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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세종논평 No.2020-12]

등록일 2020-06-12 조회수 8,578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현재적 함의와 남북관계 개선 모색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세종논평] No. 2020-12 (2020.06.12.)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cssuh0@naver.com

 

6.15 남북공동선언에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구체적 규정은 없다. 그러나,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른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21세기 한반도 평화에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 문제 

 

사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첫 정상회담에서 긴장완화와 평화 문제는 중요한 의제였다.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의 회고록 『피스메이커』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이에 관해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대로 불가침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군사공동위원회를 개최하여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대책을 비롯하여 군비통제 문제를 협의해 나가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한 뒤 합의문에는 “선언적인 내용만 넣고 나머지는 장관급회담에 위임하는 형식을 취하자.”고 제의했고 그 결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 관한 부분이 빠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당시 두 정상은 논의를 통해 상호 불가침에 합의했고, 흡수통일과 북침, 적화통일과 남침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뢰조성이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남북국방장관회담을 개최하여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책을 비롯한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부터 협의해나가자는 데에도 합의했다. 이 대화를 기초로 북한에서 돌아온 김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선언했고, 그 해 9월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남북국방장관회담이 열렸다.

 

문제는 두 정상의 대담과 달리 군사당국 사이에는 간극이 컸다는 데 있다. 급격한 화해와 교류에 대한 북한측의 소극적 입장으로 1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도 당면 과제였던 경의선 철도 및 문산-개성간 도로 개설에 따른 군사적 보장을 위한 군사실무회담 개최에만 합의했을 뿐, 군사적 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노력해 나간다는 선언적인 규정만 채택했다.

 

노무현정부 이후 남북 군사관계

 

분단과 전쟁, 그리고 오랜 반목과 대결으로 이어진 남북관계가 한두 번의 회담만으로 해결되기는 힘들다. 첫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논의가 실천적 성과로 나타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남북국방장관회담 이후에도 비무장지대(DMZ) 관할권·관리권 문제, 국방백서에서의 ‘주적’ 표기 문제 등으로 군사실무회담에서의 합의 도출과 실제 개설 작업은 지연되었다. 2002년 6월에는 2차 연평해전으로 우리 해군장병이 희생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노무현 정부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성과를 이어받아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지만, 2002년 10월에 터진 2차 북핵 위기 대응과 함께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당면한 큰 과업이었다. 결국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결 노력과 함께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을 병행해 나갔고, 2004년 5월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이 처음으로 열렸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가장 큰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의 초보적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와 더불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선전수단 철폐와 선전활동 중지가 이 때 합의됐다.

 

그 뒤 서해 평화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장성급군사회담에서는 서해 NLL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했다. 이 문제는 2007년의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본격 논의됐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10.4 남북정상선언을 통해 군사적 긴장완화와 불가침, 종전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회담 개최 등에 공감하면서, 서해상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을 포함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방안에 합의했다. 2007년 11월 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운영 등에 합의했지만 공동어로구역의 설치 범위에 대한 이견으로 실질적 이행이 지연됐다.

 

주지되듯 이명박정부의 출범 이후 남북 군사관계는 악화일로였고, 2010년에는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까지 이어지면서 군사적 긴장이 더 커졌다. 또 북한의 핵실험과 중·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2014년  10월의 대북 전단풍선에 대한 고사총 사격, 2015년 8월의 목함지뢰 도발 등 국지적 군사위협이 고조됐다.

 

2018년 '판문점선언'과 남북군사합의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한의 전략적 도발은 지속됐지만, 6.15 남북공동선언의 계승·발전을 공약한 문 대통령은 그 해 7월 ‘베를린 구상’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군사당국회담 개최를 공개 제안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에서 한국 정부의 제안에 호응해 오기 시작했고, 이는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4월의 판문점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선언에서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해소를 위한 공동의 노력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적극적 협력에 의견을 같이하고, 실질적 조치로서 일체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와 DMZ의 평화지대화, 서해 NLL 일대 평화수역 조성 및 우발적 충돌 방지, 군사당국자회담 수시 개최 등에 합의했다. 그 해 9월에는 평양정상회담이 열려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9.19 남북군사합의가 채택됐다. 여기에는 지·해·공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DMZ 안의 감시초소(GP)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시점적 공동유해발굴, 서해 NLL 일대 평화수역화,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들이 담겼다.

 

그 후 남북간에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가 이어졌다. 접경지역에서의 사격과 군사연습, 군용기 비행 등이 중지됐고, DMZ의 평화지대화를 위한 시범적 조치들도 이행됐다. 북한의 일부 위반사항들이 간헐적으로 나왔고 특히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추가 이행이 지연되고 있지만, 적대행위 중지 합의가 대체로 이행되면서 남북 접경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군사적 신뢰구축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관계 파탄 위기와 총체적 대응 필요성

 

최근 한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이에 대한 북한의 강한 반발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지와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완전 중단과 더불어 9.19 남북군사합의의 파기까지 거론되고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5일 당 통일전선부 대변인은 “적은 역시 적”이라며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돌발사태를 경고했다.

 

우리로서는 적대관계로의 회귀를 막고 위험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 대북 전단 살포가 사태의 직접 원인인 만큼 적대행위 중단 합의 이행을 위해 국민적 공감대 속에 법적 대응체계를 조속히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와 동시에 현 상황이 자칫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 하에 남북대화와 실효적 군사 대비 모두에서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정신의 계승과 남북 당국간 합의의 이행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기반이다. 코로나 19로 외교안보 이슈가 거의 실종된 지금, 상황 악화를 방지하고 합의 이행과 당국간 회담 재개를 견인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새삼 강조한다.

 

 

※ 『세종논평에 개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