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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질서의 변화와 중일관계의 전망 [정세와 정책 2019-23호]

등록일 2019-11-07 조회수 4,518


동북아 질서의 변화와 중일관계의 전망  

 

 

 

 

진창수(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jincs@sejong.org

 

1. 중일관계의 개선 이유           

      

     2010년 센카쿠 부근에서 어선 충돌사건, 12년 센카쿠 국유화, 2013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국민감정이 악화된 중일관계는 1972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이라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2014년 가을 아베와 시진핑은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했음에도 중일관계는 더욱더 얼어붙었다. 이런 중일관계가 2018년 7년만에 해빙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2018년 10월 26일 아베총리와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일관계 발전을 위해 ‘경쟁에서 협조’, ‘위협이 아닌 파트너’,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체제의 발전’이라는 3원칙에 합의를 하였다. ‘중일의 협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중·일 양국의 경쟁의식과 미일동맹이 중일의 협력을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중일정상회담은 트럼프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중일관계의 극적인 개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중 무역전쟁에 대항하여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정적인 중일관계를 통하여 미국의 통상압력과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대응하려는 일본의 전략적인 계산도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중일관계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2017년 6월의 기점부터 기류가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17년부터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고관들을 중국에 파견 했던 것이다. 중국도 미국과의 무역분쟁이 심각해지면서 2018년 5월엔 리커창 총리가 일본에 방문해 금융분야 협력 강화를 합의한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중일 협력을 부추긴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중일 양국이 접근할 수 있는 정치적인 여건은 이전부터 성숙되어 있었다. 중국 시진핑은 제2의 경제대국인 중국의 위상에 걸맞게 중일관계를 조정하고자 하였다. 1972년 중일공동성명에서 국교정상화에 합의를 하면서부터 중일간에는 ‘선진국 일본과 후진국 중국’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되었다. 1978년 등소평은 전후청산을 포기하면서까지 중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일본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자 중일평화우호조약을 맺은 것이다. 이후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부간원조(ODA)는 중국 경제성장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으며, 2008년 후진타오 시대에는 역사적인 문제에 많은 불만이 있음에도 이익을 주고받는 전략적인 호혜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2010년 중국이 제2의 경제대국으로 등장하면서 중국은 이전의 중일관계를 청산하고 중국 중심의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2018년 중일정상회담의 의미는 중국이 동북아에서 대국으로서 프라이드를 회복하는 순간이라고 보아야 한다.


   상징적인 예가 일본의 중국에 대한 정부간원조(ODA)의 종식이다. 중국의 근대화를 지원했던 일본의 지원이 중일평화우호조약 40주년에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알려주듯 양국은 새로운 중일관계를 연출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여 개발도상국에 지원을 하기로 했다. 이제 중일은 동등한 파트너로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지원을 하게 되어 국제사회에서 대국 중국의 위상을 과시하게 된 것이다. 1979년에서부터 시작한 중국의 ODA는 중국이 전후배상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 경제를 지원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본이 중국에게 지원한 액수는 엔차관, 무상자금협력, 기술협력을 포함해 3조 6500억엔에 이른다. 일본의 대중감정의 악화와 더불어 지원은 2005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게 되어 엔차관은 2007년에 종료하였으며, 2010년에는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됨으로써 ODA를 중국이 졸업하게 된 것이다. 

   한편 아베정권은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도 러사아로부터 북방영토 반환, 북한의 납치문제 해결, 그리고 중일관계의 회복이라는 외교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아베정권 초기에는 미국과 함께 환태평양경제연대협정(TPP)을 통하여 중국 포위망을 건설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미국이 TPP에 이탈을 선언하고, 또한 주일 미군의 경비부담 문제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트럼프의 으름장에는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와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한 아베로서는 트럼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다른 외교적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베가 외교적 탈출구로 시도한 것이 러시아와의 북방영토의 반환 협상이었다. 그러나 올해 푸틴이 조건 없는 경제협력을 주장하는 바람에 아베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또한 아베를 정치적으로 성공하게 만든 납치문제도 북한의 냉담한 반응으로 더 이상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중국과 관계 개선이라고 보아야 한다. 2017년 초기부터 일본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찬성을 표시하기도 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앞으로 중일 양국의 접근은 적극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감정이 우선하는 한일관계와는 달리 중일관계는 전략적인 이익에 따라 협력할 수 있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일관계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리고 미중관계의 행방도 중일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전보다 동북아 질서 속에서 중일이 전략적인 이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동인은 많아졌다.

2. 미중 무역전쟁이 중일관계에 미친 영향  
 

    “미중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면서 “이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굴기)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중국의 유명 관변학자인 진찬룽(金燦榮) 교수는 밝혔다. 중일간의 무역전쟁이 서로의 체면을 세우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2018년 하반기에 들면서 중일무역전쟁은 ‘치고 받기(tit for tat)게임’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다. 

  
   현재 무역전쟁에서 중국보다는 미국이 훨씬 더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공세 강화는 트럼프의 무역정책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트럼프 이전의 무역정책은 개방을 위한 자유무역의 확대에 초점을 두었다. 즉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의 해결을 선호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의 우월한 지위를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양자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무역적자의 불공정한 관행의 개선을 위한 보복관세와 같은 제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 무역정책의 특징은 첫째 무역과 안보를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패권국가 미국은 자유무역질서를 옹호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무역과 안보의 분리 정책이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2017년 12월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중국을 미국의 안보와 주권을 침해하는 경제적 경쟁자로 규정한 것이다. 게다가 ‘중국이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것을 좌절시키기 위해 미국이 가진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중국 압박을 본격화하였다. 그 결과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경제문제로만 보지 않고 국가안보문제로 간주하는 측면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미국의 무역정책의 목표가 무역적자의 축소보다는 산업과 과학기술의 우위 유지로 이전되고 있다. 중일무역전쟁에서 미국의 목표는 무역적자의 규모 축소에 있는 것보다는 첨단기술의 개발과 보호로 변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술 민족주의와 디지털 보호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이 수입을 늘려 무역불균형이 해소되더라도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외국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차별적 허가 규제, 중국기업의 해외투자 장려, 불법적인 지재권 등)이 근절되지 않는 한 중국에 대한 압박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일본처럼 당해서는 안된다’는 한마디로 최근 미중무역전쟁에 임하는 중국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1980년대 제 2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이 미국내 흑자문제로 인해 미국과 무역전쟁을 한 것은 중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당시 미국이 일본을 제압하기 위해 ‘환율카드’를 꺼내들면서부터 미일의 전세는 기울기 시작하였다. 1985년 9월 미국의 압력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의 재무장관이 일본 엔화를 평가절상하겠다는 ‘플라자 합의’를 한 것이 미일무역전쟁의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1달러 360엔이었던 일본 엔화가 100엔까지 평가절상되면서 일본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점차로 약화된 것은 물론이고, 일본이 미국과의 환율전쟁을 방어하기 위해 일본 국내적으로 금리를 낮춘 조치가 예상외로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그 당시 일본내 낮은 금리로 인해 대규모로 자금이 풀리면서 그 자금이 일본의 주식시장과 부동산에 과잉으로 흘러들어가서 대형 거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후 일본은 거품경제가 붕괴되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침체에 빠지면서 일본경제는 제3의 경제대국으로 주저앉았다. 따라서 중국도 일본처럼 미중무역전쟁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중국의 번영의 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라는 우려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중국내 분위기를 반영하듯 중국 시진핑은 절대로 미국에 굴복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중 무역전쟁이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적자 해소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체재전쟁이라고 보고 있다. 즉 중국은 미중무역전쟁을 ‘두번째 냉전시대’의 서막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딜레마는 미국을 압박하여 무역전쟁을 종식시킬수 있는 수단이 적다는 것에 있다. 현재 중국의 분위기는 현실적인 해결방안보다는 ‘기대(Wishful Thinking)’에 기반한 대안만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전면적인 무역전쟁, 대미무역 의존의 축소, 그리고 기술 자립이다. 중국은 무역적자 해소에는 미국에 협조를 하겠지만, 자국의 산업 및 과학기술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중일무역전쟁은 관세보복이 중단되더라도 과학기술 분야로 확산되어 무역전쟁의 대결구도는 쉽게 해소될 수 없게 되었다. 마이클 필스버리가 예고한 양국 사이의 ‘백년의 마라톤’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미국에 대항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 예로 몇 년간 참석하지 않았던 동방경제포럼에 시진핑이 참석하여 푸친과의 우위를 과시하는 것만 보더라도 중국의 친구 만들기는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일본과 이전과는 달리 중국이 아베총리와 정상회담 개최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미중무역전쟁이 배경이 되고 있다. 앞으로 한중관계에도 중국이 먼저 협력의 제스추어를 해오기 시작할 것이다. 최근에 중국이 관광객의 규제를 완화한 것처럼 한중관계의 협력의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도 한국에서 사드 철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앞으로도 문제의 소지는 남아있다.  

3. 한일관계와 중국 

   앞으로 국제관계는 미국 진영과 중국 진영으로 양분되는 갈등 양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중의 갈등이 격화되면 미국에 안보, 중국에 경제라는 등식 속에서 한국이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는 더욱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중국과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치르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캐나다·멕시코와 기존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새 무역 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체결했다. 즉 미국은 USMCA에서 멕시코와 캐나다가 독자적으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협상할 수 있는 여지를 제한한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를 ‘각개 격파’한 트럼프는 점차 한국과 일본에도 경제와 안보를 무기로 중국압박전략에 동참시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미국의 압박을 타개하기 위해 주변 교역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쓰고 있다. 중국이 사드문제에서 보였던 냉담한 자세를 접고 한국과의 관계 증진에 나선 것도 그 이유이다. 당장은 중국의 협력 무드에 한국이 혜택을 볼 수 있지만 미중관계의 근본적인 대립과 갈등은 지속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미중 경쟁속에서 한국의 딜레마는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국이 미중 경쟁속에서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 기술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중국도 일본과 한국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은 일본과의 관계 강화는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이 한국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분명하다. 


   한일, 미중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의 밀월관계가 깊어지고 있다. 이번엔 중국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젊은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는 비결 배우기에 나섰다. 8월 11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일본 청년 대책을 배우는 중국’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몇년 전만해도 “일본에겐 배울 것이 없다”고 말했던 중국이 이제는 일본에게 다시 의존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중일 관계가 부쩍 밀착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오는 10월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중국은 ‘2인자’ 왕치산 국가 부주석을 파견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예전보다 격이 높은 인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여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도 내년 봄 일본에 국빈 방문할 예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일본이 일방적으로 중국에게 협력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중국의 필요와 일본의 이익이 중일관계의 협력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중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기존의 외교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중국을 지나치게 고려하면 중국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가 없다. 한국은 원칙에 입각하여 때로는 유연하게 때로는 강경한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중국이 한국에 대해 접근을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너무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면 오히려 한국의 외교정책의 원칙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런 대안이 없이 한미동맹에 부정적인 양향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하며, 기존의 시스템(한미동맹 등)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중국이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외교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또한 한국이 중국과의 소통채널을 강화하면서도 중국이 지나친 요구를 하면 한국의 입장을 유지하는 외교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전략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시기를 잘 고려해야 하고, 상대방의 전략을 고려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최근 중일 관계의 개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