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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정책 2022-10월호 제50호] 영국 리즈 트러스 총리 취임이 유럽정치에 미치는 영향

등록일 2022-10-04 조회수 2,304

 

영국 리즈 트러스 총리 취임이 유럽정치에 미치는 영향

 

김용민(건국대학교 중국연구원 연구전임 조교수)

kym7224@naver.com

 

후발주자에서의 역전극

 

보수당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물러나는 것이 확정되고 보수당의 당수를 새로 선출하는 과정에서 리즈 트러스는 처음에는 유력후보가 아니었다. 실제로 경선이 시작됬을 때 트러스는 3위였고 5차 투표에 이를 때 까 지도 3위에 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 후보의 스캔들, 그리고 강경한 국내정책 등을 내세운 경선 과정의 선거 전술이 성공하여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보수당이 아닌 노동당 좌파의 부모 아래에서 자라나 자유민주당의 열성 당원으로 대학 시절을 보낸 그녀의 등장은 정치적으로 과연 보수당이 맞는가? 라는 평가를 들었고 시시각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카멜레온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보수당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던 대처를 존경한다는 그녀의 발언과 함께 보리스 존슨을 지지하던 보수당 당원들의 지지를 모으면서 총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브렉시트를 반대하다가 통과된 직후 지지로 돌아선 경력과 총리 경선 과정에서 에너지 비용을 지원할 수 없다고 하다가 총리가 된 후에 바로 에너지 비용에 대한 지원을 밝혀 명확성이 부재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비판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리즈 트러스의 정책이 무엇이냐? 라는 부분에서는 현재 불분명한 부분이 많이 존재하지만, 당수 경선 과정과 현재 총리 취임 이후의 공약과 정책들을 통하여 리즈 트러스 이후의 영국이 유럽정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측해 보려 한다.

 

보리스 없는 보리스 정권?

 

가장 먼저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 전임이었던 보리스 존슨 정권과의 차별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브렉시트를 지지하며 유럽연합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점에서 보리스 존슨과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는 비판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그러나 미-중 대결 국면에서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러온 새로운 국제정치 환경에서 과연 트러스가 아니라 다른 보수당 후보가 총리에 선출되었다고 해도 과연 다른 정책을 펼 만큼 정책 선택의 폭이 넓었는가? 하는 의문은 들 수밖에 없다. 물론 보리스가 없는 보리스 정권이라고 야유를 받을 정도로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일정한 부분에서 어쩔 수 없는 외부환경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는 시점에 총리로 선출되었다는 옹호론도 일리가 있다. 특히나 외교 측면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매우 좁은 상황이다. 특히나 국내의 정치적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에너지 비용 증대, 이민자, 건강보험, 경제위기 등) 과연 외교에까지 손을 돌릴 수 있는가? 하는 회의론도 강하다. 이에 단기적으로 외교 정책에 있어서는 보리스 존슨의 외교정책을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론적으로 존슨이 추진하였던 QUAD, AUKUS, 그리고 영-일 관계의 강화를 통한 FOIP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정책)CPTP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의 적극적인 참가와 영향력 행사를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브렉시트로 인하여 유럽 연합에게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현재 유럽연합의 대체재로서 영국의 외교자원인 커먼웰스 (구 영연방) 국가들과의 연계를 강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리즈 트러스 만의 색깔을 낼 수 있을지는 수립된 정권이 장기정권이 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어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보리스 없는 보리스 정권이라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하여 단시일 내에 리즈 트러스가 얼마나 자신의 독자적인 색깔을 낼 수 있느냐가 정권 유지의 관건이 될 것이다.

 

산적한 국내 과제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 리즈 트러스 총리의 앞에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코로나 이후 침체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경기부양책으로 실시한 감세는 부자 감세에 불과할 뿐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파운드 화의 역사적 약세를 불러오고 있다. 37년 만에 최저가를 기록한 파운드의 대 달러 환율은 1:1조차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기본 1파운드는 2달러 수준이었다) 이에 더하여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비용의 증대는 생활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빈곤층이 목숨의 위기를 느낀다고 할 정도로 폭발적이다. 현재 영국의 국민들은 한 가구당 평균 80%의 에너지 비용의 상승에 직면하고 있으며 경선 기간 트러스는 올겨울까지 전기와 가스 등 비용의 인상을 억제할 것이고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내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상을 시행하지 않으면 영국은 올겨울에 대규모 정전과 같은 블랙 아웃을 경험할 것이라고 관료들은 경고하고 있다. 트러스는 석유 공급의 원활화를 위해 북해에 130개의 원유 시추공을 추가한다는 방침이지만 환경단체의 반발과 예전 셰일가스 시추 시점에 일어났던 지진과의 연관성 등으로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다.

두 번째로 논의되어야 하는 국내문제는 이민자 문제와 노동자들의 권리문제이다. 이는 단순 저가 노동을 영국에서 주로 이민자들이 담당해왔다는 점에서 연계되어 있다. 이는 현재 영국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 48시간 노동제와 더불어 매우 예민한 사안이며 철도와 우편노조등은 리즈 트러스 정부의 노동정책을 주시하며 파업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 기본적으로 노동자 계급과 보수당의 관계는 노동당보다는 안정적이지 않으며 이번에 실시된 감세정책에 대해서도 이미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로서 파운드의 외환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생활 비용이 증가되며 경기가 침체될 경우 잠재적인 위험요소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또한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NHS (무상의료) 재정문제와도 연결된다. 현재 코로나 19로 인하여 최대적자를 보이고 있는 NHS의 재정개혁은 시급한 과제이지만 리즈 트러스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있으며 오히려 예산을 삭감하여 사회복지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으로의 노동계와의 관계가 정권의 장기 안정화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분야가 되었다. 종합적으로 국내에 산적한 과제를 직면한 트러스 정권이 이번 감세 정책의 시행으로 촉발된 파운드화 가치의 급락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사실 리즈 트러스 정부는 스코틀랜드 발모랄 성에 있는 여왕을 비행기로 직접 찾아가 방문하여 내각 구성의 허락을 받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두 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입헌군주와 총리가 안정적으로 영국을 이끌었던 대처 시대의 재림을 내세웠던 리즈 트러스로서는 안정과 지속성의 상징이던 여왕의 급작스러운 서거는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변수이며 커다란 위기이다. 찰스 3세가 말한 것처럼 언젠가는 올 줄 알았으나 가장 두려워했던 순간이지만 모든 일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It's the moment I've been dreading, but we try to keep everything going)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이라는 재위 기간이 말해주듯 영국 사회에 있어서 공기와 같은 존재였다. 영국사람들은 대부분 할머니, 혹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과 같은 감정의 상실을 느끼고 국장기간을 보냈으며 노동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찰스 3세에 대한 Not My King 운동이나 왜 죽은 사람을 위해 병원 등 살은 사람이 고통을 받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10일이나 지속되는 국장에 대해 전반적인 영국 사회는 일치단결하여 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커다란 여왕의 발자취를 찰스 3세가 잘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리즈 트러스 정권의 안정성과도 연계된다.

영국 사회는 서서히 엘리자베스 2세라는 빅토리아에 버금가는 큰 군주의 빈자리를 느낄 것이고 우표도 화폐도 변화를 맞을 것이다. 가장 먼저 코먼웰스 (구 영연방) 56개국 중에 영국 왕을 수장으로 삼는 14개국 (코먼웰스 렐름)이 어떤 결정을 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유럽연합을 대체할 영국의 외교적 자원으로서 코먼웰스를 중시하는 새로운 정부에게 엘리자베스 2세로 대표되는 안정적인 입헌군주제가 상실된 것은 커다란 타격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영국 왕실의 상징성과 안정성이 계속 유지되느냐는 영국 정치와 외교에 있어서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였다.

 

리즈 트러스 총리 정권이 유럽에 미치는 영향과 한국에 주는 정책적 시사점

 

그러면 결론을 대신하여 과연 리즈 트러스 정권이 유럽에 끼칠 영향은 무엇이고 이러한 외교적 변화에 한국은 어떠한 정책으로 유럽과 영국의 변화에 대응하여야 하는가를 고찰해 보려 한다.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일단 단기적으로는 리즈 트러스 정권은 산적한 국내적 문제로 인하여 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하여 외교적인 부분에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총리 경선 과정에서 이미 강하게 중국과 러시아를 비판하였고 미-중 대결에 있어서 완벽히 중국보다 미국을 선택할 것을 천명하였다. 특히 첨단 기술 부문에 있어서 중국에 대해 강력한 제제를 취할 것을 명확히 하는 트러스는 외무장관 시절부터 일관되게 유럽연합, 중국, 러시아에 대해서는 강경한 자세를 보인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면하여 국방비의 GDP 3%를 초과하는 증액을 표명한 상황이며 보리스 존슨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을 충실히 계승할 것을 확인하였다.

중국에 대해서는 전임자 보리스 존슨 보다도 더 강경파이다. 영국이 화웨이를 5G 관련하여 제재하는데 관련하였고 국가안보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밝힌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그리고 여러 차례 중국은 영국의 안보의 위협적인 존재라고 발언한 바 있다.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브렉시트에 남아있는 가장 큰 과제인 북아일랜드 국경문제에서도 유럽연합과의 소송도 불사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전체와의 경제적인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트러스 자신이 특별한 관계 (Special Relationship) 라고 인정하는 미국이 영국과 유럽연합의 분쟁을 원하지 않고 있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나토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에 유럽연합과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에 한국의 대 영국 외교정책으로서는 기본 보리스 존슨 정권 시점에 체결된 FTA와 같은 연계를 유지하면서 미-중 대결에서 완전히 미국 측에 가담한 영국에 대해 중국과의 관계를 일정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을 명확히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FOIPAUKUS, QUAD 등으로 일본과 접근하여 적극적으로 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진출을 모색하는 영국의 움직임에 대한 대비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것이다. 영국이 예전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대영제국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유럽의 중요국가이며 코먼웰스의 56개국에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현재 공석인 영국대사를 빨리 임명하고 변화에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