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커스

[세종논평 No. 2018-8] 2018 미국 핵태세검토(NPR): ‘핵무기 없는 세계’에서 신 핵군비경쟁의 시대로?

등록일 2018-02-12 조회수 10,468 저자 이상현

 

2018 미국 핵태세검토(NPR): ‘핵무기 없는 세계에서 신 핵군비경쟁의 시대로?

 

이상현(세종연구소)

 

 

미국의 2018년 핵태세검토(NPR)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NPR의 목적은 발간시점에서 향후 5~10년간을 내다보고 유지될 미국 핵정책과 전략 수립, 목표 능력과 전력태세를 제시하는 것이다. 냉전 이후 미국은 빌 클린턴 행정부(1994)와 조지 W. 부시 행정부(2002), 오바마 행정부(2010) 등 세 번의 핵태세검토를 단행했고 이번이 네 번째이다. NPR4개년국방검토(QDR), 탄도미사일방어검토(BMDR), 우주전태세검토(SPR)등과 함께 국방부가 수행하는 4대 전략방위태세 검토 중 하나이다.

마지막 NPR이었던 2010NPR 이후 핵무기 관련 정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0NPR에서 초점을 맞춘 목표는 크게 5가지였다.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 예방, 미국의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 축소, 핵 보유고를 줄이면서도 전략적 억지력과 안전성 유지, 지역적 억지력 강화와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에 대한 안전보장, 안전하고 위험성이 없으며 효율적인 핵보유고 유지가 그것이다. 당시의 국제안보 위협 관련 가정은 첫째, 러시아와, 혹은 강대국간 군사충돌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는 것, 둘째, 핵무기의 역할과 숫자를 줄임으로써 핵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핵확산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정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다양한 핵군축 협상을 타결지었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 미국 핵 보유고는 냉전기 최고수준에 비해 85% 이상 감축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오바마는 2009년 프라하 연설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의 비전을 설파해 노벨평화상도 수상했다. 오바마의 비전은 2010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에 비해 2018 NPR은 어떤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가? 2018 NPR의 기본적인 상황 인식은 지난 연말에 공개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이 현재 당면한 안보위협의 본질은 강대국간 경쟁의 부활이며, 미국의 핵태세를 이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당면한 최대 안보 위협을 중국, 러시아 같은 현상타파세력이라고 규정하고, 뒤이은 국방전략보고서(NDS)에서 미국의 최대 위협은 더 이상 테러가 아니라 전통적인 강대국 간 전략적 경쟁이라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러시아는 기존 핵군축 조약에서 규정하지 않은 다양한 무기체계를 개발하거나 혹은 기존 핵군축 합의를 위반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유럽에서 재래식 전력 열세를 전술핵으로 만회한다는 이른 바 종전을 위한 확전(escalate-to-deescalate)’ 전략을 우려하며, 이를 궁극적으로 NATO를 분열시켜 러시아 인근 국가들을 지배하기 위한 것으로 술책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를 감안해 이번 NPR은 핵무기는 쉽게 사용해서는 안 되지만 최악의 경우 실제로 사용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억지력을 발휘한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2018 NPR의 핵태세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유연한 맞춤형 핵억지전략(flexible, tailored nuclear deterrence strategy)’이라 할 수 있다. 미국 핵전략의 목표로는 네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핵 및 비핵 공격 억지, 둘째, 동맹 및 우방국에 대한 보장, 셋째, 억지 실패 시 미국의 목표 달성, 넷째, 불확실한 미래 대비 능력 확보 등이다.

구체적으로 이번 NPR은 전통적 억지력인 핵 3축체제(nuclear triad - 핵잠수함, ICBM, 전략폭격기)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오바마 행정부 당시 확정된 현대화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와 더불어 핵 지휘통제통신(NC3)체제의 현대화, 그리고 핵무기 인프라 강화를 위한 투자도 천명했다. 특히 강조된 것은 유연성에 기반한 맞춤형 핵전략으로 억지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 두루 통하는(one size fits all)’ 억지방안은 없으며, 상황과 맥락에 맞는 대응을 가능케 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저강도 핵무기(전술핵무기) 개발과 배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핵무기는 극단적 상황,’ 예를 들면 미국과 동맹, 우방의 사활적 이익 방어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NPR에서 제시된 미국 핵전력 구성과 향후 태세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핵잠수함(SSBN) 전력은 현재 14척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으로 구성되며, 컬럼비아급으로 대체될 때까지 운용의 효율성을 유지하고 여기에 적재된 D5 SLBM2042년까지 수명연장 프로그램을 적용한다. 둘째, ICBM 전력은 현재 400기의 단탄두 미니트맨 III를 여러 지역 지하사일로에 분산배치하고 있다. 향후 지상배치 전략억지력(Ground-based Strategic Deterrent, GBSD) 프로그램에 따라 2029년부터 미니트맨 교체를 시작, 450개 발사시설을 현대화하고 400기의 ICBM 규모를 유지한다. 셋째, 전략폭격기의 경우 현재 핵무기 적재 B-52H 스트래트포트리스 46, B-2A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20대로 구성된다. 미 국방부는 차세대 폭격기인 B-21 레이더(Raider) 개발을 시작, 2020년대 중반경 현존 전략폭격기 교체가 시작될 예정이다.

이 외에 비전략핵무기로는 소수의 B83-1, B61-11 투발형 핵무기가 가용하며, 2020B61-11B61-12 스마트폭탄으로 개조할 때까지 현재 수준에서 유지한다. B52-H에 적재되는 공중발사순항미사일(ALCM)은 장거리역외발사(LRSO: Long-Range Stand-Off) 크루즈미사일로 대체될 때까지 수명연장 프로그램을 적용한다. 비전략핵무기를 운반하는 NATO군 이중용도 항공기(DCA)는 장차 F-35로 대체된다. 마지막으로, 향후 단기적으로는 기존 SLBM 일부를 저강도 핵탄두로 개조하고, 장기적으로는 현대화된 핵탑재 해상발사크루즈미사일(SLCM)을 개발함으로써 유연성과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

예상대로 2018 NPR에 대해서는 노후된 전략핵 전력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낮춤으로써 핵전쟁의 위험을 높인다는 반대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우리는 2018 NPR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첫째, 미국의 새 핵태세는 핵전쟁의 문턱을 낮추기 때문에 위험스럽다. 예를 들면 핵지휘통제 인프라에 대한 재래식 공격에 핵무기로 반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은 과거의 NPR과 사뭇 다른 점이다. 저강도 핵무기 보유 확대를 거론한 것은 유사시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결정을 더 쉽게 내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직결된다. 저강도 핵무기 개발을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미국이 현재 보유한 핵무기들이 너무 크고 치명적이어서 사실상 사용하기 어려운 무기라는 점을 든다. 미국은 사실상 효과적으로 자기억제된(self-deterred)’ 상태이며 적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이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저강도 핵무기를 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에 맞게 사용가능한 전술핵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적의 도발에 ICBM이나 전략폭격기로 대응하는 것은 핵 전면전을 초래해 인류 공멸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를 피하는 방법은 한 발 물러나 전쟁에서 지고 방위공약의 신뢰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핵무기에 중점을 둔 전통적인 미국의 핵전략 하에서는 자멸 아니면 항복(suicide or surrender)’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바로 이런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은 제한적 핵공격 역량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잠수함발사 저강도 핵순항미사일 및 탄도미사일 추가 개발이다. 하지만 이번 NPR은 저강도 핵무기 개발이 왜, 그리고 어떻게 전략적 안정성을 높이고 핵전쟁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 모든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 위주로 정책결정을 내리기 마련이지만 오늘날의 국제질서에서 미국처럼 영향력이 큰 국가가 오로지 자국만의 안보를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분명히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다. 핵무기를 실제 사용 가능한 무기로 만들려는 미국의 구상은 자국은 물론 타국들에게도 안보 딜레마로 끝날 소지가 크다.

둘째, 강대국간 새로운 핵군비경쟁 개시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소련 붕괴 후 지난 30여년간 지속된 핵군축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핵군비경쟁이 시작되고 있다는 조짐은 여러 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NPR은 러시아가 2,000여개의 전술핵무기를 현대화하는 중이고 1987년 체결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위배되는 다양한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핵 후발 주자인 중국은 핵탄두 생산량 증가세가 세계 최고이며, 핵전력 현대화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주상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요격 실험을 실시해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의 위협을 경험한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향후 7년간 국방 예산을 3000억유로(400조원)로 늘리고, 이 중 370억유로(50조원)를 핵무기 현대화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이 핵군비경쟁에 뛰어들면 이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은 더욱 높아질 것이 뻔하다.

셋째, 국제 핵비확산 체제의 약화가 우려된다. 비핵국가에 대한 선제 핵공격을 배제하는 소극적 안전보장 원칙은 NPT 체제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이다. 하지만 재래식 공격에 대한 핵무기 사용 언급은 소극적 안전보장에 위배되며, 결과적으로 NPT 체제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상원 비준도 추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CTBTO 준비위원회의 활동은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2017년에 성안되어 서명을 받기 시작한 핵무기금지조약(Nuclear Weapons Ban Treaty)은 현행 국제안보 환경의 개선 없이 핵무기를 완전히 없애자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뿐만 아니라 동맹과 우방의 안보도 위협한다는 이유로 반대를 분명히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위협하게 될 순간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미국 내에서는 저강도 핵무기, 혹은 전술핵 개발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제한적 선제타격인 이른 바 코피 전략논의도 무성하다. NPR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가 여전히 미국의 오랜 목표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국을 핵무기로 공격한다면 그것은 곧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사용하고도 살아남는 시나리오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은 금년 신년사에서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의 위업을 달성했다고 선포했다. 핵으로 생존을 보장하려는 북한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미국과 북한 간에 앞으로 비핵화를 둘러싼 기나긴 갈등과 긴장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전망은 한국에게도 딜레마를 제기한다. 한국정부의 북핵 정책은 무엇인가? 한국은 과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 비핵화를 추진할 각오가 서 있는가? 아니면 북핵 불용이나 비핵화는 겉치레 주장일뿐, 실상은 북한이 핵을 갖더라도 평화만 유지되면 좋은 것인가? 핵전쟁의 위험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