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호주 삼자 파트너십의 전략적 목표와 우리의 고려사항
박재적(한국외대 부교수)
미국, 영국, 호주가 2021년 9월 15일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지역에서 안보·국방 협력을 강화하는 파트너십(AUKUS)을 출범시켰다. 삼국은 첨단기술 협력 및 정보 공유를 촉진하고, 안보·국방과 관련된 과학, 기술, 기반산업, 공급망의 융합과 연계를 심화하기로 합의하였다. AUKUS의 첫 번째 협력 사업으로 호주가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도록 미국과 영국이 지원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미국이 1958년에 영국에 관련 기술을 전수한 뒤 최초이다. 중국은 ‘앵글로색슨(Anglo-Saxon)’ 소다자체인 AUKUS가 핵확산 위험을 초래하고 군비경쟁을 유발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AUKUS의 군사 전략적 함의: 인태 지역 제해력 강화
미국과 영국이 비확산체계가 흔들리고 군비경쟁이 촉발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전수하기로 한 것은 인도양과 남태평양 광활한 해역에서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소모전을 수행하는 동안 인태 지역에서 미국의 해군력이 쇠퇴한 것을 우려하고 있다. 증강하는 중국의 해군력을 제어하기 위해 미국은 동맹국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인태 지역에 2020년에 핵잠수함을 전개한 프랑스와 2021년에 항모를 전개한 영국은 역내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다양한 연합군사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은 이즈모 호위함을 개량해 2030년경에 사실상 경함모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호주는 2009년에 12척의 차세대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2016년에 프랑스 방산업체와 44조원 규모의 디젤-전기 동력 잠수함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잠수함 디자인, 호주 산업계에 대한 낙수 효과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사업 추진이 지연되었다. 초기 계획은 2025년에 첫 잠수함을 진수하는 것이었으나, 2030년 중반으로 늦춰졌다. 12척 모두 진수되는 것은 2050년대 중반에야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었고, 사업 예산도 44조 원에서 77조로 상승하였다. 잠수함 사업이 지체되는 가운데, 중국의 남태평양 및 인도양에서 군사 활동은 급증했다. 이에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는 핵추진 잠수함도 2030년대 중반에야 진수가 가능하지만, 일단 취역하면 잠함 기간이 길고, 항행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을 내세우며 ‘국익 차원’에서 프랑스와의 계약을 파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이 AUKUS를 체결한 또 다른 이유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태 지역 관여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이다. 미국은 2021년 6월 오랜 기간 연루되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면서, 미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이 없는 지엽적인 글로벌 이슈와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분쟁에는 연루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이로써 미국이 향후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하는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AUKUS는 인태 지역에 대한 미국의 명시적인 의지(commitment) 표명이다. AUKUS는 또한 미국 편에 섰기 때문에 중국의 억압(coercion) 대상이 된 국가를 미국이 보호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호주가 미국 편에 서서 2018년부터 화웨이를 제재하고 있고, 2020년에는 코로나19 기원조사를 요구하자 중국이 2020년부터 호주에 전방위적인 무역제재를 부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EU에서 탈퇴한 후 인태 지역에서 안보 활동을 늘리고 있는데, AUKUS를 통해 인태 지역에 대한 ‘관여(engagement)’를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은 2021년 8월에는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를 남중국해를 통해 동북아 해역에까지 파견하였고, 언론 보도로는 2021년 말부터 2척의 초계함을 인태 지역에 상주시킬 예정이다. 사실 영국은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1971년에 체결한 ‘5개국 국방협력(Five Powers Defence Arrangement, FPDA)’의 일원으로 이들 국가와 군사훈련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어서 인태 지역에서 안보적 관여를 위한 군사적 기반은 이미 갖추고 있다. FPDA에 더해, AUKUS로 영국의 인태 지역에서의 안보적 입지가 한층 강화되었다.
민군 겸용 군사기술 공동개발 및 정보 공유 네트워크: AUKUS와 쿼드의 연계 가능성
AUKUS 협의 사항 중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가 가장 주목받고 있지만, 이는 AUKUS를 통해 삼국이 추진하고자 하는 첫 번째 사업이지 AUKUS 체결의 목적 자체는 아니다. AUKUS의 목적은 삼국의 첨단기술 공동개발 및 민감정보 공유에 있다. 미국은 5G/6G, 인공지능, 무인 시스템, 초고속 정밀 무기, 최첨단 시스템 네트워크 등에서 우위를 점해야 장차 중국에 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민군 겸용 첨단기술 공동개발과 민감정보 공유에 있어 미국은 호주와 영국의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협력의 경험을 중시한다. AUKUS 체결 후 AUKUS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미국 고위관료는 영국과 호주가 미국과 경험, 역사 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미국은 또한 호주가 사이버 안보와 기술패권 경쟁에 있어 중국에 맞서는 의지와 능력을 보여왔다는 점을 중시한다. 호주는 2018년부터 화웨이 제재를 유지하고 있으며, 2021년 하반기에는 기술전문가, 학계 인사, 시민사회단체 등을 초청하여 ‘인도-태평양 기술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중국의 사이버 위협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꾸준히 출간해서 중국 정부의 공개적인 비난 대상이 되기도 한 ‘호주 전략정책 연구소’가 호주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동 회의를 주최한다. 또한, 호주국립대는 호주 외교부의 지원을 받아 트랙 2 차원의 ‘쿼드 기술 네트워크’도 출범시켰다
주목할 것은 쿼드도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의제들을 협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쿼드는 미국이 2017년 11월 인태 전략의 본격적 추진을 표명한 이래 2021년 10월 현재까지 15차례 이상 국장급, 장관급 또는 정상 회담을 개최하였다. 4국이 쿼드 공식회담에서 논의한 의제는 남중국해 이슈뿐만 아니라, 양질의 거버넌스, 지역 연계성, 인프라 투자, 첨단기술, 공급망 다각화 등 역내 경제발전 및 개발투자와 관련된 의제와 테러 방지, 해양안보, 재난구호, 백신 및 보건, 사이버 안보, 우주개발 등 비전통안보 또는 신흥안보와 관련된 의제도 포함한다. 최근에는 논의의 초점이 전통안보 이슈에서 다양한 기능 분야 이슈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경쟁이 심화하면서, 쿼드와 쿼드를 확장하는 쿼드 플러스가 기술패권 연대의 주요한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술패권경쟁과 직접 관련된 사이버 안보, 첨단기술뿐만 아니라 이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인프라 투자, 해양안보, 공급망 다각화를 4국이 쿼드를 통해 협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7월에는 외교·안보 인사가 회동했던 기존의 쿼드 회의들과는 달리 미국 주도로 쿼드 과학기술담당 장관급 화상회의가 개최되었는데, 미국이 향후 미중 기술패권경쟁에서 쿼드(플러스)를 중시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21년 9월에 개최된 제2차 쿼드 정상회의에서는 4국 정상이 4국 인프라 파트너십 발족,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 해양상황인지 능력 강화,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4국 연대, 우주개발 협력 등에 합의하였다.
쿼드(플러스)가 기능주의 협력의 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AUKUS의 주된 목적이 첨단기술 공동개발 및 민감정보 공유인바 쿼드(플러스)와 AUKUS가 자연스럽게 연계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 호주, 영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기술력을 결집하여 경쟁력을 높이고, 데이터 표본 규모를 확대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 미국, 호주, 영국은 쿼드, AUKUS 등 다양한 소다자 연합의 중층적 연대로 세력을 키워가면서, 사이버 안보 및 첨단기술과 관련된 국제 규범과 표준 형성을 주도하려 할 것이다.
우리의 고려사항
AUKUS 체결 후, 일부 언론은 미국이 호주처럼 우리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용인해 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희망하는 국가가 우리뿐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일례로 인도는 러시아 기술에 기반한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지만 성능이 제한적인데, 인도 일각에서는 쿼드 활성화로 미국이 인도에 핵잠수함 기술을 전수해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AUKUS 체결 후 미국은 호주로의 기술 전수가 ‘한 번이자 마지막(one-off)’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미국이 우리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용인한다면, 인도를 포함한 다수의 국가가 미국에 유사한 요구를 할 것이다. 호주에게 주어진 예외는 호주가 ‘앵글로색슨(Anglo-Saxon)’ 국가로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핵심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미국은 명확히 하고 있다.
한편, AUKUS는 호주가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남방축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일본이 북방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에서 우리가 일본의 하위 노드(node)로 전락하지 않도록 한편으로는 한미 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을 관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호주와의 안보협력을 한층 더 증진해야 한다. 영국과 호주의 인태 지역 군사 활동이 증가하는 가운데, 일본-호주가 2020년 11월에 ‘상호접근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 RAA)’ 체결에 원칙적으로 합의하였고, 2021년 9월에는 일본-영국이 RAA를 협의하기로 합의하였다. 동 협정이 체결되면, 호주와 영국이 대규모 군대를 일본이나 동북아 해상에 파견하여 일본과 군사훈련을 수행하기가 쉬워진다.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장기간 정체된다면, 미국이 한·미·호 안보협력을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으나, 우리는 일본-호주 안보협력의 증진 속도가 한국-호주 안보협력 증진 속도보다 월등히 빠른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일본이 동북아에서 미국, 호주, 영국, 또는 프랑스 등과 함께 실시하는 ‘쿼드 (-x) + 알파(쿼드 외 국가)’ 형식의 군사훈련이 지금보다 더 자주, 더 큰 규모로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데, 경색된 한일관계 및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가 참여하는 것에는 부담이 있다. 이에 비해, 호주가 인도양과 남태평양에서 미국, 일본, 영국 또는 인도 등과 함께 실시하는 ‘쿼드 (-x) + 알파(쿼드 외 국가)’ 형식의 군사훈련은 상대적으로 참여의 부담이 덜하다. 우리가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상호운용성을 증진하고 협력의 경험과 신뢰를 쌓아가는데 전자보다 후자가 적합해보인다.
좀 더 큰 틀에서 바라볼 때, AUKUS는 미국이 자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를 관통하는 운영 기제로 정보·감시·정찰(ISR) 자산 제공, 정보 공유 및 민군 겸용 기술 공동개발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국은 인태 지역 주요 거점 국가에 중고 비행기, 선박 등을 공여하고 정보융합센터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면서 역내 ‘해양능력 배양(Marine Capacity Building)’과 ‘해양 상황인지(Maritime Domain Awareness)’ 능력 제고에 기여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눈에 띄게 공여의 질을 무인 정찰기, 레이더 등 ISR 자산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ISR 자산 제공 및 정보 공유를 통해 인태 지역 주요 거점 국가들을 궁극적으로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체제로 유인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이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에 대한 기여를 증대시키고 있는 우리에게 미국과의 협력과 조율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국이 우리에게 ‘미사일 방어(MD)’ 체제 가입을 요청할 것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미·일·호 미사일 방어 공조가 추동되고 나아가 인도 및 한국과의 공조로까지 이어진다면 인·태 지역에서 미국 주도 MD 체제의 토대가 구축되는 것이다. 미국이 이를 역내 국가에 대한 ISR 자산 제공과 연계하여, 거대한 정보 공유 안보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 상·하원 군사위원회가 각각의 본회의에 제출한 2022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주한미군기지 내 정보융합센터 설치를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시사하는 바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