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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정책 2022-3월호 제15호] 인도태평양 통상-안보 환경의 변화: 자유무역에서 공급망 경쟁으로

등록일 2022-03-03 조회수 4,626

인도태평양 통상-안보 환경의 변화: 자유무역에서 공급망 경쟁으로

 

 

최윤정 (세종연구소 신남방협력연구센터장)

yjchoi@sejong.org

 

 

202221일 한국은 세계 GDP(30.8%), 인구(29.7%), 무역(31.9%)의 약 30%를 차지하는최대의 메가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발효시켰다. 그런데 이로부터 열흘 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판 인도태평양 전략서(Indo-Pacific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를 발표하고 2022년 상반기 중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의 출범을 예고했다. 인도태평양 통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IPEFRCEP 출범으로 중국에 주도권을 내어줄 위기에 처한 미국이 내민 비장의 카드이다. IPEF는 포괄적 무역자유화 대신 미국 제조업 회복과 안전한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대상 국가로 RCEP에서 중국과 아세안의 친중 3국이 빠진 대신에 대만이 거론되고 있다.

 

 

1. 인도태평양 경제의 주도권 경쟁

 

2000년대 들어 국제통상 무대에서의 승자는 중국이었다. 2001WTO 가입 이후 자유무역의 고속도로에 올라타고 초고속 경제성장을 구가해온 중국은 20089.0%에서 202114.7%로 세계 시장에서 비중을 높이며 부동의 1위 무역국가로 위상을 굳혔다. 특히 아세안과 5개 대화상대국(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이 참여하는 RCEP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중국은 RCEP의 다른 14개 회원국 중 12개국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별로 중국이 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서 40%까지 이른다.

 

중국이 자유무역체제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세계 시장 점유율이 8% 수준으로 낮아진 미국은 세계 양대 메가 FTARCEP에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묘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바이든 정부 들어 미국은 FTA를 추진하지 않았다. 대신 2021미국의 공급망전략서 발표(America’s Supply Chains, 6), 한국을 포함한 14개국과 EU 정상이 참석한 글로벌공급망복원 정상회의 개최(Summit on Global Supply Chain Resilience, 10), 동아시아정상회의 계기(EAS, 10) IPEF 소개에 이어 20222월 인태전략서를 통해 IPEF 추진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미국의 인태전략서와 정부 발표를 종합해보면, IPEF인도태평양 지역의 다자 경제협의체로서 핵심 소재 및 산업(반도체)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디지털 경제, 무역원활화, 탈탄소청정 에너지, 인프라, 노동자의 권리 등 6개 분야별로 참여국들간의 합의에 기반한 모듈형 협의체로 추진될 전망이다. IPEFCPTPPRCEP와 같은 다자 무역협력협정과는 달리 경제안보 의제를 선택적으로 다루는 협의체로서,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의 독자적인 공급망 구축 계획이었던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EPN)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1. 미국 IPEF 구상의 주요 내용

 

예상 내용

성격

인도태평양 지역의 소다자 경제협의체

형태

의회의 승인을 요하는 무역 협정이 아닌 분야별 합의 형성에 기반한 모듈형 협의체

미국 EU무역기술위원회(TTC) 및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과 운영상 유사성 예상

대상 분야

탄력적이고 안전한 공급망, 디지털 경제·기술 규범, 무역 원활화, 탈탄소·청정 에너지, 인프라, 노동자 권리 등

대상 국가

한국, 일본, 베트남, 호주, 싱가포르,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 등이 후보로 거론

일정

2022년 초 출범 절차를 공식적으로 개시하고, 연내 참여국과 인도태평양 경제 체제의 비전에 관한 공동 성명을 낼 전망

 출처:  인도태평양 전략서, 정부 발표자료 및 주요 언론 보도를 종합하여 저자 작성

 

이어서 224일 공급망 강화를 위한 행정명령 140171주년 기념 보고서를 통해​1) 바이든 정부는 국방부, 국토안보부, 상무부, 에너지부 등 7개 관련 부처와 함께 공급망 전략을 총 지휘함으로써 국내 제조업 성장과 공급망 강화, 중국과의 글로벌 경쟁을 지원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국내적으로는 경쟁법(COMPETES Act)​2)과 혁신경쟁법(USICA)의 의회 최종 통과를 촉진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IPEF,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와 같은 협의체를 운영하고 2022년에도 글로벌공급망복원 회의를 연달아 개최하여 미국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2. 공급망 경쟁이 통상-안보 환경에 몰고 올 파장


이같은 통상-안보 환경의 변화는 자유무역 혜택의 축소와 역내 무역 왜곡, 아세안 중심성의 훼손과 불이익, 국내 산업경쟁력 저하 등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첫째, 자유무역 혜택의 축소는 다자주의에 기반한 자유무역에서 안보 논리가 지배하는 폐쇄적인 공급망 짜기로 통상의 프레임이 바뀌면서 무역 비용이 높아지고 소비자 후생은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구조로 퇴행하는데 따른 결과이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일본, 유럽​3), 인도 등 주요국의 합류 또는 독자적인 공급망 구축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이는 이미 무력해지고 있는 WTO를 더욱 유명무실하게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다.

 

둘째, 심각한 역내 무역 왜곡이 우려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인도태평양 국가 대부분이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ASEAN RCEP 모두와 무역규모에서 미국보다 두 배가 넘는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도 200112.1%에서 201124.2%, 202125.3%로 늘어나고 있다. 호주의 경우 대중국 수출액은 1,648억 달러로 대미 수출액 125억 달러의 13배에 달한다. RCEP 체결의 최대 수혜국으로 중국이 꼽히는 이유이다. 그런데 미국도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호주 등 주요국의 수입 2~3위 국가이고, 중간재 무역에서는 비중이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미국이 공급망의 판을 새로 짜면 미국과의 무역에 어려움을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중국을 경유하는 판로도 막혀서 이중고를 겪게 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IPEF를 추진하면 역내 무역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RCEP이 무기력해지면서 아세안 중심성의 훼손과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IPEF 참여가 예상되는 국가들 중 대만을 제외하면 모두 RCEP 회원국이다. 그런데 RCEP 회원국 중 아세안의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는 거론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저개발국가인 동시에 친중국가이다. 아세안 중심성은 아세안 10개 회원국 모두의 참여가 기본이다. IPEF에 일부 회원국이 배제된다면 아세안 중심성은 지켜질 수 없다. 또한 RCEP 회원국이 RCEP의 원산지 기준과 재료누적 조항의 적용을 받아 중국을 비롯한 IPEF 미참여 국가를 경유한 소재 및 부품을 포함하는 상품을 수출하는 경우 IPEF 체제에서 제약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중간재 무역 비중이 높은 한국에게는 특히 불리한 상황이다.

 

넷째, ‘정경분리원칙의 파괴는 국내경제에도 부정적인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정경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정부가 깔아놓은 시스템의 인프라 위에서 기업이 경제 논리에 따라 효용(utility)을 극대화할 수 있다. 반대로 정경유착이 되면 공정과 경쟁의 원칙이 무너져 산업경쟁력이 저하된다. 가뜩이나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정부의 존재감이 높아지는 시대, 통상과 안보의 밀월관계는 자유시장제도의 후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3. 한국의 인도태평양 통상-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

 

그렇다면 새로운 통상-안보 환경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할까? 첫째, 자유무역의 입지가 줄어들수록 RCEP을 비롯하여 기체결한 FTA의 과실을 향유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한국은 58개국과 FTA를 체결하여 세계 GDP85%에 달하는 통상 영토를 확보하였다. RCEP에서 15개국이 단일 원산지 규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체결한 FTA의 활용율을 제고할 수 있도록 원산지관리 시스템 개선과 인력 지원 등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기업은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의 인도태평양 공급망 협력을 총괄할 수 있는 청와대 직속 통합 조정기구의 설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 논리가 촉발된 것은 기술경쟁력, 원자재 확보 및 국제 분업 등 다차원적인 문제가 집결된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향후 공급망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최선의 국내 자원 투입 및 국제 협력을 통해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FTA에 공급망 협력을 추가하는 플러스(+) 개념으로 접근하거나 특정 부처가 공급망을 관리하는 차원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7개 핵심 부처와 공동으로 마련한 공급망 대책을 역사적인 산업기반보고서(Historic Industrial Base Reports )’라고 강조하였다. 관련 국내법도 제정하여 국내외를 총망라한 공급망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국은 미국 및 EU가 주도하는 공급망 구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한편 후방의 공급망 기지 육성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 한국은 이미 미국과 반도체, 전기차배터리, 의약품 등 핵심 부품소재 분야에서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투자 증진과 공동 연구 강화에 합의했으며, 반도체 공급망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EU에서도 핵심 파트너 국가로 한국과의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의 대체 생산기지로 성장하는 아세안과 인도를 대상으로 신남방전략, 또는 이를 계승발전시키는 차기 정부의 지역전략을 통해 신규 생산과 소비 거점을 발굴하고 상생형 진출 모델을 전개함으로써 자체적인 공급망 확보도 적극적으로 병행해야 할 것이다. 아세안의 중심성 약화와 역내 무역의 장애 요인 해결에 적극 나서 지역의 번영에 기여하면서 시장을 확장하는 상생의 전략이 필요하다.

 

넷째,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새로운 질서에 합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상술하였듯이 중국은 한국 뿐만 아니라 RCEP 회원국, 나아가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 국가이다. RCEP의 디지털 및 그린 전환, 국영기업, 노동자 권리 등을 선진 통상규범 수준으로 점차 끌어올리면서, 중국이 국제 통상환경의 변화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찾아가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이 CPTPPIPEF 등 새로운 통상 프레임에서 제외되어 중국 중심의 폐쇄적인 그룹을 만드는 것은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악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동맹국가로서 한국은 자유무역의 가치와 정경분리 원칙 등을 유사입장 국가 및 단체들과 함께 논의하고 입장을 조율함으로써 미국과 함께 지역의 번영과 안보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일방적인 대외정책을 들고 파트너를 압박하는 대신 자유무역을 주창하던 가치를 재확인하고 함께 하는 국가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구상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 다행이 2022년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는 동맹 및 파트너국가들과의 입장 조율을 미국 국내 기초 역량의 강화, 중국과의 대결(competing) 등과 함께 중요한 추진 전략으로 거론하고 있다. 최근 미국 산업계도 정부에 IPEF에 대한 세부 정책 제안을 제출했다​4).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산업계와 학계도 건설적인 기여 방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

 

 

1) The White House. 2022. The Biden-Harris Plan to Revitalize American Manufacturing and Secure Critical Supply Chains in 2022 (FEBRUARY 24, 2022).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tatements-releases/2022/02/24/the-biden-harris-plan-to-revitalize-american-manufacturing-and-secure-critical-supply-chains-in-2022/ 

2)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인권 유린을 비난하며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2.4) 당일 반도체 산업 육성과 신규 공급망 구축에 520억 달러를 투입하는 '미국 경쟁 법안(America COMPETES Act)'이 하원을 통과했다.

3) ​EU도 반도체 칩 공급망 구축을 ‘디지털 주권’으로 비유하면서, 2021년 역내 반도체 생산 확대, 디지털 및 그린 전환을 위한 ‘유럽 반도체칩 법(European Chips Act)’을 발표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국가들과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기술을 요하는 산업의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4) U.S. Chamber of Commerce. 2022.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Business Recommendations (February 25, 2022). https://www.uschamber.com/international/indo-pacific-economic-framework-business-recommend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