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 4에 대한 이해: '반중 칩4동맹’ 용어 바로잡기
[세종논평] No. 2022-05 (2022.8.10.)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woo@sejong.org
최근 국내언론에서 소위 ‘칩4동맹’이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칩4, 혹은 칩4동맹이라는 단어는 우리 언론에서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것이 미국과 일본, 대만과 함께 대중국 반도체 정책을 모색하고 결행하는 ‘반중 정책 동맹’이라는 전제 하에, ‘칩4동맹’에 ‘가입’함으로써 결국 중국이 우리에게 보복을 가할 것이라는 논리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국제 규범과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의 국익을 위한 정책인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중국이 반발하여 보복하지 않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은 정상적인 정책 논의의 과정으로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서 ‘칩4동맹’이라고 불리우는 ‘FAB 4’는 과연 어떠한 것인지 파악하고, 그것이 우리의 국익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것인지, 중국의 반발은 이유가 있는 것인지 평가 분석하고 그에 따라 가치 판단을 해야 한다.
그에 앞서, 최근 칩4동맹이나 펠로시 미하원의장 방한과 관련한 논란 등의 배경이 되는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새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이 가까워지는 시점임에도 여전히 국내의 논의는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를 우선 이야기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새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반중 정책’이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림으로써 여론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대외정책 중 중국과 관련한 부분을 ‘반중 정책’, 즉 anti-China policy라고 영어로 설명하게 되면 그것은 더욱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데, 그것은 국내의 ‘반중 여론’이라는 단어에서 담는 ‘반중’의 의미와 영어로 표현되었을 때 anti-China policy에서 가지는 anti-China의 의미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언론에서 사용하는 ‘반중 여론’이라는 단어에서의 ‘반중’은 중국의 행태에 대한 거부감 정도로 해석될 수 있으나, ‘반중 정책’, anti-China policy에서의 anti-China는 중국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중국을 고립시키고 적대시하거나, 또는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취하겠다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반미 여론, 반일 여론이 존재할 수 있지만, 우리 정부가 반미 정책이나 반일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쓰지 않는 것처럼, 반중 여론은 존재할 수 있으나, 정부가 중국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반중 정책을 쓸 상황은 아닌 것이다. 중국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바이든 정부 조차도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선을 긋고, 미국 유수 언론등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비판하는 것도 같은 차원의 이야기 일 수 있다.
한국 새정부의 중국과 관련한 입장은 상호 존중하되 당당하게 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적 입장은 ‘반중’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에 있어서의 중요성, 여전히 비중이 높은 교민과 유학생 등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 등을 고려하였을 때, 한국이 ‘반중’정책을 쓸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우리의 국익과 안보를 위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국으로부터 부당 혹은 불법적인 개입 가능성으로 인해 우리의 국익을 훼손하면서 정책을 수정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입장이다. 이것은 중국을 고립시키거나 적대시 하는 반중 정책이 아니고, 우리의 국익을 기준으로 외교정책의 방향을 정하겠다는 원칙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최근 FAB 4에 관한 논의를 살펴본다. FAB 4는 우리가 미국 및 주요 국가들과 이미 수행하고 있고, 또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논의체와 다를 바가 없는 모임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로 인한 국제적 공급망 불안정을 겪은 주요 반도체 제조국들이 앞으로 어떻게 협력하는 것이 공급망 불안정과 미래 반도체 수급을 위해 효과적일지 모여서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요 의제도 R&D 협력, 반도체 생산 관련 인재 양성, 공급망 안정에 대한 대책 논의와 같은 것이지, 특정 국가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는 협의체가 아니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수단은 2018년 ZTE, 2019년 화웨이의 경우와 같이 수출 통제의 방법을 독자적으로 취하면 충분하고, 또 미국이 네덜란드 및 일본과 같이 주요 반도체 제조장비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제조장비 수출 제한 등으로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FAB 4는 반도체 기술의 보호와 통제의 목적이라기 보다 산업 발전과 육성 차원의 목적을 위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고, 미국 정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칩4동맹’이라는 배타적 결사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또, 한국, 일본, 대만 등 주요 반도체 제조국들은 이미 각국 업체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치열한 경쟁을 해오고 있는 데, 그러한 업체들을 특정 목적을 위해 각자의 이익을 타협하게끔 하는 ‘동맹’을 추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하에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같이 이야기 해보자는 정도의 논의체 결성이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FAB 4에서 미국, 일본, 대만 등과 이러한 논의를 한다는 것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의 반발 및 보복을 당연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우리는 여전히 중국에 반도체 수출을 원하고, 그것은 대만도 마찬가지이다. 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네덜란드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수출통제로 인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만큼 관련 당사자들이 논의하고 타협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데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이익에 필수적이다.
중국이 반도체 생산을 시작한 이래,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는 매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메모리 분야에서는 중국의 기술 발전이 매우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미국 및 주요 반도체 제조국들과의 협력에 대해 중국이 반발을 하여 우리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중국이 우리 기술을 따라잡거나 추월하게 되는 상황이다. 중국의 보복이 아니라 중국과의 기술격차 감소로 중국에 반도체 수출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더 우려해야 한다. 이미 조선업, 디스플레이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던 많은 산업 영역에서 중국에게 따라잡힌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본다면, 주요 반도체 제조국 및 기술 보유국들과 협력을 통해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그에 따라 우리의 시장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잘못된 논의의 프레임, 정책에 대한 오해 등이 결과적으로 정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우게 되고,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손해를 가져오게 되므로 신중하고 진지한 논의가 그 어느때 보다 필요하다.
참고로 Fab 4는 여기서는 반도체 제조공장을 뜻하는 fabrications의 약자로, 반도체 제조 주요 4개국을 의미지만, 원래는 비틀즈의 별명 (Fabulous 4)인데, Fab 4를 검색해보면 반도체 동맹 같은 이야기는 없고, 비틀즈에 관한 이야기만 검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