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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논평 No. 2018-7]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과 한국정부의 대북전략 과제

등록일 2018-02-07 조회수 9,108 저자 정성장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과 한국정부의 대북전략 과제

[세종논평] No. 2018-7 (2018.02.07)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softpower@sejong.org

 

북한이 지난 4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대표단을 평창동계올림픽에 파견하겠다고 통보했다. 김영남 위원장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도 대표단장으로 참석해 정상외교 활동을 벌인 바 있기 때문에 의외의 소식은 아니다. 그런데 김영남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중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다음 가는 공식 서열 2위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그의 방남이 실현되면 지금까지 한국을 방문한 북한 인물 중 가장 고위급 인사가 된다. 그러므로 이번 김영남의 방남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김정은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28일 북한군 창건 70주년 기념일 열병식을 통해 북한이 작년에 시험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과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북한 고위급 인사의 방남만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남북 간 고위급 인사의 교류는 지난해 북한의 ICBM 시험발사와 제6차 핵실험으로 인해 극도로 고조되었던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오판으로 인한 무력충돌과 확전의 가능성을 낮추고 중장기적으로는 북미대화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남은 그동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대외적으로 북한이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으며 주로 제3세계와 비동맹국가들에 대한 정상외교를 담당해왔다. 그러므로 김영남에 대해 정상급 대우를 해줄 필요는 있다. 물론 김영남이 남북관계나 북핵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거나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은 없으므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남 위원장 간의 회동을 정상회담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과거에 김정일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후 자신의 서울 답방 전에 김영남을 먼저 한국에 보내겠다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약속한 바 있다. 비록 2001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관계의 악화로 이 같은 약속은 이행되지 못했지만 이번에 김영남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면 김정은 위원장의 문 대통령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김정일이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극도로 냉각되었던 북중 관계의 회복을 위해 1999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공화국 대표단을 중국에 보내 북중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김영남은 장쩌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뿐만 아니라 리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주룽지 국무원 총리 등 중국의 고위 인사들과 폭넓게 만났다. 이후 김정일은 20005월 말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북중 관계를 완전히 복원했다.

이처럼 이번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문 기회에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낙연 국무총리와 정세균 국회의장 및 조명균 통일부장관 등도 김영남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과 만나 남북대화의 발전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남 위원장 간의 회동을 올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 설득하지 않고는 비핵화와 관련해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에 한국정부는 대북 협상의 방향과 관련해 미국, 중국, 일본 등과 긴밀하게 사전 조율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 북핵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T/F를 조기에 구성해 구체적인 대북 협상 전략을 수립하고, 중 및 한3자 대북정책조정그룹회의(TCOQ)를 구성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에서 공식 서열 2인자를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대표단이 오는 것에 상응해 한국정부도 평창동계올림픽 종료 후 그에 준하는 고위급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북한의 협조에 대해 감사를 전달하면서 남북고위급교류를 정례화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특히 한국 청와대와의 대화 채널을 중시하고 있으므로 한국정부가 북한에 파견할 고위급대표단의 단장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맡게 하고 대표단에 통일부 장관 및 국가정보원 원장 등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한 남북 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오는 99일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 전에, 특히 815일 광복절을 전후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같은 남북 고위급대화와 정상회담 추진은 얼핏 보기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와 모순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대북 제재만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중단시키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 작년 북한의 세 차례에 걸친 ICBM 시험발사와 제6차 핵실험 및 올해 김정은의 신년사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났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분명히 북한에게 일정한 고통을 주겠지만 김정은이 집권 이후 현재까지 대북 제재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도 현저하게 발전시켜 온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작년부터 미 행정부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심각하게 검토해온 것도 제재만으로 북한의 전략을 바꾸는 데에는 명백하게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북한과 같은 작은 나라가 미국을 핵무기와 ICBM으로 위협하는 것에 대한 미국 지도자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ICBM 개발도 거의 완성 직전에 도달한 북한을 상대로 군사적 옵션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가 될 것이다.

현재 북한은 결코 핵과 미사일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며 남한과 특히 핵문제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따라서 설령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더라도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현재 북한의 ICBM 능력은 미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고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 진전도 한미의 안보에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ICBM SLBM 시험발사 중단 합의만이라도 먼저 도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가 될 것이다.

만약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정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거나 통제하는데 실패한다면 결국은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나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통한 남북 핵 균형까지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한국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남북 대타협을 시도하고 미국 행정부는 한국정부의 이 같은 노력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