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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ASEAN 남중국해 행동규범 합의 문제

등록일 2023-09-11 조회수 2,600

중국-ASEAN 남중국해 행동규범 합의 문제

 

 

[세종논평 2023-11 (2023.9.11)}

배 긍 찬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gcbae89@mofa.or.kr

 

 

    202395일부터 7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ASEAN 관련 정상회의의 주목할 만한 결과 중 하나는 중국과 ASEAN간 남중국해 행동규범(CoC: Code of Conduct) 채택을 위한 절차에 대한 합의 문제였다. 이미 중국과 ASEAN 국가들은 지난 7ASEAN 외무장관회의를 통하여 향후 3년 즉 2026년까지 행동규범 채택을 위한 협상을 최종적으로 타결할 것이라는 합의를 도출한 바 있으며, 금년도 ASEAN 의장국 인도네시아는 9월 초 중국-ASEAN 정상회의를 통하여 이를 공식적으로 확정할 것이라는 사전 발표까지 한 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중국-ASEAN 정상회의에서 이러한 합의는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는 물론 ASEAN 정상회의 직전인 8월 말 중국정부가 공포한 자국의 표준지도에 남중국해 거의 모든 전역을 중국의 영해로 표기함으로써, 말레이시아 등 ASEAN 관련 당사국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자국 함정에 대한 중국함정의 물대포 발포사건으로 격분한 필리핀은 직접적으로 중국을 비난하면서 남중국해에서 주권 수호 의지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과 ASEAN 국가들간 공식수교가 이루어진 1990년대부터 중국과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네이 등 일부 ASEAN 국가들간 영유권 분쟁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하자, 중국과 ASEAN2002년 남중국해 행동선언(DoC)을 채택한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간 해상에서 무력충돌과 특히 중국이 점유한 일부 지역에서 군사기지 건설 등은 끊임없는 문제와 갈등을 야기시켜 왔다. 결국 양측은 오랜 답보상태 끝에 2013년부터 선언적 차원의 행동선언을 뛰어넘어 법적 구속력을 갖는 행동규범을 모색하기 위한 협상을 개시한 바 있다.

 

   양측은 2018년에 가서야 행동규범의 단일 초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당시 중국은 2021년까지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는 다분히 시진핑 3기 연임을 염두에 둔 국내정치적 포석의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까지 중국과 ASEAN은 초안에 대한 일차 회독(reading)을 마치면서 양측간 메울수 없는 견해 차이만 확인했을 뿐 별다른 진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이후 현재까지 양측은 초안에 대한 비공개 회독을 한 차례 더 진행시킨 바 있으나, 여전히 답보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협상에 임하는 양측의 이해관계와 태도가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ASEAN측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행동규범 제정을 통해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배타적 영유권을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조속한 협상의 타결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남중국해 전역에 대한 영유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중국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행동규범의 채택을 내심 원치 않기 때문에 협상을 지루하게 지연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ASEAN 국가들의 집단적 반발을 고려하여 협상을 계속하는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향후 중국과 ASEAN이 원만한 협상이나 극적인 타협을 통해 행동규범을 순조롭게 타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중국이 향후 ASEAN과 모종의 합의에 따라 협상을 타결할 경우 그것은 하나의 지침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강변할 것이 뻔하다 할 것이다. 또한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를 대만 문제와 동일한 수준과 같은 선상에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바, 이는 향후 협상의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 양측간 비공개로 진행되어온 초안 검토 작업에 최대 핵심 쟁점 사안은 남중국해에서 제 3국 활동, 즉 합동군사훈련과 공동자원 탐사 등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문제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문제는 향후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 간 심각한 군사적 갈등과 충돌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남중국해에서 전개하고 있는 항행의 자유라는 군사작전에 대해 국제법에 따라 미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그러한 경우 중국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즉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자국이 허가하지 않은 미국 등 역외국가들의 군사 및 경제 행위에 거부권을 갖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역외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이자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안이 아닐수 없다. 최근에는 인도 또한 이 문제에 관심을 표시하면서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에 호의적인 러시아 마저도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바 있어 중국의 의지가 관철되기는 사실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문제와 관련한 한국정부의 대응은 대체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보다 명확해 지고 있다. 특히 친중적이라 비판 받았던 문재인 대통령도 2019년 동아시아 정상회의(EAS)를 통하여 남중국해의 비군사화(non-militarization)와 자유로운 항행 및 비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으며, 실효적인 행동규범이 국제법과 모든 역외국가들의 권익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번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은 용납 불가하고, 남중국해는 규칙에 기반한 질서가 유지되어야 하며, 향후 ASEAN과 해양안보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 부연한 바 있다. 이제 한국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일본, 호주 등과 공동의 보조를 취하는 수준까지 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