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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미-중 전략 경쟁 속 유럽을 바라보는 중국의 전략적 시각

등록일 2025-05-21 조회수 814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로운 통상 기조가 중국과 유럽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 속 유럽을 바라보는 중국의 전략적 시각
2025년 5월 22일
    김규범
    객원연구위원 | gbkim@sejong.org
    | 들어가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로운 통상 기조가 중국과 유럽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적인 고율 관세 부과를 선언한 이후, 리창(李强) 중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이하 EU) 집행위원장은 전화 회담을 통해 공동 대응 방안에 나섰다. 양측은 미국의 관세 조치로 인한 시장 혼란에 우려를 표명하며, “공정하고 자유로운 다자간 무역 체제”를 수호하겠다는데 뜻을 모았다. 또한,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올해 7월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으며, 중국은 총리가 참석하던 관례를 깨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직접 참석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결정은 중국과 유럽 간 협력의 청신호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과 유럽 관계는 복잡 미묘한 양상을 보여왔다. 양측은 서로에게 핵심적인 무역 파트너로서 긴밀한 경제적 상호의존을 유지하고 있지만, 불공정 무역 관행, 기술 경쟁, 인권 문제 등에서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전쟁’)의 여파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두드러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트럼프 변수’가 중국과 유럽 간 전략적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강화된 보호무역주의가 중국과 유럽의 포괄적 협력을 강화할 것이며, 이는 중국에게 전략적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반면, 양측 간에 존재하는 체제적 불신과 무역 구조상의 경쟁 심화로 인해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신중한 분석도 있다. 최근 중국과 유럽 간 협력과 갈등이 혼재하는 여러 보도들은 향후 전망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 글은 중국과 유럽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자 관계 발전의 역사적 맥락과 전략적 방향성을 중국의 시각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트럼프 2기 통상 기조 변화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중국과 유럽이 향후 어떤 관계를 구축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데 초보적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 수교 이래 중국과 유럽 관계 발전의 맥락
       냉전 초기 중국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주로 교류하였으나, 1960년대 들어 새로운 전략적 필요에 따라 서유럽 국가들과도 접촉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국과 소련이 핵 확산 방지를 논의하자, 중국은 이에 반대하며 자체 핵무장을 추진하였고, 1964년 1월 자국과 같은 입장에 있었던 프랑스와 수교하였다. 이어 1969년 ‘전바오다오(珍宝岛) 사건’ 이후에는 대(對) 소련 견제가 중국 외교의 핵심 목표로 부상하면서, 중국과 서유럽 간 전략적 공통 분모가 형성되었다. 1970년대 미-중 데탕트가 진행됨에 따라 중국은 서유럽 주요국들과 차례로 수교를 맺었으며, 1975년 5월 마침내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전략적 접근이 중국과 유럽 관계의 출발점이었다면, 이후 비약적 발전을 이끈 원동력은 경제협력과 무역이었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이 본격화되면서 방대한 내수시장이 조성되었고, 유럽의 자본과 기술, 상품이 대거 유입되었다. 중국 시장은 유럽 경제에 높은 수익과 성장 동력을 제공했고, 유럽의 기업들은 중국에 대규모 고용 창출과 기술 이전이라는 기회를 제공했다. 비록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로 교역에 일시적 제약이 있었으나, 전략적· 경제적 ‘윈윈’ 구조 속에서 양자 관계의 전반적 발전의 흐름은 꺾이지 않았다.

      2000년대 중국의 WTO 가입과 EU의 유로화 도입 및 단일시장 형성은 중국·유럽 경제 관계를 비약적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은 중국의 최대 기술 공급처이자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주요 원천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2004년까지 중국은 유럽으로부터 1만 9,000 건 이상의 기술을 도입하였다. 같은 기간 유럽의 기업들은 중국에 약 2만 개의 법인을 설립하며 활발한 투자를 이어갔다. 이러한 경제적 연계는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의 산업 현대화에 깊숙이 관여하도록 이끌었고, 양측 모두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2004년 기준 EU는 중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 부상하였으며, 양자 간 무역액은 수교 당시보다 74배 증가한 1,773억 달러에 달했다. 동시에 중국은 EU의 제2위 교역 상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이 같은 진전을 바탕으로 EU는 “중국과의 관계는 유럽의 아시아 및 글로벌 전략의 초석”이라고 평가하였고, 중국 역시 양자 관계가 “역사상 가장 우호적인 단계”에 진입했음을 선언하며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중국의 급속한 국력 신장과 이에 대한 서구 국가들의 경계심이 충돌하면서 중국과 유럽 관계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의 제조업 및 첨단기술 부문 경쟁력 강화는, 과거 유럽이 고부가가치 기술을 제공하고 중국이 생산과 시장을 담당하던 상호보완적 협력 구도를 약화시켰다. 또한, 장기적인 대중(對中) 무역수지 악화는 유럽 내 불만을 증폭시켰으며, 유럽 국가들은 중국 시장의 제한적인 접근성과 국영기업, 산업 보조금 정책을 지적하며 ‘공정 경쟁’이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던 정치 체제의 상이성과 인권 등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양자 관계의 장애 요인으로 부상하였다.

      이처럼 불만이 누적되는 가운데,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신냉전 담론의 확산은 유럽 내 대중 인식을 더욱 악화시켰다. 유럽은 일대일로(一带一路) 구상을 더 이상 경제 협력이 아닌 중국의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 전략으로 인식하였고,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밀착에도 깊은 의구심을 가졌다. 2019년 3월, EU는 「EU-China - A strategic outlook」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 ‘체제적 라이벌’, ‘글로벌 어젠다의 협력자’로 규정하면서 중국에 대한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이는 중국 측의 강한 반발을 초래하였으며 이후 신장 위구르 인권, 포괄적 투자협정(CAI)의 비준, 전기차 관세 문제 등 다수의 현안을 둘러싸고 양측 간 갈등이 심화되었다.

      현재 중국과 유럽 관계는 새로운 분기점에 직면해 있다. 협력의 공통분모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약화되고 있다. 새로운 갈등과 경쟁 요소들이 부상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양자 관계의 전부를 대변하지 않는다. 중국・유럽 관계는 높은 경제적 상호의존과 일부 전략적 필요에 기반하면서도 갈등 요소들은 ‘재조정’해야만 하는 시점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 미-중 전략 경쟁 하 중국의 대외 전략과 유럽의 전략적 가치
       미-중 전략 경쟁 하에서 중국이 보는 유럽의 전략적 가치를 이해하려면, 우선 중국 외교의 기본 목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대외 전략은 대체로 강경하고 팽창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제로 중국은 미국과의 국력 격차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갈등을 격화시키기보다는 이를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국력을 축적하는 것을 현실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중국의 주요 정책 자문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의 대중 억제 전략을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다. 첫째, 안보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을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키고, 군비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중국의 자원과 역량을 장기적으로 소모시키려 한다고 본다. 둘째, 경제 차원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통해 중국의 산업 생태계를 점진적으로 배제하고, 기술 축적 능력을 차단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고 인식한다. 셋째, 이념 및 체제 차원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담론을 통해 중국의 정치 체제를 정당성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신과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이 전개되고 있다고 본다. 1)

      이처럼 미국의 대중 전략을, 동맹 네트워크를 동원한 기술 차단, 공급망 배제, 군사 압박으로 인식하면서 중국은 안보 및 경제 분야에서 ‘배제’와 ‘고립’의 리스크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물론 중국은 이에 대응하여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등 개발도 상국 중심의 협력 체제를 강화하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의 연대 구축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이는 서구와의 단절을 감수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중국은 경제, 기술, 규범을 주도하는 서구 선진국들로부터 고립되는 상황을 반드시 피해야 할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주요 정책 연구자들은 구(舊)소련 붕괴의 핵심 원인을 ‘서구 선진 시장 체제로부터의 고립’으로 진단하고 있으며, 이를 중국의 대외 전략 구상에서 중요한 교훈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최근 중국 외교 기조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팬데믹 종식 이후, 중국은 방대한 내수 시장과 강력한 제조업 역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복원과 재구축에 나섰으며, 다양한 국가와의 외교 관계 개선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과거 중국 외교의 공격적 이미지를 대표하던 ‘전랑(戰狼) 외교(wolf warrior diplomacy)’는 점차 조정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른바 ‘스마일 외교(smile diplomacy)’라 불릴 만큼 외교적 이미지 개선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세안(ASEAN) 국가에 대한 외교적 접근 확대와 한·중·일 3국 협력의 복원 추진 또한 이러한 외교 기조 전환의 연장선상에 있다.

      같은 맥락에서 유럽은 중국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유럽은 미국 주도의 대중 고립 전략을 완화시킬 수 있는 ‘잠재적 균형자’이자 ‘완충지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 이다. ‘대서양 동맹(Transatlantic Alliance)’으로 불리는 미국과 유럽 간 관계는 매우 긴밀하지만, 유럽이 모든 사안에서 미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 주요국 들은 오랜 기간 미국으로부터의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으며, 2023년 상반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제기한 ‘디리스킹(de-risking)’ 구상은 이러한 기조를 반영한 대표적 사례였다. 이 구상은 단순히 대중 견제 전략의 상징으로만 조명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바이든 행정부가 요구한 과도한 대중 압박 공조에 대한 유럽의 불만을 드러내는 한편, 유럽이 독자적인 외교 행위자임을 분명히 보여준 조치이기도 하다.

      또한, 유럽은 다자주의적 가치와 국제 규범의 존중을 중시하면서도 이념과 체제의 차이에 대해서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실용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 점에서 중국은 유럽을 미국보다는 유연한 협상 대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대일로’ 구상이나 글로벌 거버넌 스 전략에 있어 유럽의 규범적·제도적 영향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아울러, 유럽은 중국에게 있어 소비재 및 중간재 수출의 핵심 시장이자 기술 협력의 주요 파트너로서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즉, 중국에게 유럽은 기술, 제도, 규범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유럽을 완전한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을 아니다. 다만 중국 외교는 유럽을 완전히 포섭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유럽이 중국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 세력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관계를 관리하는 최소 목표를 실현하는 데 전략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내용은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장 니펑의 글을 참고할 것. 倪峰:美国对华全面竞争战略与中美关系,《国际经济评论》。 https://mp.weixin.qq.com/s?__biz=MzIyNDEzNjU0NQ==&mid=2247486272&idx=1&sn=944aa34f790558bbe692e78c73ecfa16&chksm=e812d74edf655e585a28a70ab13622b352abda624650b88644b267c7b678d10fa40b385958a5&scene=27(검색일: 2025년 5월 14일)
    | 중국의 대 유럽 정책 기조
       중국의 대(對)유럽 정책은 전략적 공감대의 형성과 협력 여지의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선,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디커플링(decoupling), 고율 관세 등 각종 압박 조치에 대응하여, “글로벌 무역 질서 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유럽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을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로 규정하며, 경제·무역 문제를 무기화함으로써 다자무역체제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유럽을 향해서는 중국과 EU는 “양대 경제권”이자 “경제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세력”임을 강조한다. 시진핑 주석은 올해 4월 스페인 총리와의 회담에서, 중국과 유럽이 미국의 일방적 ‘괴롭힘’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러한 접근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담론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은 미국이 추구하는 ‘패권주의’와 ‘진영화’를 비판하면서, 다극화된 국제질서 및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자국의 주요 외교 담론으로 제기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은 유럽 내부에서 제기되는 자율성 요구를 일관되게 지지해왔으며, 특히 미국과 유럽 간 이견이 발생하는 사안—예컨대 방위비 분담, 디지털 규제, 중동 정책 등—에 있어서 유럽의 독자적 판단과 균형자적 역할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시진핑 주석은 ‘강한 유럽’에 대한 지지를 수차례 표명했으며, 유럽을 “인류 문명의 한 축이자, 다극화 세계의 기둥”이라 치켜세우면서 “진영 대립과 강권 정치에 반대”해나갈 것을 제안하였다. 이는 서구 진영의 일체화 경향에 대한 견제를 통해 다극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중국의 전략적 목표와도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중국의 유럽 정책에서 중장기적이고 가장 실질적인 조치는 경제 협력과 교역을 통한 상호 의존성의 심화이다. 중국은 유럽과의 경제 관계가 양자 간의 ‘안전핀(safety pin)’ 역할을 한다고 인식하며, 공급망의 연계성과 시장 접근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기반으로 간주한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디지털 전환 등 신산업 분야에서 양측은 기술 협력과 시장 확대를 공동 목표로 설정하고 긴밀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 발전 등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글로벌 아젠다를 중심으로 협력 기반을 확장하려는 시도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의제는 양측 모두에게 정치적 부담이 적은 협력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경제 협력의 외연을 안정적으로 확대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중국·유럽 관계에는 정치적 입장, 경제적 이해, 규범적 가치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적지 않은 이견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유럽과의 정상 외교 및 실무 대화 채널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으며, 고위급 회담을 통해 상호 인식을 조율하고 긴장 완화를 모색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중국·EU 간 대화 메커니즘은 최근 수년간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정교화되어 왔으며, 분야별 협의 채널 또한 다층적으로 구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중국과 EU는 근본적인 이해충돌이나 지정학적 갈등이 없는 상호 번영의 파트너”임을 강조하며, “국제정세가 복잡할수록 양측은 수교 당시의 초심을 견지하고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원칙 아래, 양자 간 갈등의 확산을 억제하고 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도모하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EU를 상대로 항상 단일한 접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다층적 구조를 활용한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실제로 EU는 통합체이기도 하지만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의 집합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에 착안하여 중국은 국가별 맞춤형 접근을 구사한다. 예컨데, 독일, 프랑스 같은 EU 주도국은 보다 전략적이고 종합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과는 무역 및 투자 중심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리투아니아 같이 반중 입장을 표방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비공식적인 보복 조치를 취하는 등 차별적인 전략을 펴고 있다.

      또한, 중국은 EU라는 초국가적 기구와 협력에 더해 중동부 유럽과 별도의 협력 채널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유럽 내부에서 최소한의 우호 세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EU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투사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16+1 협의체(C+CEEC)’(현재 발트3국 탈퇴)나 헝가리·세르비아와의 양자 관계는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유럽 내부에서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중국은 각국의 주권과 정책 자율성을 존중하는 양자 외교의 한 모습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궁극적으로 중국의 이러한 전략은 EU 전체가 일방적으로 강경한 반중 노선을 채택하는 사태를 사전에 차단하고, 유럽을 완전히 자국 진영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최소 목표’를 달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 나가며
       중국의 입장에서 유럽은 전략적 측면에서 ‘균형자’이자 ‘완충지대’이며, 경제적, 제도적 측면에서 핵심적인 협력 파트너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날로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 외교에서 유럽의 전략적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과 협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포섭하려는 중국의 외교적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중국과 유럽 관계의 협력 수준은 양자 문제 이외에도 미국과 유럽 관계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일방주의적 통상 기조와 우방에 대한 전통에서 벗어난 태도 등은 미국과 유럽 간의 마찰을 야기할 소지가 있으며, 중국은 이를 기회로 활용함은 물론 유럽을 상대로 보다 적극적인 구애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물론, 중국과 유럽 간에 존재하는 구조적 이견들로 인해, 유럽이 중국에 완전히 경도되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현실적으로 중국과 유럽은 실용적이며 제한적인 협력 수준을 유지함 으로써 전략적 균형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국이 유럽에 기대하는 것은 동맹 수준의 지지가 아니라, 외교적 ‘여지’이다. 미국 주도의 배제와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지’야 말로 트럼프라는 변수 앞에서 중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전략적 공간이다. 중국은 실현되기 어려운 최대 목표보다 외교적 고립을 방지하고 현상 유지를 도모하는 최소 목표 달성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과 유럽 간의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관계는 한국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중 관계 역시 상호보완적 경제 구조의 약화와 전략 산업 분야의 경쟁 심화라는 구조적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유럽을 상대로 취하는 전략을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중국의 향후 대외 전략과 통상 정책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EU와의 협력을 통해 다자적 연대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과의 경제 및 외교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전략적 입지를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과 유럽 관계는 향후 한국의 대중 외교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유의미한 참고 사례가 될 것이다.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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