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커스

3.1절 대통령 연설 이후 한국정부가 해야 할 일 [세종논평 No.2021-07]

등록일 2021-03-03 조회수 9,782 저자 진창수

3.1절 대통령 연설 이후 한국정부가 해야 할 일


 

[세종논평] No. 2021-07 (2021.03.03.)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jincs@sejong.org

 

 

  문재인 대통령은 3월 1일 연설에서 일본과의 대화를 제의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언제라도 일본 정부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하면서 일본의 침략이후 한일협력 발전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간혹 과거와 미래의 문제와 분리되지 못하고 혼재함으로써 미래 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항상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현명한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면서도 한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 발전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신중하게 받아들일 지는 의문이다. 지난 1월 문대통령 연두기자 간담회에서 대화를 제의했음에도 일본은 말보다는 구체적 행동을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문 대통령의 3.1절 연설에 대해서도 가토 장관은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도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바탕으로 한국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제는 한국이 대화 제의를 하더라도 일본이 믿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한·일 정부가 과거사 프레임에 매몰되어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최근 한일관계의 이슈들이 국내정치화하면서 전략외교보다는 국내 정치이익에 매몰되는 경향이 많았다. 대일외교의 방향이 여론에 휩쓸리고, 여론을 추동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외교당국자들의 공간은 더욱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한일 당국자간 교섭에서는 그러한 열의는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문 대통령이 일본과의 대화를 제의하더라도 한국의 국내정치에 의해 언제 분위기가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외교 당국자들은 대화를 해야 된다는 분위기는 감지하고 있지만, 이를 추진했을 때 뒷받침 할 수 있는 정책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적극적 행동을 보일 필요가 있다. 우선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국장급 대화 채널보다는 청와대와 총리 관저가 직접 나서야 한다. 청와대와 총리 관저의 솔직한 대화는 한일정상회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현재 한일 양국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한일정상의 만남은 더 이상 한일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일관계의 악화를 막는 ‘신사협정’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투트랙 접근(과거사와 경제·안보협력의 분리)을 실천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번 3.1절 연설에서도 문 대통령은 코로나 대응에 대한 한일 협력을 주장했지만, 현실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 그 예로 작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비즈니스의 패스트 트랙은 많은 이점이 있음에도 한일 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할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문 정부는 투트랙 접근보다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우선하는 측면이 있었다. 일본정부도 과거사문제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만을 되풀이 할 뿐 유연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의 한일 대립과 갈등을 우회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와 분리하여 한일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국정부가 투트랙 접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문 정부는 피해자들과의 대화도 적극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문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관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피해자들(위안부, 강제징용)과 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 대일정책에서 한국 정부의 선택지는 확대되었을 것이다. 또한 피해자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문 정부가 피해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투트랙 접근도 성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문 정부는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대일정책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투트랙 접근의 국내적 조건이 만들어질 때 한일 협력은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북한문제에서도 한일 양국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문 정부는 북한 문제에서 일본을 방해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한일 양국이 대북문제에서 방법론은 차이가 있을 지라도 협력을 해야 한다는 전략적 자세를 포기하여서는 안된다.  

 

  앞으로 한미일협력도 한일 양국이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바이든 정부의 출범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국제연대에 한·일이 함께 협력을 요구받을 상황이 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3년 12월 부통령 당시에도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공조와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한 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도전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국과 함께 군사적 억제, 인권과 민주주의를 통한 국제 규범을 중시하고 있다. 이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미일 협력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중견국의 역할을 확대하고 강대국 정치의 시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협력은 필수적이다. 한일은 과거사 문제의 대립이 있더라도 서로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과거사문제는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계속 논의를 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한일 협조를 확대하면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만 해결책을 기대하지 말고 국익을 위해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 『세종논평에 개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