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동관계 전망: 불안정 상시화한 중동의 정치 역학
서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amirseo@hufs.ac.kr
뜨거운 감자 이란 핵 합의 복원의 변수
2022년 중동 정세에 가장 큰 변수는 이란 핵 합의 복원 여부다. 트럼프 행정부가 핵 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하는 등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이란의 반발이 고조되면서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의 대중동 정책 핵심 중 하나는 단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 합의(JCPoA)를 복원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이란 핵 합의를 복원하겠다고 여러 차례 명확히 밝혀왔고, 핵 협상을 타결한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활동했던 외교 안보 참모들을 대거 등용하며 합의 복귀 의지를 피력해왔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이란 정책은 전임 오바마 대통령의 노선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핵 개발 의지를 중단시켜 중동 지역내 공세적 행위를 차단함으로써 중동 안정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다. 그 방안으로는 JCPoA를 일부 조항을 재합의하거나 문구 수정을 통해 핵 합의를 복원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논의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분쟁 전문가로 일한 로버트 말리를 이란 특사로 임명해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 독일)과 이란 간 논의도 오스트리아에서 열려왔다.
그러나 핵 합의 복원의 앞날에는 많은 걸림돌이 있다. 우선 미국이 이란 핵무기 보유 불가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블링큰 국무장관도 이에 대해 청문회에서 명확히 언급했다. 더불어 워싱턴 정가에서도 이란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내 친미 핵심 국가가 미-이란 화해를 원하고 있지 않다. 특히, 미국의 동맹국 이스라엘은 2020년 말 이란의 핵 과학자 모흐센 파크라자데(Mohsen Fakhrizadeh)를 암살한 것으로 알려졌고, 시리아 내 이란의 군사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폭격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이란 내 정치상황도 긍정적이지 않다. 2021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강경 보수파인 에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 원리주의 성직자가 당선됐다. 협상의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숨 고르기를 거쳐 협상이 2022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란 핵 합의 복귀 성사 여부는 미-이란 양자 관계 추이는 물론 향후 중동 지역 질서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재개입과 신냉전 구도의 부상
다국적군이 이슬람국가(ISIS) 격퇴 작전을 펼치면서, 구소련 붕괴 이후 중동 정치 역학에서 배제되었던 러시아가 귀환했다. 테러 세력 격퇴의 명분이었지만 내전으로 수세에 몰렸던 동맹국인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강대국 러시아가 중동 분쟁에 재개입하면서 미국과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 2015년 9월 러시아의 본격적 군사개입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유지 가능성이 커졌고,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을 상쇄하는 러시아의 대중동 전략이 재가동되고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이어 리비아 접경 이집트 서북부 공군기지에 소규모 특수부대를 배치하고 리비아 동부 토브루크(Tobruk) 임시정부의 칼리파 하프타르(Khalifa Haftar)를 지원하는 등 중동 내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리비아에 2~3기의 MIG-23 전투기를 제공하면서 북아프리카까지 군사적 거점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이어 이집트에서 공군기지 사용권을 확보하는 등 중동 지역에서 더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결국 지중해 동안 시리아 서부 타르투스(Tartus)에는 해군기지를 그리고 지중해 남안 북아프리카 지역에 공군 기지들을 운영하면서 군사적 개입의 인프라를 사실상 구축했다.
더불어 러시아는 이란과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평화적 원자력 발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역내 반미 중심국가와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와 이집트, 샴(Sham) 지역의 시리아, 그리고 이란 3방향으로 전방위적 중동 내 역할 확대로 대(大)러시아(Greater Russia) 전략을 정치·군사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시리아 내 IS 격퇴 작전을 통해 러시아-터키-이란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사우디-이스라엘을 축으로 하는 기존 중동의 패권 벨트에 병립하는 새로운 냉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종파적 그리고 패권적 분열과 갈등 지속
역내 수니파와 시아파 종파 간 갈등 구도가 더욱 고착화하면서 향후 중동의 정치 역학 및 국가 간 쌍방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이 발행하고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 간 ‘경쟁 및 갈등 구도’는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수니파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제거되고, 시아파 중앙정부 부상으로 이란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되면서 형성되었다. 이후 종파 간 ‘충돌 구도’의 기폭제는 ISIS 부상과 격퇴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ISIS 급부상의 기저에는 이라크 시아파 중앙정부의 수니파에 대한 차별, 배제, 그리고 억압이었으며, 이로 인판 종파 간 반감이 깔려있다. 이런 맥락을 이용해 ISIS는 투쟁의 명분과 존립의 선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아파에 대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였고 종파 간 물리적 충돌을 주도하였다. 이에 대해 이란의 주도로 시리아 및 이라크 정부 그리고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ISIS 격퇴 작전에 참여하면서 약 1,500년 이슬람 역사에서 두 종파 간 최대 규모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시아파 벨트가 구축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수니파 연대도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특히 2015년 7월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되고 막대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이란이 중동 내 패권국가로 부상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면서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는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사우디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제되기 직전인 2016년 1월 이란 내 사우디 대사관 공격을 빌미로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사우디는 이어 이슬람회의기구 회원국 34개국이 참여하는 ‘이슬람 연합군’을 2015년 말 창설했다. 대외적 명분은 테러 세력에 대한 대응이었지만 이란을 겨냥해 수니파 국가의 군사적 동맹체를 구성하려는 움직이었다.
사우디 등 걸프 지역 수니파 주요국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보다 포괄적인 동맹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오랜 기간 적대 국가였던 이스라엘과의 협력도 추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안보 관련 물밑 비밀 접촉과 관련한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바레인,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연합, 이스라엘-수단 간 관계가 2020년 정상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이란-시아파 국가 패권 벨트에 맞서기 위한 미국-이스라엘-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가 주축이 되는 또 다른 역내 패권 축이 형성되고 있다. 두 패권 축 간의 긴장과 갈등이 2022년에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감염병 확산 장기화와 정권 불안 고조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장기화는 특히 비산유 중동 국가에 치명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더욱이 내전 혹은 준내전에 휩싸여 있는 일부 중동 국가의 경우 사회 인프라가 상당 부분 소실된 상황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은 주민들에게 추가적인 생활고를 가져오고 있다. 내전의 조기 종식을 위해서는 긴급한 재건사업이 추진되어야 하나 인적 및 물적 이동이 크게 제한되는 상황에서 사업 추진이 늦어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 지역은 이미 과격주의 세력이 활동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혼란에 사회적 불만이 겹쳐 심각한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전 혹은 불안정을 겪지 않고 있는 비산유국들에서도 바이러스 확산은 심각한 경제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내부의 불만이 축적되고 있다. 중동의 경우 근로자 파견 등 비산유국의 외화획득원이 상당 부분 산유국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동의 제한은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저소득 비산유국은 기존의 사회 및 의료 서비스 수준이 열악한 상황에서 대규모 감염자 발생으로 인해 기존의 인프라도 마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혼란이 점차 나타나고 있으며 바이러스 사태가 2022년에도 이어지면 더욱 치명적인 정치·경제적 악영향과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감염병 확산의 가장 심각한 파급효과는 실업률의 증가 현상이다. 실업은 중동 정치경제의 화약고다. 중동 정치 불안에서 가장 기저에 깔린 사회적 문제는 실업으로서 산유국이든 비산유국이든 대부분 높은 실업률로 인해 정권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비산유국의 실업률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이미 이들 중 일부 국가는 아랍의 봄이라는 대규모 정치저항 운동을 펼친 경험이 있다. 저산유국이면서 역내 정치 및 문화 중심지인 이집트의 경우 2019년 기준 청년실업률이 약 32%에 달해 이미 상당한 정치적 불안정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감염병 확산과 동반하는 실업률 급증으로 내부적인 불만과 불안이 고조되면서 가뜩이나 정통성이 없는 적지 않은 중동 국가의 정권 안정성이 크게 약화하고 있다.
국가별 섬세한 협력 전략 마련해야
2022년에도 중동의 불안정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국가에서는 내전이 지속하고 있고, 종파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고, 정권 생존을 위해 미국과 러시아를 축으로 지역이 양분하고 있다. 여기게 감염병이 이어지면서 각국의 사회경제적 갈등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불안정 요인이 종으로 그리고 횡으로 교차하면서 해결이 난망한 상황이다. 복잡한 정치 역학 속 각국의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중동의 복잡한 정치 역학과 불안정 지속은 우리의 접근에도 제약을 가져온다. 과거와 같은 ‘대중동’ 정책이라는 용어 자체를 없애야 한다. 국가별로 섬세한 협력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다양한 변수가 각국의 이해와 생존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또 과거와 같이 경제적 이득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곤경에 빠진 각국 지도부에 장기적이고 상호호혜적인 협력 전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발전 경험을 전하는 동시에 양국이 모두 이익을 추구하는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중동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절대적인 에너지 공급원이자 거대한 건설 및 플랜트 시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