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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정책 2022-특집호-제8호] 2022년 한국·유럽 관계 전망

등록일 2021-12-24 조회수 1,278

2022년 한국·유럽 관계 전망

 

 

조홍식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chs@ssu.ac.kr

 

전통적인 외교·안보 영역에서 한국·유럽의 직접적인 양자 관계는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과 비교했을 때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리적으로 워낙 멀고 탈냉전 시기에 돌입하면서 유럽의 세계적 관심과 개입도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유럽은 여전히 한국의 국가전략과 외교에서 핵심적인 중요하다.

 

우선 유럽은 대외 의존적인 한국 경제의 사활에 결정적인 파트너다. 유럽연합(EU)은 수출과 수입에서 한국의 3대 파트너에 속한다. 게다가 유럽은 한국에 최대의 직접 투자 세력이다. 무역과 투자라는 세계 시장과의 관계에서 유럽은 한국의 손꼽히는 대상국이며 장기적 발전에 필수적인 지역이다. 2020년 영국이 EU에서 공식 탈퇴함으로써 EU 관련 다양한 통계는 축소된 바 있다. 그러나 영국을 포함한 유럽이라는 지역의 전체적 중요성은 여전하다.

 

다음은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세계 정치의 대립 구도에서 한국과 유럽은 유사한 전략적 입장이다. 유럽과 한국의 선택은 신냉전을 논하는 미·중 대립의 상황에서 결정적인 요소이며, 두 행위자 간 협력과 조율은 세계 정치에 큰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다. 2021년 미국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이후에도 미·중의 대립적 양상이 계속되면서 역설적으로 한·유럽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끝으로 유럽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Rule-based international order)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강대국으로 규칙보다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유럽은 미·중에 비교하면 세력도 부족하고 유럽연합 자체가 27개 회원국이 만든 규칙 기반 지역 질서이기 때문이다. 유럽이 환경이나 과학기술, 인권이나 국제 협력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의제를 제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2022년 유럽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우선 2021년 가을 독일의 총선에서 새롭게 등장한 연정을 분석한 뒤, 2022년 봄에 예정된 프랑스 대선을 전망한다.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라는 유럽의 쌍두(雙頭)기관차를 중심으로 유럽연합의 향방을 그려 본다.

 

독일의 신호등 연정출범

 

독일은 9월 총선으로 부분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의 대연정이 막을 내리고 신호등 연정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새 연정에서 사회민주당(적색)은 여전히 집권 세력으로 남았다. 대표적으로 올라프 숄츠 신임 총리는 이전 메르켈 정부에서 부총리를 역임했다. 자유민주당(노란색)과 녹색당이 새로 정부에 참여하게 된 정치세력들이다.

 

부분적인 정권 교체인 만큼 극단적인 정책의 변화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새로운 연정의 등장만큼이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사실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005년부터 16년 동안 유럽의 중심국가를 책임져 온 메르켈의 퇴장은 온건한 중도 노선에 대한 기대와 안정의 초석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새 연정이 출범하면서 가장 커다란 변화는 녹색당의 참여에서 비롯될 수 있다. 특히 녹색당을 대표하는 아날레나 베르보크가 독일의 외무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녹색당은 상대적으로 이상주의적이고 유럽 중심적인 외교 정책 노선을 지향해 왔다. 미국의 민주주의 결집 논리에 더 우호적이고 중국의 인권 침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예상하는 이유다. 물론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에 대한 비난도 적극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메르켈이 주도했던 조용한 외교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볼만한 대목이다.

 

독일은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유럽통합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 가운데 녹색당은 특히 통합에 적극적이었기에 프랑스와 협력이 가능한 영역에서는 유럽 강화의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다만 녹색당의 평화주의적 전통은 군사나 안보 분야의 유럽통합에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녹색당이 외교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독일의 외교가 녹색당 노선을 온전히 따르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입김을 행사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민주당은 재정과 경제를 담당하게 되었다. 유럽통합을 시장 중심의 경제통합과 정책 중심의 정치통합으로 나눈다면 자민당은 전자에는 우호적이나 후자에는 비판적인 노선을 유지해 왔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유럽연합이 채택한 공동채권과 같은 재정 정책의 통합 가능성이 이번 신호등 연정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민당의 전반적인 유럽 연대의 노선과 자민당의 시장 중심적 태도가 조율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안보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인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독일 외교의 향방도 관심의 대상이다. 메르켈은 러시아에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숄츠의 새 정부와 베르보크 외상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메르켈처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프랑스의 대선과 전략적 자율성

 

독일에 이어 프랑스도 2022년 봄에 대선과 총선을 연달아 치른다. 프랑스 정치에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여부다. 마크롱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는 유럽 중심국가 프랑스의 국가 원수이자 이미 5년 동안 유럽 정치의 경험을 쌓았던 베테랑으로 유럽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메르켈이 담당하던 역할을 이어받는 셈이다.

 

전반적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프랑스 정치사에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샤를 드골,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 등은 임기 7년제일 때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이다. 물론 니콜라 사르코지나 프랑수아 올랑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21세기 들어 단임으로 끝나는 대통령들이 등장했다.

 

마크롱의 재선을 쉽게 점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는 프랑스의 결선 투표제라는 정치 제도다. 1차 투표에서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표를 던지기에 재선 도전에 나선 대통령조차 결선 진출에 실패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2002년 조스팽 총리의 결선 진출 실패의 사례나 20174명의 후보가 비슷한 득표율을 보인 1차 투표의 결과는 이런 위험을 잘 보여 준다. 물론 프랑스 정치 지형에서 중도에 있는 마크롱은 결선에만 진출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무척 크다. 특히 결선 상대가 극우나 극좌라면 말이다.

 

마크롱은 지난 5년 동안 나름 적극적인 외교 정책으로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대부분 프랑스 대통령처럼 마크롱도 내정 공약의 의제로 당선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제적 활동으로 내정의 실패나 마비를 보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특히 노란 조끼’(Gilets jaunes) 운동이나 코로나로 원래 내세웠던 개혁정책을 제대로 펴기 어려웠다. 이번 대선에서 유럽의 건설이라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제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크롱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일방주의에 맞서 비판을 가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2019년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의 뇌사를 선언한 사건은 국제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프랑스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미국·영국·호주를 연결하는 오커스(AUKUS) 동맹의 출범으로 충격을 받고 잔뜩 화가 난 상태다.

 

마크롱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프랑스는 유럽을 지렛대 삼아 독자적인 안보 노선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대립하는 국제무대에서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은 자동으로 미국의 편에 서기 보다는 사안에 따라 선별적으로 대응하려는 의지를 표명할 것이다.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개념 뒤에는 프랑스의 영향력 유지라는 목표가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유럽연합

 

지난 두 해 동안 유럽연합은 영국의 탈퇴로 구조적인 변화를 맞았다. 영국이 빠짐으로써 EU의 규모가 눈에 띄게 줄어든 일이 대표적이다. 통계상 한국의 대유럽연합 수출은 202016% 정도 줄어들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영국의 탈퇴에서 찾을 수 있다.

 

브렉시트로 인한 질적인 변화는 영국의 세계전략과 유럽의 단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커스는 영국이 유럽의 틀에서 벗어나 인도·태평양으로 나간다는 전략적 의지를 반영한다. 브렉시트를 주장하던 세력의 글로벌 브리튼 전략인 셈이다. 유럽은 또 통합에 브레이크 역할을 해 온 영국이 빠지면서 많은 정책 의제가 오히려 쉽게 진행되는 변화를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년간 정책을 들 수 있다. 유럽은 그동안의 금기를 깨면서 공동채권이라는 제도를 신설했고 재정 정책의 통합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 유럽은 백신을 공동으로 구매하여 분배하는 위기 대응의 보건 정책도 코로나 대처 과정에서 발전시켰다. 영국이 유럽에 남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정책들이 추진된 셈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영향력이 영국이 빠진 유럽에서 크게 확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회원국의 수가 27개국에 달하기에 중심적 역할을 하는 국가의 목소리가 오히려 크게 작동하는 역설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 영국이라는 통합 반대 세력의 탈퇴는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추동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은 또 2010년대 경험한 존재론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스에서 시작한 유로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2015년 난민의 폭발적 증가를 터키와 협력하여 관리하였으며, 브렉시트의 충격을 큰 분열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비가 온 뒤 굳어지는 땅처럼 유럽 또한 더 강해졌고, 코로나 위기에서는 오히려 통합을 강화하는 추세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어부지리의 모양새로 임명되었다. 원래 유럽의 주요 세력인 기독교 민주주의나 사민주의 후보들이 모두 낙마하면서 부상한 위원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 기민당 정치인이지만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추천했고, 막상 독일 정치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선출 과정에서 드러난 취약한 정통성을 폰 데어 라이엔은 적극적인 활동과 유럽통합으로 보완하려는 듯하다.

 

2022년 출범할 한국의 새 정부는 이상에서 언급한 유럽의 역학을 제대로 파악하고 유럽과 전략적인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이 제기하는 의제에 친화적인 파트너와 회원국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유럽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핵심 세력을 파악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중 대립 속에 한국은 유럽이라는 동지로부터 큰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