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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논평 No. 2018-23]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인식

등록일 2018-05-02 조회수 6,613 저자 우정엽

 

세종논평/ 우정엽 안보전략연구실장 대리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인식

 

지난 4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두 정상은 만 하루가 되지 않는 정상회담 시간 동안 대단히 감동적인 장면들을 연출하였다. 지난 12월까지 과연 평창동계 올림픽이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을지 우려하던 상황과 비교하면 매우 큰 상황의 변화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 언론 앞에서 생중계로 합의안을 발표하는 모습과 양 정상이 부부동반으로 만찬을 하며 아쉬움 속에 헤어지는 장면은 핵무기 사용의 위협과 군사적 옵션 사용이라는 단어가 쉽게 사용되던 몇 달 전 상황을 잊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특히, 도보다리에서 아무런 배석자 없이 두 정상이 약 40분간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생중계 된 것은 놀라움과 함께 향후 남북관계 및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하여 큰 기대를 갖게 하였다. 주로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혀 더욱 많은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은 뒷모습만 보였다. 그러나 그의 뒷모습에는 이 기회에 어떻게든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해야 한다는 절박함의 의지가 보였다. 성공적으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 이후 언론을 중심으로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기대감 등이 보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더 이상의 회담은 이미 정해진 수순을 확인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과 같은 기대가 앞서 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 감동은 잠시 접어두고 보다 냉정하게 앞으로의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비핵화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회담 이전 가장 큰 의제는 역시 북한의 비핵화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회담 이후 나온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는 3항의 4번으로 소개되어 후순위로 밀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였다. 청와대와 이번 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상이 완전한비핵화라는 단어를 명문화했다는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하여 어떠한 이야기가 나올 것인가를 예의주시하였던 미국에서는 이번 합의문에서 명문화한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된 부분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시켜줄만한 정도는 아니었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059.19 공동선언에서 명문화했던 비핵화에 대한 합의 내용인 6자는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하였다.”에 비해 그 구체성이 모자란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 정상이 직접 합의한 내용과 6자회담 참석자 수준에서의 합의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국가를 대표하여 합의한 내용에 그 중요성의 차이를 둔다면 향후 정상회담에 이은 실무회담의 내용 역시 정상이 합의를 확인할 때까지 신뢰할 수 없다는 자가당착적 논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물론 작년까지만 해도 비핵화에 대해 전혀 이야기를 꺼낼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북한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합의한 비핵화 문구는 의미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에 앞서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를 고려했을 때 이번 합의문의 내용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심을 해소하기에는 모자란 수준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는 북한의 비핵화 논의로의 귀환에 대해 미국이 가지고 있는 극도의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조야에는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과거의 합의를 모두 지키지 않고 파기하였으며, 이번 합의도 역시 미국이 신뢰할 만한 아무런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번 남북회담이 있기 전 폼페이오 당시 국무부 장관 내정자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을 면담한 것이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여전히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회담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바로 회담을 접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있을 회담에서 협상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으나, 미국은 북한과의 접촉에서 아직까지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로 확실하게 나설 것이라는 확신을 얻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해외 언론을 중심으로 판문점 선언에서 나온 비핵화 합의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자, 청와대는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 몇 가지 전향적 입장들을 공개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해주고자 하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 역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시켜 미국이 순조롭게 협상에 나설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사우디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로 이란의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행태를 교정하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악화시켰다"면서 "현행 핵합의로는 이란이 핵무기를 절대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지 못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유럽 동맹국과 이를 고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결국 합의하지 못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를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12일까지 핵합의로 유예했던 대이란 제재를 되살릴지 결정할 예정인데, 이러한 이야기를 근거로 판단하면 대이란 제재가 부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더라도, 향후 우리 정부는 북한이 진정 비핵화의 길로 나선다면 보다 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줄 수 있도록 유도하여 북미간 정상회담에 우리의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성공적인 협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