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외교의 복원으로 돌아온 대일‘포용’정책의 효과
[세종논평 2023-06 (2023.05.16)}
이 면 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mwlee@sejong.org
한국을 전격 방문한 기시다 일본총리가 지난 5월 8일에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했다. 지난 3월 16일에 이어서 올해로 벌써 두 번째로 개최된 이번의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국내외적 평가는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색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한일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있어서는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수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한과 그에 따른 정상회담 성사는 한일간에 갈등적 측면을 지양하면서 관계개선을 위한 좀더 실무적인 협의와 교류가 가능한 셔틀외교의 복원을 의미하며 진전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하겠다. 관계복원은 그 자체로서도 이전 정권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성과로 긍정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일간에 놓여있는 과제들, 예를 들어 위안부문제나 징용문제와 같은 역사인식문제군이나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북한의 위협 증가에 대한 대처와 같은 안보문제군, 독도문제와 같은 영토문제군,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의 배제문제나 후쿠시마원전의 처리수문제와 같은 경제문제군 등등은 결코 단시일내에 갑작스런 해결방안이 나와서 완결되기는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무엇보다도 국내적, 대외적 구조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내용과 같은 공식입장에 더하여 징용피해자들의 고통에 마음아프다는 개인적 입장을 표명한 기시다 총리의 언급이나 후쿠시마원전의 처리수 방출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배려해 시찰단의 파견에 합의가 이뤄졌던 것은 지난 3월의 정상회담 이후로 진행된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재진입이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재가동에 더하여 얻어진 진일보된 성과라고 하겠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성과가 비록 미진하게나마 얻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과 뚝심의 리더십에 의해 추진된 대일‘포용’정책의 효용이 긍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고, 이것이 연쇄적으로 선순환적인 흐름을 만들며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일‘포용’정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이 한국과 ‘자유, 인권, 법질서’라는 가치규범을 공유하는 국가이며, 그러한 기반 위에 한일 양국간의 과제들에 대한 단기적 성과, 예를 들어 사과표명 등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위기적 국면들을 노출하는 국제환경의 현실에 대해서 장기적 측면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아가겠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에 따라 국내적으로 예상되는 비판 및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단한, 징용문제와 관련한 ‘제3자변제’라는 안을 기반으로 해서 지난 3월의 정상회담이 추진됐고, 이것이 4월 한미정상회담의 워싱턴 선언으로 연결될 수 있었으며, 다시금 기시다 총리의 전격적인 한국방문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기시다 총리의 한국방문이 예정 보다 빨리 앞당겨진 배경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지만, 무엇보다도 윤 대통령의 미국방문 이후에 이루어진 점을 고려하면 주요 요인은 역시 윤 대통령이 방일과 방미를 통해서 일관되게 보여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신뢰의 회복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있어서도 미국과의 핵협의그룹(NCG) 설치가 포함된 워싱턴 선언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는데, 예를 들어 한국에 비판적인 보수언론계의 산케이신문이 기시다 내각을 향해 한국의 윤 대통령 행보를 본받아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한국행을 서둘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에서도 핵무장 또는 미국과의 핵공유나 핵협의그룹 설치 등의 주장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의 예로는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베 전 수상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한 바 있는데, 안보3문서의 개정과 관련해 2022년 3월 중순에 개최된 자민당 안보조사회에서는 비핵3원칙을 고수하려는 일본의 상황이 나토(NATO)와는 다르다는 비판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2022년말에 개정된 안보문서에는 포함되지 않은 경위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 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을 전후해 제시한 ‘자유’, ‘인권’, ‘법질서’ 등의 가치규범을 중심으로 한 가치 또는 정체성 외교가 지난 1년 동안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짐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한국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특히 외무대신 시절 2015년의 위안부합의를 추진한 바 있고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 인물이다. 그러한 그가 이번에 3월 정상회담에서 여전히 보여준 조심스런 자세 및 입장에서 벗어나 좀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 데에는 관계개선의 근원이 되는 신뢰회복이라는 요인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하겠다.
포용정책은 이처럼 솔선수범으로 상대방을 감화, 납득시켜 믿게 만들어서 스스로 반응하게 만드는데 묘미가 있다. 최근 들어 갈등양상을 수시로 드러내는 한일관계는 더 이상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구속되는 시기가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복합위기로 표현되는 시대적 상황이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고 하겠는데, 그렇기 때문에도 어렵게 구축된 신뢰기반이 더욱 발전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대일포용정책의 유지가 요구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