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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민간교류협력, 가치지향․가치연대 중심으로 [정세와 정책 2019-10호]

등록일 2019-06-19 조회수 3,900


일 민간교류협력, 가치지향가치연대 중심으로 



조용래
(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

yrcho@gwangju.ac.kr

 


일 민간교류협력의 낙관과 비관

 

·일 관계가 가위 복합골절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일본의 반발, 11월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과 일본의 비난, 12월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을 둘러싸고 촉발된 갈등 등. 양국이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이렇듯 날카롭게 각을 세운 적은 없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비난을 넘어 아예 무관심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지난 5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한국영화로서 첫 수상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빅뉴스였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일본 미디어의 첫 보도는 겨우 단신으로 처리하는 등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그런데도 교류는 활발하다. 지난해 한일 상호방문은 처음으로 ‘10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양국 관계 악화와 무관하게 상호방문이 늘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2017년부터 재개되고 있는 3차 한류 붐도 주목을 끈다. 1, 2차 한류가 전통 미디어를 활용한 것이었다면 3차 한류는 유튜브를 비롯한 SNS, 즉 뉴미디어가 중심이다. 양국의 전통 매체가 한일에 대해 뭐라고 평하든 팬들은 뉴미디어로 한류를 즐긴다
문제는 상호방문 증가, 3차 한류 붐의 의미다. 양국 관계가 정치외교적으로 악화되고 있을 뿐 민간교류는 활발하니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이라고 볼 것인가. 그건 착각이다. 연 1000만 명이 양국을 오가고, K-pop에 열광하는 한류 붐이 넘쳐도 그 자체가 양국 관계 정상화의 지렛대가 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상호방문 증가는 관광, 음식, 여행 등의 편의성을 이웃나라에서 손쉽게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 주된 요인일 터다. 다양성을 좇아 K-pop에 열광한다고 한일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상호방문 증가, 한류 붐 등은 겉으로 활발한 교류처럼 보일 뿐, 속으로는 되레 무관심만 고착될 수 있다. 일 민간교류협력에 새로운 방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그 방향은 기존의 대중문화 교류와는 접점을 달리해야 하겠다.

 

주목되는 민간교류 사례와 그 특징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양국 간에는 수많은 민간교류가 벌어졌다. 그 중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온 민간교류, 나름 성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각각의 교류에서 관통하고 있는 공통의 특징을 따져보기로 한다.

1)희년(해방과 복권)을 향한 교류. 한 한국 교회와 한 일본 교회는 자매관계를 맺고(1979~2014) 양국을 오가며 23번의 공동수양회를 통해 함께 지내오면서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한 노력과 관련해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간 양 교회가 주로 추구한 주제들은, ‘우리에게 아시아는 무엇인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희년을 위한 행진’ ‘21세기 준비’ ‘아시아에 산다는 것등이었다. 이로써 양 교회는 각각이 직면한 문제와 함께 풀어가야 할 주제 등에 대한 인식을 환기(喚起)하면서 교류해 왔다.

2)노래로 빚어내는 하모니 교류. 한 일본인 성악가의 제안으로 2013년부터 시작된 한일 고교생 콘서트가 7년 째 이어지고 있다. 첫 슬로건은 노래하나울림()’이었고 노래와 화음이란 가치로 양국이 하나가 되자는 시도였다.

일을 오가며 열리는 고교생들의 무대는 양국의 시민사회, 학교, 언론 등의 협력을 얻어 진행된다. 단순한 고교생들의 무대 교류만이 아니라 양국 시민의 관심과 상호 이해로 연계되고 있다. 매년 무대의 마지막 대목이 무척 인상적이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김동진 곡)바닷가의 노래’(浜辺, 나리타 타메조 곡)를 두 나라 말이 고루 섞이도록 편곡해 참가자 모두가 함께 부르는 순서다.

3)반성과 화해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꿈꾸는 교류.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은 일본기독공조회와, 이 모임에 직접 참여해온 한국인 회원들 및 이 운동에 공감하는 한국인 참가자들이 더불어 1992년부터 결성한 한일기독공조회 모임이다. 지난 6월 서울에서 7번째 모임이 열렸다. 모임의 주요 주제는 양국 시민들의 반성과 화해 협력이다.  

위 세 사례의 공통점을 꼽아보면 이렇다. 첫째, 과거사 문제만을 거론하거나 일방적인 반성을 촉구하는 교류가 아니다. 둘째, 서로를 공감하며 화해, 평화, 하모니 등 새로운 공동의 가치를 추구한다. 셋째, 추구하는 가치가 일상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며 이를 위해 연대한다. 각각 자신들의 주장만 하기보다 새로운 제3의 가치를 제시하고 이를 공유, 지향함과 동시에 함께 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 교류의 중심을 이룬다 점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상대의 아픔과 기쁨을 나누겠다는 공유 노력이 전제된다. 홈스테이의 경험 축적도 그 하나다. 인적 교류가 늘면 자연스럽게 상대에 대한 배려와 관심도 커진다. 그들의 문제인식은 단지 한일을 넘어서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것으로 확장되어 왔다.

평화에 대한 공감, 인권과 평화구축을 위한 시민 간 연대도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이뿐 아니라 인구감소사회, 고령사회, 인공지능(AI) 사회, 1인 미디어 시대 시민사회의 역할 등 후기 산업사회의 공통이슈에 대해서도 각각의 가능성, 협력의 길을 찾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기업 간 경제교류나 지자체 간 교류협력 등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기 어렵다. 스스로 양국의 우호증진을 견인하기보다 거꾸로 양국관계의 우호 여부에 교류의 성패가 좌우되는 종속적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성공적 민간교류의 특징은 자발적이며 동시에 자체 공유 가능한 가치를 축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양국 관계의 현 상황과 무관하게 꾸준하게 확장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닌.

 

교류에 앞서 일본에 대한 편견부터 시정을

 

가치지향가치연대 중심의 민간교류를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리 내부에 만연된 일본에 대한 편견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일본 인식은 자못 상투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거나, 일본은 늘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담은 ‘고노 담화’(1993), 전전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1995), 일본의 조선 병합이 한국인들의 뜻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이뤄졌다는 ‘간 담화’(2010) 등은 분명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담고 있다. 한국의 잣대로 보면 미흡하고 양에 차지 않을지라도 그 담화가 일본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본 우익 정치가들이 기존 담화 내용을 부정하는 망언을 종종 하는 것도 사실이다
. 심지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고노 담화를 검증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과거 일본정부가 내놓은 담화를 고스란히 계승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내각의 결의를 거친 일본 정부담화는 앞으로도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인식도 그 연장선에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군국주의 논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일본국헌법에 대한 평가다. 일본국헌법 9조는 전쟁 포기와 전력 불보유를 선언해 평화헌법으로 지칭되고 있고, 194753일 헌법이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요지부동이다. 물론 자위대라는 군사력 보유 문제를 비롯해, 9조를 개정하려는 아베 총리 등 우익 정치가들의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본 시민사회가 평화헌법 9조 유지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일본 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스테레오 타입의 편견에 빠져 일본에 반성과 사죄만 요구한다거나, 군국주의 일본이라고 야유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지금까지 굳게 지켜온 평화헌법 9조와, 반성과 사죄를 담은 여러 정부 담화에 대한 일본 사회의 노력을 평가하는 한편 끝까지 그것들을 지켜가도록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는 한국정부는 물론 정재계와 시민사회 전체가 당연히 갖춰야 할 자세다. 그로써 비로소 한일은 함께 가치를 지향하고, 연대를 이루는 민간교류협력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가치지향, 가치연대 교류를 위한 몇 가지 방안

 

일이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인류 공통의 가치라야 맞다. 바로 인류애에 바탕을 둔 평화공생협력의 가치다. 다만 그 자체가 추상적인만큼 의제설정 과정에서도 애로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를 감안해 몇 가지 방안을 거론해 본다


1)
가칭 일 미래가치위원회구성

양국의 공통 가치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민관이 참여하는 협의체로서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위원회는 양국의 정부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유식자 그룹으로 구성한다. 개별 이슈와 관련해서는 해당 분야의 국책 및 민간 연구기관에 의뢰하고 가능한 실천방안을 마련해 양국 시민사회에 공표하도록 한다면 양국 간 전반적인 가치의 환기(喚起) 및 공유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2)
가칭 일 팩트체크연대구성

한․일 관계 악화의 본질은 과거사를 둘러싼 대립처럼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이 원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양국 내 상대국에 대한 가짜뉴스 등이 남발되고 있다는 점은 불신 심화, 관계 회복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에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팩트체크 서비스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예컨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1966년부터 일본신문협회와 정기적인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10월에는 51일 편집간부 세미나가 예정돼 있다. 이러한 관계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두 기관에 각각 상대국에 대한 팩트체크 기구를 마련해 조사 내용을 정기적으로 발표, 교환한다면 효과가 있을 터다.
 

3)
일 초중고 사회과 교사 교환 프로그램

절차에 따라 선발된 교사들이 방학 중 양국을 방문해 홈스테이, 이슈 학습, 현장 견학 등을 통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인원 선발과 운영은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시민그룹으로 제한하되 운영기금과 관련해서는 양국 정부와 기업 등의 지원이 바람직하겠다.

앞서 소개한 민간교류 사례는 소규모 종교그룹 및 고교생 콘서트 무대 등 특정 분야로 제한돼 있어 확산에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사회과 교사 교환 프로그램은 확산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사회과 과목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학생들에 대한 파급력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참가 교사들이 상대국의 주장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상대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도록 자리매김 되었으면 좋겠다. 

이처럼 한일 민간교류협력은 양국의 시민사회의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지속가능할 뿐 아니라 나름의 성과도 낼 수 있다. 이해 확산을 통해 상호 불신을 극복하며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고 연대함으로써 관계가 회복되고 마침내 한일 양국은 가치를 함께 실현하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