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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정세전망: 라틴아메리카 정세와 한-라틴아메리카 관계 [정세와 정책 2020-특집호 제53호]

등록일 2020-12-24 조회수 8,117

라틴아메리카 정세와 한-라틴아메리카 관계

 

손혜현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 연구교수)

hhson15@mofa.go.kr

 

코로나19 팬데믹과 사회적 불평등 심화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인들에게 큰 재앙이었지만 특히 라틴아메리카 인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었다. 1213일 기준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전체 확진자는 14백만 명으로 전 세계 감염자의 20% 그리고 사망자는 47만 명으로 전 세계 사망자의 30%를 차지하며 인구비중대비(전 세계 인구의 8%) 인명피해가 심각했다. ​1) 역내 바이러스 전파가 시작된 3월초부터 대다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강력한 봉쇄 및 격리 정책을 추진했으나, 브라질과 멕시코와 같은 인구대국의 미온적인 대처, 공공보건 시스템의 취약성, 낮은 시민의식 그리고 높은 비공식 경제의 비중으로 엄격한 격리 및 봉쇄조치가 불가능했다. 결국 경제난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이 겨울이 시작되는 6월부터 성급하게 봉쇄조치를 완화하면서, 바이러스 통제에 실패하고 말았다. 최근 들어 바이러스의 확산속도가 주춤해지긴 했으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에는 보건의료체제가 취약하며, 봉쇄 및 격리를 지속하기에는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ECLAC)2020년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9.1% 성장하면서 사회지표가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실업률이 전년 대비 5.4% 증가한 13.5%를 기록하면서 전체 실업자 수가 4,4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이는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의 6.7%~7.3%보다 악화된 수치이다. 이로 인해 빈곤률은 전년 대비 7.1% 증가한 37.3% 그리고 극빈곤률은 4.5% 증가한 15.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 결과 올해 4,50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략하여 전체 빈곤층의 숫자는 23,100만 명이 될 것이며 심한 빈곤층에 2,850만 명이 추가되어 총 9,6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로써 라틴아메리카 인구의 절반이상인 총 38,120명이 빈곤선 이하에 처하게 됐고, 이 지역의 고질적 문제인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됐(CEPAL, 2020).​2)

 

2000년대 이후 중산층으로 진입한 중산층이 다시 빈곤층으로 추락하면서 사회적 좌절감이 증가했다. 이 암울한 전망은 높은 비공식 노동의 비중과 관련이 있다. 라틴아메리카 전체 노동자 29,200만 명 중 54%에 달하는 15,800만 명이 비공식 노동자이며, 이들은 의료보험, 실업보험, 그리고 퇴직연금이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로 라틴아메리카 비공식 노동자들의 소득이 80%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소득불평등 외에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젠더, 인종 또는 민족(흑인, 원주민), 지역(낙후된 주변부)에 따른 의료, 교육, 고용, 법적 시스템접근의 불평등이 부각됐다.

 

2019년 하반기에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사회적 불평등 심화와 사회적 이동 단절에 대한 중산층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대규모 사회적 봉기가 발발했으나, 코로나 19의 창궐로 일시 중단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제사회적 취약층이 이번 팬데믹의 최대 희생자가 되면서 공공서비스의 접근성 및 소득 불평등의 심각성이 더욱 분명해졌다.. 특히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빈곤층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한 신흥중산층을 중심으로 거리 시위가 다시 확산되는 추세이다. 그리고 시위의 장이 거리에서 온라인으로 확대되면서 2021년 백신이 보급되고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하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많은 국가에서 제2차 사회적 봉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권 심판 투표와 포퓰리스트의 득세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2020년 라틴아메리카 다수의 국가에서는 선거가 진행됐다. 도미니카공화국과 볼리비아에서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페루와 베네수엘라에서는 총선이 실시됐으며, 브라질에서는 지방선거가 그리고 칠레에서는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그동안 누적된 사회경제적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면서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기대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정부 및 지도자를 투표함에서 심판하였다. 그 결과 현직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패배하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야당의 승리로 16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고 볼리비아에서는 사회주의 운동당(MAS)이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좌파가 다시 권력을 회복하였다. 페루에서는 특별총선에서 여당이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고 새로운 정당들이 대거 의회로 진입하면서 정당파편화 현상이 심화됐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강력한 반부패 개혁을 추진했던 비스카라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탄핵으로 1주일 사이에 3명의 대통령이 교체되면서, 의회의 탄핵에 반대하는 대중시위가 정치사회적 불안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많은 논란 속에 치러진 베네수엘라 총선에서는 야당의 패배로 마두로 정권이 국회를 장악하면서, 두 명의 대통령 사태는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1%라는 낮은 투표율은 정치와 제도에 대한 베네수엘라 국민의 불신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며,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불안정은 지속될 전망이다. 브라질 지방선거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실패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원를 받았던 극우 세력과 룰라 전 대통령의 노동당(PT) 후보들이 모두 패배하고 중도정당 후보들이 대거 승리하면서 좌우 기득권 정치에 대한 브라질 유권자들의 실망과 불만이 표출됐다. 보우소나루 세력의 약세로 2022년 재선의 향방은 불확실해졌다. 2019년 사회적 봉기의 진원지였던 칠레에서는 교육, 의료, 주택 연금 등의 국민 기본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 신헌법 제정에 국민의 78.2%가 찬성했으며, 제헌의회 구성에서 기존 의회를 배제하고 100% 국민대표로 구성하기로 함으로써 기존 제도에 대한 국민의 높은 불신이 표출됐다.

 

2021년에도, 다수의 국가에서 선거가 예정돼 있다. 에콰도르, 페루, 온두라스, 니카라과 그리고 칠레에서 대통령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며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에서는 총선이 있을 예정이다. 기존 정치계급에 대한 분노와 피로감으로 선거정국에서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정부를 요구하는 사회적 봉기 확산이 정치적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당의 취약성, 사회적 양극화, 이전 정부의 정책 실패로 쉬운 방식의 문제해결을 약속하는 포퓰리스트와 개혁과 변화를 약속하는 신진 정치세력이 득세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패척결과 사회통합이 선거의 핵심쟁점이 되면서 경제개혁에 대한 동력은 약화되고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칠레의 피녜라 정부의 고전으로 역내 우파의 약화가 예상되나, 에콰도르에서의 코레아 전 대통령의 복귀 반대와 니카라과에서의 오르테가 대통령의 재집권 반대로 좌파의 강세 또한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지형은 좌우 이념 대결 구도가 아닌 사회적 표용과 통합정책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라틴아메리카의 회복력과 역내 미-중 지정학적 경쟁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심각한 인명피해, 극심한 경제침체, 대규모 사회봉기 확산 및 정치적 불확실성 심화로 포스트코로나 시대 중남미의 회복력은 매우 더딜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경기 반등을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이 불가피하나 높은 국가부채와 극심한 재정난으로 재정자원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기회복 속도와 미-중 갈등의 심화 정도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회복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중국의 원자재와 농산품 수요 회복으로 대중수출비중이 높은 남미 국가들의 대중교역이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미국은 코로나19 사태 악화로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이어서 대미 경제의존도(무역, 송금, 관광)가 높은 멕시코, 중미, 콜롬비아 그리고 카리브 국가들은 매우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중간 세계적 패권경쟁이 심화될수록 라틴아메리카에서 미-중간 지정학적 경쟁도 격화되는 양상이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과의 외교가 어려워지는 시점마다 미국의 세력권인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미-중 경쟁의 전략적 틀 내에서 라틴아메리카에 접근하는 양상을 보였다. 2018년 미-중간 무역전쟁이 본격화되자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에 라틴아메리카를 공식적으로 포함시켰다. 그리고 2020년 미국이 코로나19 책임론을 제기하자 중국은 백신구입을 위한 10억 달러 지원과 방역 물품 및 기술을 지원하는 마스크 외교를 공세적으로 펼쳤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19개국이 중국과 일대일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중국의 인프라 투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중국의 코로나19 대응 지원에 대해서는 중국에 공개적으로 감사(Gracias China)’를 표명하고 찬사를 보냈다.

 

미국은 중국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개입 증가를 미국의 서반구 이익과 안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지난 9월 미주개발은행(IDB) 선거에서 미국인을 총재로 선출했고 10월에는 미국의 새로운 서반구 전략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그리고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한 미주성장(America Crece)’ 인프라 투자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한도를 600억 달러로 상향조정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리더십 회복과 중국견제를 본격화 하였다. 바이든 차기 대통령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공백과 일방주의가 미국의 부재를 초래했다고 하면서, 관심 재고와 다자주의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사회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서반구에서 미-중간 지정학적 경쟁을 전략적 실리외교로 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글로벌 분업체계 하에서 탈 중국화 된 생산기지들이 라틴아메리카로 이전될 가능성을 고려하여 바이든 신정부하에서 대 라틴아메리카 접근 강화 전략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동시에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중국과의 협력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디지털과 정보통신 인프라를 둘러싼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미주성장을 둘러싼 인프라 경쟁이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상황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는 기회임과 동시에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

 

포스트코로나시대 한-라틴아메리카 관계

코로나19의 재앙은 한-라틴아메리카 관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해주었다.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 모델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관심 증가로 한국과 라틴아메리카는 수차례의 정상 및 고위급 전화통화, 보건당국 간 화상회의를 통한 경험공유 등의 방역협력과 중남미 24개국 대상 약 1,4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 및 의료장비와 진단키트 수출 등의 보건협력이 크게 증가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비대면 산업과 기술 그리고 디지털관련 분야로 협력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포스트코로나시대 팬데믹의 영향과 미-중 갈등의 심화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됨에 따라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모두 외교 및 경제협력 파트너를 다변화해야 하는 동일한 과제에 당면해 있다. 그동안 라틴아메리카의 보건의료분야는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의 독점으로 시장진입이 어려웠으나, 이번 사태로 한국은 보건의료 선진국으로서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보건 및 디지털 관련 및 인간안보 의제를 주도적으로 대중남미 외교에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라틴아메리카는 불평등, 기후변화, 전염병 등 국제협력이 필요한 새로운 이슈에서 한국의 중견국 외교력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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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검색일, 2020.12.13.)​​

2) Enfrentar los efectos cada vez mayores del COVID-19 para una reactivación con igualdad: nuevas proyecciones, CEPAL, Julio, 2020.

    https://www.cepal.org/es/publicaciones/45782-enfrentar-efectos-cada-vez-mayores-covid-19-reactivacion-igualdad-nuevas (검색일, 2020.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