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인도 정세와 2022년 전망
최윤정 (세종연구소 신남방협력연구센터장)
yjchoi@sejong.org
1. 들어가며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아세안과 인도를 주목한다. 아세안과 인도는 미-중 패권경쟁이 벌어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위치하여 지정학적 중요성이 높아진 동시에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이후 빠른 소비 회복에 힘입어 강력한 기술적 반등이 예상되는데다가 탈중국 해외 자금의 투자처이자 생산기지로서 각광을 받으면서 대표적인 고성장 지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피해는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고 지정학적 환경도 결코 녹록치 않다. 美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2021년 두 차례(3월, 9월) 개최된 쿼드(Quad) 정상회의와 9월 15일 오커스(AUKUS) 출범 등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1967년 결성 이후 강대국의 무관심과 적당한 경쟁 속에서 자율성과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던 아세안에게 제2차 냉전(Second Cold War)과 같은 현재의 상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동맹 노선을 견지하면서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외교의 최대 목표로 추구해왔던 인도 입장에서도 미-중 패권경쟁은 피하고 싶지만 무소불위로 세력을 키워가는 중국의 저지는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세안과 인도 모두 경제, 안보적으로 미국,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국가들로 명확한 입장 선택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최선이 아닌 차선의 상황에서 아세안과 인도는 2022년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을까? 코로나 이후 세계적인 대전환이 진행되는 2022년은 아세안, 인도의 변화만큼이나 한국도 이들과 진일보한 관계 설정에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아세안과 인도가 직면한 주요 문제점과 향후 과제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2022년을 전망하는 한편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시사점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2. 코로나19 피해와 아세안, 인도 경제
아세안에서는 2020년 1월 13일 태국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국가 마다 시점과 규모는 달라도 2021년 최악의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했다. 12월 17일 기준 1,40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봉쇄 정책의 여파로 경제적 피해도 컸다. 베트남의 경우 초기에는 효과적인 봉쇄 정책 덕에 전기‧전자, 섬유‧의류 등 탈중국 기업들의 생산 및 수출기지로 반사이익을 얻었지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공장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에 2021년 베트남 경제는 당초 5% 대로 예상되던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아세안에서 제2의 중국을 꿈꾸던 말레이시아(3.5%), 인도네시아(3.2%), 태국(1.0%) 등도 베트남과 유사한 상황이다.
아세안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억제와 경제 회복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부단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백신 접종률이 낮고 중국산 백신 접종 비중이 높아 각종 변이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2020년 마이너스 3.3%로 위축되었던 아세안 경제는 2021년 2.6% 기술적 반등을 시현한 후 2022년 백신 보급과 함께 경제 정상화가 이루어지면 5.5% 성장이 가능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는 오미크론 확산 이전에 발표된 전망이므로 2022년 성장률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는 2020년 3월 코로나19 발생 직후 약 두 달간(3.25~5.31) 전국 봉쇄조치를 단행하면서 –7.3%로 역성장했다. 그러자 모디 정부는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축소하는 한편 탈중국 글로벌 제조기업 유치를 통해 자립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발표하였다. 인도 경제는 회복세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면서 2021년 9.7%에 이어 2022년 7.5%로 세계 최고 성장률을 이어갈 전망이다. 최대 변수는 역시 코로나19 통제 시점이다. 인도는 세계 최대 백신 생산국이지만 12월 17일 기준 14억 인구 중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인구는 35.5%이고 확진자 수는 3,470만 명을 넘어섰다(표 1). 하지만 인도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현재의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2022년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 경제로 올라설 것이 유력하다.
3. 아세안: 중심성의 위기와 2022년 전망
전술하였듯이 코로나19는 아세안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안겼다. 하지만 이보다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 불거진 정치, 사회, 경제 각 분야의 취약점 앞에 무기력한 아세안의 대응일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아세안이라는 협의체를 이끌어가는 핵심 가치인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은 대내외적 도전에 직면하여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아세안 중심성은 동남아 국가 내부의 결속과 외부 협력에 있어서의 원칙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2021년 아세안 중심성은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대표적인‘내부적 도전 요인’은 미얀마 사태일 것이다. 2021년 2월 1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통해 아웅산 수치 정부를 전복하고 전권을 장악했다. 아세안은 4월 긴급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미얀마 군사정권 철수 등 5가지 합의 사항을 도출했고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을 2021년 10월 아세안정상회의에 초청하지 않는 등 다각도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내정 불간섭과 전원합의 의사결정을 원칙으로 해온 아세안의 전통에 비춰볼 때 이례적으로 강력한 조치였다.
아세안이 더 이상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얀마 상황에 대한 회원국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분열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미얀마 군부에 대해 아세안과의 5가지 합의사항 이행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브루나이, 필리핀, 베트남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반면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는 내정 불간섭 원칙을 들어 군사 또는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2022년 이 문제는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2021년 아세안 의장국인 브루나이의 리더십이 미약했다고 한다면, 2022년 의장국을 수임할 예정인 캄보디아는 미얀마 군부에 동조할 뿐만 아니라 아세안의 취약한 만장일치 합의 구조 속에서 역내 결속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2012년 7월 아세안 회의를 주최하면서 남중국해 문제를 의제에 포함하지 못하도록 저지하여 결국 아세안 역사상 최초로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처럼 내부 중심성이 약화된 아세안의 국제협력은 향후 수많은 어려움을 노정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미얀마 사태 대응에 대해 아세안의 입장을 지지하나, 중국과 러시아는 미얀마의 무기 수입 1, 2위 국가이자 군부 옹호 세력으로 그 반대편에 서있다. 이처럼 아세안 내부 분열이 상당 부분 역외 행위자에서 비롯하거나 부추겨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내부 중심성의 위기는 외부 중심성의 위기와 연결되는 것이다.
한편 미-중 패권경쟁이 가열되면서 중심성을 지켜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아세안은 2019년 6월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 AOIP)”을 발표했다. 이는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면서 아세안 중심성 원칙을 지키며 협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이후 아세안은 미국, EU, 인도, 한국 등 여타 국가 및 지역과의 협력 원칙으로 아세안 중심성과 함께 AOIP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12월 12일 첫 개최된 아세안-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서도 인도-태평양 협력 증진의 원칙이 아세안 중심성을 추구하는 AOIP임을 확인하고, 포용성과 국제법 존중 등 AOIP에 명시된 원칙에 따라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 유지를 위한 협력을 결의했다. 당장 2022년 출범하는 RCEP은 아세안 중심성 작동 여부를 가늠하는 실험대가 될 것이다. 아세안의 내부적인 통합과 대외 중심성 원칙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는 코로나19 극복과 함께 2022년 아세안 공동체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다.
4. 인도: ‘강한 인도’로 가는 2022년
인도 모디 정부는 2021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의외의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모디 총리와 소속 정당인 BJP가 추구하는 힌두 국가(Hindu Rashtra)로 향하는 통치 기반을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디 정부는 힌두 근본주의 사상인 힌두뜨와(Hindutva)와 강한 인도를 기치로 힌두교 축제, 사원 건립, 역사․언어 교육 등을 실시하고 이슬람 혐오를 조장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이같은 전략이 코로나 사태 때는 2021년 봄 힌두 축제로 인한 확진자 급증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이면에서는 무슬림을 코로나를 퍼뜨리는 적으로 묘사하고 핍박하는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결국 모디 총리 지지율도 70% 선에서 유지하였으니 힌두 근본주의에 기반한 통치는 2022년에 보다 과감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2022년에는 오는 2024년 5월 선거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강한 인도’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더욱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디 정부는 2019년 ‘강한 인도’를 선거 슬로건으로 제시, 독립 75주년이 되는 2022년까지 인도의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부강한 인도를 건설하겠다고 선포한바 있다. 2022년 진정한 인도의 탄생을 막아서는 다섯 가지 장애물(가난, 부정부패, 테러리즘, 분파주의, 카스트)로부터 인도를 해방시킴으로써 서구의 지배를 몰아내고 주권을 찾은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 진정한 독립 인도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외적으로는 다양한 국가들과 협력의 플랫폼을 확대하여 국제 협력을 주도하는 모습을 부각시킬 것이다. 인도는 2021년 쿼드에 이어 뉴쿼드(New Quad)라고 불리는 미국-인도-이스라엘-UAE 4개국 협력에도 참여하는 동시에 중국, 러시아와의 긴밀한 정상외교도 이어가고 있다. 한편 5월에는 인도-유럽 연결성 파트너십(India-EU Connectivity Partnership)을 체결하였는데, 교통, 통신, 금융 등 여러 방면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와 비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에도 달라진 국가의 위상과 지정학적 환경을 고려하여 인도는 전통적인 비동맹 외교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한층 적극적인 다자외교를 추진할 전망이다.
경제적으로도 코로나는 인도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지만 오히려 인도 제조업 육성 전략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에 박차를 가하고 중국을 대신하는 공급망 구축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을 열어준 셈이 되었다. 모디 정부는 2020년 5월 ‘자립인도 경제 부양책(Aatma Nirbhar Bharat; Self-reliant India Package)’을 발표하고 중국을 대체하는 생산기지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인도는 중국 시장으로부터의 수입 증가(즉, 대중 무역적자 증가) 우려를 들어 RCEP 최종 협상에서 불참을 선언했다. 대신에 일본, 호주와 3개국 공급망 복원구상(Supply Chain Resilience Initiative: SCRI), 21개국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서밋(Indo-Pacific Business Summit), 인-EU FTA 협상 재개 등 중국이 배제된 안전한 공급망(Secure Value Chain)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무역 협력을 주도하고 있다.
5. 시사점
아세안은 아세안 중심성의 원칙을 세워 강대국간 경쟁을 조율하고, 인도는 적극적인 비동맹 정책을 통해 강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쪽을 택했다. 한국도 강대국 관계에 있어 레버리지를 확보하고 전략적 이익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행위자인 아세안, 인도와의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새로 결성되는 다양한 협력 구도 속에서 아세안 중심성을 지키면서도 ‘아세안+한국+1’의 삼자협력(Trilateral Cooperation)을 추진하는 중개자(mediator), 촉진자(facilitator)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더욱이 아세안과 인도는 한국 정부가 지난 4년간 추진했던 신남방정책의 핵심 국가이다. 2022년 출범할 신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아세안, 인도와 양자관계를 심화하는 수준을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 차원에서 강대국 전략 경쟁과 지역 질서 변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 행위자들과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한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이는 지역 및 이슈별로 선이 그어져있는 현재의 정부 구조에서는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전략적 개념 단위별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한 이유이다. 개별 조직 단위에서 보면, 현재 아세안에 대해서는 외교부 내에 별도의 국을 신설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졌지만 경제․군사․외교 측면에서 대국인 인도에 대응하는 한국의 정부부처 조직은 아직 더 보강이 필요하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질서를 연구하는 연구자간의 네트워크 결성, 민간 자문기구 활성화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편 코로나19를 비롯한 글로벌 위기는 세계화의 위험요인을 부각시키는 한편 국가마다 보호주의를 되살리는 불씨의 역할을 하였다. 경제-안보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 중, 일과 같은 전통적 강대국 뿐만 아니라 인도와 유럽 등 주요국들이 지역경제통합을 전략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추세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아세안과 인도가 전술한 바와 같이 메가 FTA나 자국 또는 지역 중심의 소규모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다자주의 무역질서가 최선이므로 WTO 중심의 다자통상질서 복원을 위한 노력을 지속 경주해야 한다. 동시에 2022년 발효 예정인 RCEP이 규칙기반 소다자 지역무역협정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아세안, 인도와 같은 유사입장국가(like-minded country)와의 소다자 지역협의체 결성에도 적극 임하여 다자체제와 의제 기반 소다자 협의체를 양립하는 균형감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