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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시화된 양국 기술동맹: 전략적 함의 [정세와 정책 2021-7월호-제22호]

등록일 2021-07-02 조회수 3,293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시화된 양국 기술동맹: 전략적 함의

 

김기수(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kskim@sejong.org

 

서언

 

2021521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한국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의 결과를 기술한 정상회담 공동성명(영문: US-ROK Leaders’ Joint Statement)이 발표됐다. 과거와는 다른 점이 많아서 사람들은 많이 놀랐다. 우선 성명서가 대단히 길어 양국의 관심사 대부분이 포괄적으로 기술된 사실이 눈길을 끈다. 중국이라는 변수를 고려할 때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항이 여러 개 삽입된 점은 도드라진다. 특히 대만과 관련 양국의 공동 입장이 공개적으로 명시된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이다. 경제분야에서도 양국의 긴밀한 협력이 강조됐다. 사실상의 기술동맹을 의미하는 대단히 강한 어조의 기술분야 결속이 공식화됨 셈이다. 다소 생소한 동맹 수준의 기술협력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중 경제마찰과 기술

 

미국이 핵심 동맹국들과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겉으로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마찰을 살펴봐야 한다. 몇 년간 지속된 양국의 경제분규 정점에 미국의 대중국 기술봉쇄 정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양국이 가시적인 경제전쟁을 시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였다. 초기의 경제마찰은 양적으로 두드러진 중국의 과도한 대미 무역흑자에 초점이 맞춰졌다.

 

2017년 기준 3,75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가시적으로 줄이라는 것이 미국의 요구였다. 이를 위해 무자비할 정도의 대중 관세 보복이 이어졌다. 20187월부터 불과 3개월 동안 총 2,5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중 수입품에 대해 10% 이상의 추가 관세가 부과됐다. 그 후 관세 부과 대상 품목의 대미 수출은 약 30% 줄어들었다. 연구 결과는 관세 부과에 따른 대부분의 손해를 중국의 대미 수출기업이 떠안았음을 보여준다. 20201월 미국의 요구를 상당히 받아들인 제1차 미중무역합의에 중국이 동의한 배경이다.


이상의 이야기만을 보면 양적인 문제가 경제분규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미국의 노림수가 그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의 대중 관세보복이 가시화되기 한 달 전 공개된 중국의 공세는 어떻게 미국과 전 세계의 기술과 지적소유권을 위협하는가라는 제목의 백악관 보고서는 당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미래의 경제성장이 지금 뻗어나고 있는 첨단-기술(high-tech) 산업을 누가 장악하는가에 달려 있다라는 대단히 중요한 문구가 담겨 있었다. 바로 이 이슈가 극적인 양국 무역합의 후에도 지금까지 티격태격의 핵심 내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것의 이유와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중국의 경제발전과 기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은 1950년대 이미 논리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1987)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1956년과 1957년에 몇 개의 논문을 통해 경제성장이론을 전개했다. 그의 결론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는데, 놀라움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기계에 대한 투자(investment in machinery)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의 핵심 동인이 될 수 없다. 대신 솔로우의 경우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의 유일 가능한 요소는 기술의 변화(technological change)일 뿐이다. 특히 1957년의 논문에서 솔로우는 미국의 경우 20세기 전반기 50년 동안 노동 1 단위 당 경제성장(US growth per worker)7/8이 기술 변화에 의존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기술 진보를 통해서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를 중국경제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투입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전제되지 않으면 더 많은 기계 혹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같은 투입의 단순 증가는 수확체감의 법칙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중국경제와 같이) 투입중심 성장에는 한계가 드리워진다는 의미다.” 위에서 소개한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의 유일 가능한 요소가 기술의 변화라는 솔로우의 주장은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의 통계를 보면 그것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2010년대 후반 현재) 중국은 과거보다 덜 성장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 많은 빚(credit)을 내야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단적으로 1 위안의 추가 GDP 상승을 위해 4 위안의 새로운 대출(투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전에는 이 수치가 일치했다. 1 위안의 추가 대출로 1위안의 추가 GDP 상승이 가능했다. 물론 중국의 막강한 정부 권력 및 능력으로 볼 때 빚이 늘어나는 상황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수확체감의 법칙을 금융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는데, 즉 자본 투입 대비 산출이 줄어드는 자본의 한계효율 저하를 의미한다.

 

지난날의 고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 대비 거의 네 배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날까? 바로 이것이 빚을 통해 투자를 늘리는 현상, 즉 중국기업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다. 과거와 비교, 상품의 부가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서만 양적 팽창의 모순은 극복된다. 중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새롭게 탄생시키기 위한 30년 계획안인 중국제조 2025’20155월 발표됐는데, 그런 현실의 반영이었다. 하지만 기술 절취에 의존한 중국식 계획이라는 이유로 미국은 이에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이것이 미국의 다음과 같은 새로운 대중 전략의 배경이다: ‘대중 기술 이전을 봉쇄하면 중국의 경제성장을 제어할 수 있고, 나아가 미국의 첨단 기술을 보호하는 가운데 미국의 경제 지배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대중 기술 봉쇄와 한국의 기술

 

2019년 기준 한국 총 수출 5,423억 달러의 25%1,300억 달러가 중국의 향했다. 그중 자본재, 부품, 그리고 소재의 비율이 96.1%였다. 소비재 및 농수산물이 나머지 3.9%를 차지했다. 바로 이것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교역 대차대조표라고 보면 된다. 한국의 자본 및 중간재를 사용하여 중국기업은 최종 소비재를 생산한다. 중국경제가 한국 기술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반도체 교역은 위의 현상을 상징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은 만들 수 없다. 2019년 기준 한국 반도체 총수출액 940억 달러 중 375억 달러가 중국 본토, 그리고 약 230억 달러가 홍콩을 향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의존도를 예리하게 계산했는데, 2018년부터 가시화된 최첨단 중국기업 화웨이에 대한 공세를 보면 상황이 분명해진다. 미국정부는 화웨이가 막대한 보조금에 힘입어 국제 평균 단가 기준 30% 이하의 덤핑 입찰, 다양한 기업 간첩 활동, 그리고 기술 도용 등을 자행했다고 본다.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보복을 단계적으로 단행하며, 한국 기업에게도 화웨이 장비의 사용 금지 및 반도체 수출 통제를 요청했다. 흥미롭게도 중국은 고위 관리와 화웨이 관계자를 한국에 파견, 한국기업의 지속적인 대중 반도체 공급을 요청한 사실이 암암리에 회자됐다. 그러나 20205월 미국은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한국을 포함 대부분의 외국 반도체 기업은 미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미국 제품을 활용하여 만든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위해서는 미국 상무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 대만, 일본 등이 생산한 반도체의 대중 수출은 결국 미국의 통제하에 놓이게 됐다.

 

한미정상이 합의한 양국의 기술동맹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개발된 거의 모든 제품의 원천 기술은 미국이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가 대표적인데, 1947년 미국 벨 연구소가 기존의 진공관을 대체하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하며 새로운 기술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IC 회로를 거쳐 오늘날의 반도체가 탄생했다. 반도체도 사고를 하는 시스템 반도체와 사실을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로 나뉜다. 현재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어느 국가든 자원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그 법칙에 따라서 산업분화가 이루어졌다고 보면 된다.

 

지금도 설계, 생산장비, 그리고 소프트웨어 등 반도체 원천 기술의 대부분은 미국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정 기술은 세계 최고다. 원천 기술 보유국인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공정기술을 대체하려면 많은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의 기술이 왜 상호 보완적인지를 알 수 있다. 이를 꿰뚫어 본 바이든 정부는 한국의 뛰어난 공정기술을 미국 본토에 착근시키기를 원한다. 미국산업에 위한 반도체의 원활한 공급, 고용인구의 증가, 그리고 한국 공정기술의 대중 유출 방지라는 다목적 포석의 결과인 셈이다. 배터리, 전기자동차, 판넬, 원자력발전, 바이오, 핵심 원료, 차세대 이동통신 등의 첨단 산업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한국의 앞선 공정 능력과 제품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미국의 연구 능력이 합해지는 경우 최강의 기술동맹이 탄생한다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다.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위의 첨단 분야를 선도하는 한국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있어야 하고, 그렇게 미국에서 생산된 물품은 미국기업에 우선 공급돼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에 삼성, 현대차, SK, LG 대표가 참석했고, 향후 총 44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계획이 발표된 것은 기술동맹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미정상의 공동성명에도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선명하게 묘사돼 있다: “양국 대통령은 이동통신 보안과 공급업체 다양성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Open-RAN 기술을 활용하여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효율적이며 개방된 5G, 6G 네트워크 구조를 개발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반도체, 친환경 EV 배터리, 전략핵심 원료, 의약품 등과 같은 우선순위 부문을 포함하여, 우리의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을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 차세대 배터리, 수소에너지, 탄소포집·저장(CCS) 등과 같은 청정에너지 분야 및 인공지능(AI), 5G, 차세대 이동통신(6G), Open-RAN 기술, 양자기술, 바이오 기술 등 신흥 기술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함으로써 미래 지향적 파트너십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아울러 다음의 중요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양 정상은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으며, 불공정 무역 관행에 반대한다는 공동의 결의를 표명하였다.”

 

전략적 함의

 

공동성명에는 한미 기술동맹과 그것의 중국 관련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선 양국의 첨단분야 기술협력 범위가 매우 넓다는 점이 눈에 띈다. 흥미롭게도 공동성명에 담긴 한미의 협력 분야는 중국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미래 육성 산업들이다. 특히 이동통신 보안과 공급업체 다양성그리고 우리의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등의 문구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의 미중 경제마찰에서 미국은 중국경제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꾀했다. 즉 중국경제를 우선 미국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다음 세계경제와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를 위해 양적으로는 관세 보복을 통해 중국의 대미수출을 억제시켰고, 질적으로는 대중 기술봉쇄를 통해 중국경제를 고립 및 추락시키는 방안이 추진됐다.


크게 보면 세계공급가치사슬(Global Supply Value Chain)에서 중국의 입지를 축소시키거나 축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미국은 자신이 필요한 물자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공급망이 필요했다. ‘이동통신 보안과 공급업체 다양성우리의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이라는 문구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런 노력의 한가운데에 한국이 존재하기에 기술동맹이라는 용어가 어색할 이유는 없다. 향후 한미 그리고 한중 관계에 비추어 대단히 중요한 이정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마련됐다고 보는 까닭이기도 하다. ‘불공정 무역 관행에 반대한다는 공동의 결의라는 문구 역시 불공정 무역의 대명사가 된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따라서 다수의 전문가들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의미하는 安美經中(안미경중)’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주장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