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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종신 집권 가능성과 러시아의 대외전략 [정세와 정책 2020-8월호-제16호]

등록일 2020-07-27 조회수 6,551

푸틴의 종신 집권 가능성과 러시아의 대외전략

        홍현익(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hyunik@sejong.org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스탈린의 통치 기간보다 무려 7년이나 더 긴 36년간 집권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7월 1일 실시된 러시아 국민투표에서 67.97%의 높은 투표율과 77.92%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현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에 실시되는 대선부터 6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두 번 연속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부터 4년제 대통령 2번, 측근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두고 총리직을 맡아 사실상의 수렴통치 4년, 6년제 대통령 두 번에 이어 또 다시 두 번 더 대통령에 당선되면 84세까지 36년간 러시아를 통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구 집권을 가능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그는 상당한 제도적 정통성도 확보했다. 1월에 개헌안을 제안하고 3월 상하원의 심의와 압도적인 찬성, 헌법재판소의 승인을 받아 개헌을 확정지어 이미 신헌법은 인쇄되어 서점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재집권의 정당성을 중첩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투표일은 4월 22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7월 1일로 바뀌었다. 또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코로나 감염 예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7월 1일 이전 1주일 동안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모스크바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전자투표도 허용했다. 또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홍보를 실시하고 지자체들이 경쟁하듯이 스마트폰, 자동차뿐 아니라 아파트까지 경품으로 내걸고 투표를 독려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떠오른다. 1980년대 말부터 동구 공산 독재체제가 붕괴하고 소련이 해체되었으며 중동 및 구소련 공화국들에서도 색깔혁명이 일어나 국민들의 의사가 존중되는 정치체제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역시 형식적으로 다원적인 국민주권시대를 열었는데, 어떻게 푸틴은 36년의 장기 집권을 제도화와 함께 확보하였을까?

 

 먼저 이 질문에 대답한 뒤, 영구 집권 가능성이 큰 푸틴이 계속 러시아를 통치하면 어떠한 대외전략을 구사할 것인가를 살펴본다.

 

푸틴의 장기 집권이 가능한 이유

 

 경제가 군수산업에 치중된데다 비효율성과 낙후성을 지녔지만, 정치·군사·안보는 강건한 듯이 보였던 소련 체제가 1991년에 해체된 사유부터 살펴본다.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소련 체제의 정상화를 너무 서두르다 오히려 체제 해체를 자초했다. 즉 그는 공산당이 갖고 있던 독재 권력을 국가와 정부에 미처 다 이전하지 못한 채 체제 정상화를 시도하다 오히려 권력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이에 더해 소련이 여러 민족공화국들의 연합체라는 점을 경시하고 민족 자율성을 존중하다 강력한 민족주의의 원심력에 시달렸고, 결정적으로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크라브축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몇몇 정치인들이 자기 공화국들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허울뿐인 상위 정치체인 소련의 해체를 결정함으로써 연방을 소멸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러시아는 공산 독재에서는 벗어났지만 옐친 대통령이 경제 개혁을 위해 급진적인 시장화와 사유화를 추진하는 충격요법을 선택하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졌고 국민들은 극심한 인플레로 인해 연금같은 튼튼한 생활 기반을 한 순간에 상실했다. 1990년대에 러시아의 경제력은 반토막이 되었다. 더구나 지방 토호들이 러시아 경제의 버팀목인 석유, 천연가스와 각종 광물자원을 서방 자본에 헐값으로 넘기며, 다민족국가인 러시아의 중앙 권력이 약화되고 부패가 만연하자 지방세력들이 독립을 추구해 러시아가 또 다시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더해 미국과 서유럽은 소련과 동구 공산정권의 해체로 존재 사유가 희박해진 집단 동맹인 나토를 해체하기는커녕 완충지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동구는 물론이고 구소련 공화국들에까지 확대해갔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옐친은 KGB 출신으로 대통령 행정실 부국장·국장, 부실장, 연방보안부장과 국가안보회의서기를 거쳐 1999년 총리로 기용한 푸틴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푸틴은 집권 직후부터 러시아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해 체첸 반군들을 격멸했고 지방 권력을 통제하면서 중앙 권력을 강화해 국가 분열을 차단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의 에너지와 자원을 지키고 나토의 동진에 대해 강력히 대항했다. 서구에 종속되어 가면서 러시아의 국부를 빼앗기고 있으며 또 다시 조국이 분열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던 러시아 국민들은 이에 환호했다. 특히 8년간 2번의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러시아 경제력을 두 배로 향상시켜 2008년에 1990년의 경제력을 회복했다. 즉 붕괴해가고 있는 러시아의 통일성을 지키고 경제를 살려낸 정치지도자로서의 푸틴의 이미지가 그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이다.

 

 이 대목에서 러시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게 의미가 있다. 우리가 흔히 러시아를 팽창주의적이고 공격적이라고 보기 쉬운데, 역설적으로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천년 동안 수많은 외적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초창기부터 독일 및 스웨덴과 수많은 전쟁을 했고, 몽골의 침략을 받아 240년간 지배받았으며, 나폴레옹의 침입을 모스크바를 불태우면서까지 몰아냈을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시 조국을 도륙당하고 가장 많은 전사자를 냈으며 소련 해체 이후에는 외국 자본들의 경제 유린 또한 겪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러시아인들은 조국을 지키고 영광을 떨친 지도자들을 흠모하며 이반 대제, 피오트르 대제, 에카테리나 대제 등을 지도자의 표상으로 삼아왔다.

 

 또 언론이 상당한 통제를 당하고 있고, 야당들도 사실상의 정치 탄압을 받는데다 재정적인 여유도 없는 등 상당히 약화되어 있어 푸틴의 장기 집권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인 듯이 보인다. 

 

 이런 연유로 러시아인들은 국민 여론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지도자에 익숙하지 않고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를 안정되게 유지해주는 권위주의적이고 강한 지도력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진다. 미국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천지에 정착한 조상을 가지고 있어 권력 분립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강력히 원하는 것과 달리 러시아인들은 사회의 안정과 국가 안보를 확보해주는 강력한 통치를 바라는 것 같다. 장기 집권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다 푸틴 자신이 강압적으로 장기 집권을 추구하기보다 최대한 합법적인 제도를 구축하고 그에 따라 권력을 이어나감으로써 반대가 있더라도 세력화하는 결집 명분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또 제정 러시아와 소련의 영광을 누리다 갑자기 국가 체제 붕괴와 사회 혼란을 겪은 러시아인들에게 푸틴이 나타나 다시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이고 크림을 ‘회복’하며 유럽국가들은 물론이고 미국이 지도자들에게도 당당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지도자 상에 부합하는 통치자로 간주하는 듯하다.

 

 기술적으로는 2018년 연금개혁에 대한 반발과 2019년 삶의 질 하락에 대한 불만으로 대규모 저항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임기를 4년 이상 남기고 종신 집권 개헌을 추진함으로써 일찌감치 레임덕 현상을 막는 동시에 그의 권력욕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원모심려(遠謀深慮: 멀리까지 계획해 깊이 생각하다)'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푸틴의 거의 종신에 가까운 장기 집권 가능성은 상당히 커 보인다. 

 

푸틴 러시아의 대외전략

 

 국민들과 의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푸틴 대통령은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고창하면서 러시아의 주권과 국가안보를 지키고 중앙과 지방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며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강대국 지위와 영광을 되찾기 위한 대외전략을 수행해왔다. 푸틴은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핵 과점국가로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고 중국과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의 국제질서 독주 운영을 견제하는 동시에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강대국의 위상과 영향력 회복에 주력해왔다. 국가안보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과단성있는 결정을 내려 신속히 대응하되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도모하는 실용주의적 현실주의 기조에 따라 행동해 왔다고 평가된다.

 

 그의 첫째 소명은 러시아의 주권과 영토 수호와 관련된 국가안보인데 여기에는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회복한 크림의 영유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부터는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순서대로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둘째로는 구소련공화국들과의 우호관계 관리가 중요하다. 안보면에서는 1992년에 창설되고 현재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5개국과 함께 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와 협력을 증진하려 한다. 반면에 구소련공화국들 중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러시아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위해 나토 가입을 희망하고 있어 이를 저지하려 진력할 것이다. 경제면으로는 카자흐스탄 및 벨라루스와의 2012년 관세동맹에서 출발한 뒤,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 구소련 5개국이 함께 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잘 운영해 정치적·경제적으로 구소련의 영광을 재연하고자 한다.

 

 유럽국가들과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안정 기조를 유지하고 호혜적인 우호관계도 확대하고자 한다. 일단 코 앞에까지 다가온 나토의 전략적 공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전으로 응수한 결과 서방의 제재를 받게 되었는데, 작년 12월 푸틴이 우크라이아, 프랑스, 독일 지도자들과 휴전에 합의했다. 향후에도 러시아는 유럽국가들과의 관계를 잘 회복하고 독일 등 서유럽국가들과 에너지 및 교역에서 협력을 증진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의 크림 편입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제재에 대처하는 한편 독일과 협력해 발트해 해저 가스관(Nord Stream-2) 부설사업을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잘 운영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회원국이지만 이들을 미국과 분리 대응해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노리는 것이다.

 

 중국과의 ‘새시대 전면적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지속 발전시키면서 경제이익을 호혜적으로 증진하고 미국의 국제질서 운영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있다. 중국에게 서구에서 구입하지 못하는 S-400같은 첨단무기를 수출하고, 작년말 개통된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등을 통해 에너지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인 수익을 증진하는 동시에 서구와의 가스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시베리아·극동 지역 개발 동력을 확보할 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양국간 무역을 확대하고 중국의 일대일로와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간 협력 증진도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의 투자를 유치하는 한편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화웨이와 사업을 확대하고 미국이 홍콩보안법 제정에 보복조치를 가하는 가운데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등 중국과 대미 공동 견제 노선을 펼치고 있다. 군사부문에서는 2012년부터 연례적으로 중국과 함께 해상공동훈련을 시행해왔는데, 작년에는 중국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이란과도 함께 훈련을 시행했다. 또 중국과 함께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를 운영하면서 국제협력을 도모하고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의 독주가 지속되는 한 푸틴은 중국과의 협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다.

 

 그렇다고 푸틴이 모든 사안에서 미국과 각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물론 크림 편입으로 2014년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고 2019년 8월 미국이 중거리미사일조약(INF)를 탈퇴했으며 2021년 초 New START 조약도 파기하려 하고 있어 군사력 증강을 모색하면서 전략적 대응에 부심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는 긴밀한 유대감을 가지고 테러와의 전쟁이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체제 유지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트럼프는 푸틴과의 다양한 협력을 모색하길 원하고 대러 경제 제재도 완화해 주고 싶은 것으로 보이지만 미 의회와 언론의 견제로 인해 일정 수준 이상의 협력 도모는 자제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관찰된다. 만약 11월 대선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면 양국관계는 한동안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수년간 두드러진 변화는 러시아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한 것이다.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철수 움직임을 보이는 틈새를 공략해 이란과 시리아는 물론이고 쿠르드,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리비아에서 중동의 평화 중재자 및 안정자로서의 영향력 확대를 달성했고, 작년 10월에는 소치에서 아프리카 43개국과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큰 틀로 볼 때, 푸틴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주도를 인정하고 중앙아시아와 유럽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지지를 받는다. 단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은 확보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중재도 행하며 주로 경협을 통해 이익을 증진하려 하고 있다. 먼저 안보문제에 대해 러시아는 중국의 쌍궤병행과 유사한 3단계 해법을 제시해왔다. 북한의 핵 실험 및 미사일 발사와 함께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한 뒤, 한반도 평화협정과 비핵화 협상을 동시 진행하며, 마지막 단계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을 구축해 지역 국가 모두의 안보 우려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핵문제 해결원칙으로 안보리 외 개별국가의 대북 추가제재에 반대하고 상호 동시 조치와 단계적 해결을 원칙으로 제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푸틴은 2000년대 초에 김정일 위원장과 두차례 만난데 이어 작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의 안보 우려를 고려해야 하고 필요시 6자회담 재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작년 12월 유엔에서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미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해 북한이 핵과 중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중단하였으며 풍계리 핵 실험장을 붕락시켰음을 상기하면서 국제사회도 대북 제재를 완화해 줄 것을 주창하기도 했다.

 

 특히 푸틴의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대립을 지양하고 경제적·기능적인 협력을 통해 지역 평화를 확보하며 한·러와 남북·러간 철도연결, 가스관 부설, 전력망 구축 등 대형사업 등을 통해 호혜적인 경제 이익 증진을 모색하는 동시에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 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하며 평화통일도 환영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도 중견국의 선도 모범국가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한미동맹을 지키되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배치는 단호히 거부해야 하고, 남북 및 한·러, 남북·러 경협 증진을 보다 능동적으로 모색하며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구축을 추진함으로써 한미동맹과 함께 한국의 국가안보를 중층적으로 강화하고 경제적 이익을 배가하는 동시에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