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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일본 다카이치 정권과 한일관계의 방향

등록일 2025-10-24 조회수 184 저자 진창수

일본 헌정사상 처음으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총재가 여성 총리로 선출되었다. 남성 중심의 정치계에서 여성이 총리가 된 것은 일본정치에서 그 의미는 크다.
일본 다카이치 정권과 한일관계의 방향
2025년 10월 24일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jincs@sejong.org
    |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정치적 의미
      일본 헌정사상 처음으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총재가 여성 총리로 선출되었다. 남성 중심의 정치계에서 여성이 총리가 된 것은 일본정치에서 그 의미는 크다. 또한 26년만에 자공연립이 해체되고 자민당과 유신회의 연립정권 출범은 일본정치의 변화를 보여준다.

      일본 정국은 자민당과 유신회가 연립을 형성하더라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소수 여당이 정권을 담당하는 시대로 변모되었다.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정권을 담당할 수 없는 다당화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의 다당화 국가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소수 여당이 집권하면서 정당간 연립에 따라 정권이 유동화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정계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현재 중의원의 465석 중 과반수는 233석이다. 중의원 세력 구도를 보면, 196석의 자민당, 148석의 입헌민주당· 35석의 일본유신회· 27석의 국민민주당 등이 존재한다. 자민당이 입헌민주당 이외의 어느 정당과 손을 잡더라도 의회 과반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결과 추진하려는 법안을 중·참 양원에서 통과시키기 어려우며, 정권의 안정성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야당이 연합을 하면 정권교체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은 원전 정책, 안보, 헌법 등 주요 정책에서 입장 차이로 연립정권을 만들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여야 어느 쪽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다당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다당화 시대에 일본정치는 자민당 시대와 달리 정국이 유동화되고 안정성이 담보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다카이치 정권의 기반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취약하다. 중의원에서는 자민당 196석, 유신회 35석으로 2석이 부족하고, 참의원에는 자민당 100석, 유신회 19석에 불과해 과반에 5석이 모지란다. 다카이치 정권은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출발하여 법안 심의나 예산 통과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력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만약 야당측이 결집한다면 정국은 더욱 혼미해질 것이다. 게다가 내각불신임안 등으로 쉽게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우선 연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역시, 야당이 협력하지 않으면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야간 조율에 시간이 걸리면 일정이 촉박해져 다른 법안들은 통과가 어려워진다. 즉 정책이 지연되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이번 가을 임시국회에서 다카이치 정권이 교착상태에 빠질 위험조차 있다. 게다가 국내정치의 불안정은 외교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번 달 하순에는 동남아시아 정상회의, 10월 27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 그리고 31일에는 APEC 정상회의 등 중요한 외교 일정이 예정되어 있지만, 국내상황이 복잡한 만큼 외교에 전념할 수 있는 여유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권을 잡은 총리는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실시라는 선택지가 벌써부터 떠오르고 있다. 자민당에서는 연초 예산통과후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단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돈’ 문제로 신뢰를 잃은 자민당이 과반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공명당과의 선거협력 구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어 의석수가 감소가 불가피하다. 지금까지는 자민당 후보와 공명당 후보가 상호 지원 체제(상호 추천)를 통해 소선거구에서 일정 수의 승리를 거두어 왔던 것이 자민당 정권의 안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소선거구에서 공명당의 조직표를 잃게 되어 의석수가 더욱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연립정권 해소의 여파로 기존의 조직 동원력도 약화되고 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는 잃어버렸던 보수지지층을 흡수하여 다시 자민당의 의석수를 늘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로 자민당이 지지세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써는 미지수이다. 국내외에 산적한 난제를 앞에 두고, 중·참 양원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다카이치 정권으로서 험난한 출발이 예상된다.
    | 다카이치 내각의 특징
      공명당이 연립정권에서 이탈하고 유신회와 자민당이 연립하면서 일본정치는 보수, 중도, 좌로 정치권이 알기 쉽게 재편되었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의 연립 정권의 출범이야말로 보수 색채가 강한 새로운 권력 구조의 형성을 보여준다. 한편 입헌민주당, 공명당을 비롯한 중도정당의 협력도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내 대표적인 우파(右派) 인사로, 안보·헌법 개정 논의에도 적극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직전에는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러한 행동은 역사 인식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자민당의 정책 방향은 더 오른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보수 본류”라 불리던 온건파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그 빈자리를 강경 보수 세력이 채워가는 형국이다. 자민·유신의 연립 합의문에는 외교·안보 관련 3문서 개정을 비롯해, 방위력 강화와 적극 재정 추진이 명시되었다. 강경한 외교·안보 정책과 더불어, 외국인 정책에서도 매파적(강경 보수) 색깔이 뚜렷하다. “공명당”이라는 제어 장치가 빠진 상태에서, 자민당이 일본유신회와 손잡음으로써 “우경화”가 한층 뚜렷해졌다.

      내각과 당 인사는 전체적으로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재의 파벌과 구 모테기(茂木敏充)파의 인선이 두드러졌다. 구태의연한 파벌 정치로의 회귀로 보여지는 부분이 있다. 대체로 총재 선거에서의 공로에 대한 ‘논공행상’의 색이 짙고 보수 성향의 인사가 편중되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총재 선거에서 경쟁했던 네 후보를 요직에 기용해 포섭하긴 했지만, ‘당 전체의 결속 체제’를 확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카이치 총리는 21일 밤 취임 기자회견에서 “결단과 전진의 내각”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강한 일본 경제를 만들고, 외교·안보에서 일본의 국익을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성씨 선택제)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온 만큼, 젠더 평등이 얼마나 진전될지는 미지수다. 여성 각료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2명에 그쳤다.

      다카이치 총리의 우선 과제는 경제 대책 수립하고, 물가 상승 대응을 포함한 2025년도 보정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이다. 자민당과 유신이 20일 체결한 연립정권 합의문에는 휘발유세 감면과 2년간 식료품의 소비세 면제도 명기되었다. 시장에서는 새 정권이 적극적 재정을 지향하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회보장 정책도 큰 과제다. 유신의 요구에 따라 현역 세대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개혁에 착수할 방침이다. 다만 자민당이 일본의사협회 등의 반발을 무릅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정치와 돈’ 문제에 관해서는, 자민·유신 합의에서 기업 및 단체의 정치 헌금 금지 여부가 결론 없이 미뤄졌다. 이는 정치와 돈의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제외한 것”으로 비친다. 정치 개혁을 미루는 것은 국민의 불신을 키울 뿐이다.

      외교 분야에서는 이달 28일 전후로 예정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첫 시험대가 된다. 일본의 방위비 증액이나 대미 투자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와의 연대를 축으로 중국과 어떻게 마주할지가 핵심이다. 외교·안보 전략의 재구축이 불가피하다. 그 일환으로 2022년 말에 수립한 국가안보전략 등 ‘안보 관련 3문서’의 개정이 진행된다. 일본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장비와 인력 배치를 재검토하고, 방위비 증액을 일본이 주체적으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내 우파 세력을 결집시켜 정권 기반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만큼 국제관계에서 갈등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 자민·유신 연립의 불안요소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의 연립정권 수립에서 유신은 ‘각외(閣外) 협력’으로 한다는 방침이다. 즉, 정식의 연립 관계로는 들어가지 않지만, 총리 지명 선거의 투표나 내각 불신임 결의안에 대한 대응 등에서는 국회 운영에 협력한다는 것이다. 각외 협력은 1997년에 출범한 제2차 하시모토 류타로 자민당 정권에서 사회민주당과 신당 사키가케와의 연립 이후 처음이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21일에 출범시키는 연립정권은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 특히 유신이 요구한 국회의원 정수(의석수) 삭감 문제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부에서 이견이 많다.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합의를 했지만, 만약 이것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유신의 반발로 인해 정권 운영이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우선 국회의원 정수(의석 수)를 줄이지 못한다면, 사회보장 개혁이나 부(副)수도 구상과 같은 개혁은 불가능하다.” 일본유신회의 요시무라 히로후미 대표는 20일 정오, 오사카부청에서 기자단을 상대로 이렇게 강조했다. 유신은 오사카부와 오사카시에서 행정개혁을 추진하면서, 의원 정수를 실제로 줄인 바 있다. 정치인이 먼저 ‘자신의 몸을 깎는 개혁(身を切る改革)’에 나서지 않으면, 찬반이 엇갈리는 개혁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 그 배경에 있다.

      자민당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 등이 유신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당내에서는 여전히 강한 반발이 있다. 자민당의 총무회는 전원 일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자민당 내 의견이 하나로 모인다 해도,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자민당과 유신 양당의 중의원 의석 합계는 231석으로 과반수에 미달한다. 비례대표 의석 삭감의 영향을 크게 받는 중소 정당들은 자민·유신의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21일 소집된 임시국회의 회기는 12월 17일까지 58일간으로 예상된다. ‘연립의 조건’이 처음부터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자민당과 유신 집행부 사이에서 연립 협상 이전부터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은 다카이치 총리와 엔도 다카시(遠藤敬) 국회대책위원장 정도라고 알려졌다. 자민당 내에서 유신과 가까웠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이미 집행부에서 물러났다. 조정 역할로 이름이 오르는 인물은 엔도 위원장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를 총리 보좌관으로 기용하였다. 이는 유신의 의견을 총리에게 직접 전달하기 쉽게 하기 위한 구상으로 보이지만, 양당 간 정치적 연결고리가 여전히 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유신이 다카이치 총리가 요구한 ‘각내 협력(閣内協力)’을 수용하지 않은 것은 자민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 정권 내 불협화음이 커졌을 때 손쉽게 연립에서 이탈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위한 계산으로 보인다.
    | 일본 정국의 변화와 한일관계
      다카이치 정권은 소수 여당이기 때문에 우선 여당 유신회와 타협하여 안정적인 관계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정권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야당과의 정책 협력도 시야에 두어야 한다. 다당화 시대의 다카이치 총리가 안정적인 정권을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선거를 통해 자민당의 의석수를 늘이지 못한다면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또한 야당과의 정책 교섭에서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불안정한 정국이 지속될 수 있다.

      일본의 정권이 불안정하면 한일관계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상대가 국내정치에 매몰되어 소극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의 후계자라는 인식이 강해 한국이 원하는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국내 보수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한국을 자극할 수 있는 위험성마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우려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다카이치 총리가 참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국내정치에서 야당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야스쿠니 참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총리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정권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보수적 색깔보다 경제정책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물가대책이나 경제정책에서 지지율을 올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관계에서도 한미일협력을 중시할 가능성이 높다. 아베와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일관계에서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도 미국의 요구에 대응하여 일본의 군비 증강과 ‘안보 관련 3문서’의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다카이치 총리는 군비 증강과 헌법개정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한국이 우려할 할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일본이 급격히 군비를 증강하는 것은 예산과 맞물려 무리가 있다. 그리고 다카이치총리의 평소 소신대로라면 역사인식문제, 독도문제 등으로 한국 내 반일 정서를 자극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도되지 않는 돌출사건에서 한일 감정 대립을 부추길 수 있다. 일본 정치권은 더욱더 우경화되고, 한국 시민세력의 일본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존재하여 갈등의 씨앗은 남아있다. 또한 과거사문제 이외에도 수산물 개방, 타이완문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반도체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한일의 인식차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한일관계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한일협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또한 일본 정치권도 트럼프 시기에 한일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컨센서스를 갖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일정책에서 실용외교를 실현하면서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이끈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다카이치 총리는 이전의 자세와는 달리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상호이해와 이익이 맞닿는 지점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자세를 취할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한국도 부정적인 상황을 관리하면서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여 서로 윈윈(Win Win)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트럼프 시대에 한일 양국은 국제관계에서 처한 입장이 비슷하다. 미중의 일방적인 요구에 한일 양국이 협력하면 한국가 대응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역으로 한일 양국이 갈등과 대립을 하면 미중에게 이용당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한일 양국이 협력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다. 한일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 윈윈할 수 있는 협력관계, 그리고 국제관계에서의 전략 파트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한일국교 정상화 60년의 역사 위에서, 앞으로의 60년은 전혀 다른 양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일 양국에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인식과 정책이다.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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