업이 싼 가격에 질 좋은 소재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은 경제의 세계화 속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3품목 수출규제조치의 영향은 별로 크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조치로 절차나 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다.또한 수입처의 우회루트로 인한 코스트가 상승하였다. 한일관계의 악화로 인해 상호의존의 이점이 불확실성으로 바뀐 것도 문제이다. 결국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는 양국의 과거사 갈등으로 인해 양국의 경제적 후생을 감소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수출규제조치가 풀리지 않는 이유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의 배경에는 2018년에 한국대법원이 내린 강제징용공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판결이 영향을 미쳤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강제동원문제)와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2019년 7월 세코 경제산업대신이 밝힌 이유를 보더라도 강제동원문제와 관련된 것은 명백하다. 일본이 주장하는 한국 수출규제조치의 이유로는 첫째 한국의 캐치올 규제가 불충분함에도 한일간 충분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둘째 한국의 수출관리에 부절적한 사안이 발생, 셋째 강제동원문제 등에 한국이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 넷째 한국과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수출관리를 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2019년 이후 한일 양국의 교섭 추이를 보더라도 한국정부는 일본이 수출규제조치 당시 열거한 문제점을 법 개정이나 조직개편 등으로 이미 해결했다고 주장했음에도 일본정부는 적절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관계자는 일본이 수출규제조치를 해제하지 않는 것은 일본 스스로 강제징용공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는 꼴이다라고 보고 있다. 강제징용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도 철회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수출규제조치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과거사를 둘러싼 외교 협상이 우선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한국 정부는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한일정상회담을 시도했으나, 그 마저도 무산되었다. 현재 한일관계에서 양국의 불신과 현안에 대한 입장 차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논의하고 있건만 불신은 쌓이고 있는 형국이다. 도쿄올림픽을 한일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겠다는 문정부의 주장에도 스가 정부는 한국이 강제징용문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전된 제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대화는 할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일본에서는 문 대통령과 대화를 하더라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불신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실 도쿄올림픽이 무관중으로 어렵게 개최되는 만큼 이웃국가인 한국 정상이 직접 방문해 축하해주는 것은 일본도 원하는 그림일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문대통령의 방일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청와대 또한 일본이 한일관계 개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인상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불신은 심하다.     

 

 

  그리고 현안에 대한 견해차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문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모든 현안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가장 시급한 현안부터 최소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정부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해제하고, 한국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운용을 지속하는 것으로 한일관계의 물꼬를 열자는 것이다. 문정부가 생각하는 현안인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는 일본이 원하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일본의 분위기는 한국과 너무 다르다. 일본 스가정부로서는 문대통령이 제시한 조건부 방일은 대화의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대답을 유보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 정치권의 분위기는 일본이 원하는 현안에 대한 해법과는 너무 달라 황당하다는 인식조차 존재한다. 따라서 일본 정부관계자들은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스가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만을 전달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교섭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은 이웃인 한국의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을 축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스가총리는 도쿄올림픽을 무사히 치르는 것이 최대의 과제이다. 도쿄올림픽의 성공 여부에 따라 자신의 정권의 운명도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대통령의 조건부 방일은 스가총리에게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문 정부가 대화의 실마리로 수출규제조치해제와 지소미아의 동시 해법을 주장해도 일본이 이에 응하지 않는 배경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대응 방향

 

 

 

 한국이 수출규제조치를 풀기 위해서는 현재 복잡한 현안을 풀기 위한 전략적 발상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수출규제조치를 풀기위해 미국의 역할에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한일 양국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상당기간 수출규제조치 해제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여진다.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교훈을 되새겨볼 때 미국 바이든 정부가 한일 양국을 중재하기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2015년 당시 미국은 과거사 문제에 관여하기를 꺼렸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한·일 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조 바이든 행정부도 똑같다. 2015년에는 위안부 문제만 해결하면 양국 관계의 큰 허들을 넘을 수 있었다. ,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사를 넘어 한·일 안보 협력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 결과는 한·일 양국의 대립을 격화시켰다. 더욱이 아베 신조 총리가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공세로 나서면서 양국의 대립은 경제·안보 부문까지 확산됐다. 이로 인해 바이든 행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는 더욱더 어렵게 됐다. , ·일이 타협하더라도 그 협력이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마저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일 문제는 미국의 중재에 의존할 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직접 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다음 정권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스가 총리는 올림픽의 성공 여부에 따라 연임이 어려울 수도 있어 한국에서는 포스트 스가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러나 포스트 아베인 스가 총리가 그렇듯 포스트 스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 일본의 정치 상황은 혐한에 치우쳐 대한(對韓) 강경론이 오히려 먹히고 있다. 앞으로 일본 여론이 급변하지 않는 한 일본 정국은 한국에 유리하지 않다. , 일본의 다음 정권도 한국에 과거사 문제 해결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일본은 문 정권 이후 보수 정권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인 박근혜 대통령 시기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태도는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던 박 정권의 주장이 이를 대변한다. 내년에 설사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회가 더불어민주당으로 장악된 상황에서는 새 정권이 대일 유화정책을 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진보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문 정권이야말로 스가 정부의 대화 상대다. 스가 총리가 문 대통령과 만나 과거사 문제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야 관계 개선의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서로를 냉정히 보면서 관계 개선의 토대를 마련할 때다.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는 정상회담도 하지 못한 최악이라는 역사적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양국 관계 관리에 힘써야 한다. 우선, 일본은 한국에만 해법을 요구하면서 대화를 하지 않는 나쁜 버릇을 버려야 한다. 한국 또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한 조치로 지소미아(GSOMIA) 연기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허상을 깨야 한다.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피해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합의를 도출할 때 수출규제조치 해제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지금의 피해자와의 소통은 단지 접촉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들과 소통할 때 한일 양국의 해법도 마련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피해자와의 대화 노력은 일본이 한국을 신뢰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수출규제조치를 해제하고 한국은 강제동원문제의 현금화 조치를 유예한다는 현상동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상동결이 이루어질 때 한일 대립은 완화될 수 있으며 한일 갈등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된다. 불신이 앞서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동시 행동을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