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현재적 함의와 남북관계 개선 모색
사회문화 교류
[세종논평] No. 2020-14 (2020.06.12.)
전영선 건국대학교 HK연구교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 6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은 물론 2017년 한반도 전쟁 위기 상황을 넘어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새로운 남북 관계를 기대하게 했던 2018년과도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2019년부터 경색되기 시작한 남북관계는 2019년을 지나면서 모든 대화와 교류가 전면 중단되었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기념해야 할 축하의 자리에 적의(敵意)에 찬 말들로 대치되고 있다. 남북 공동 행사는 차치하고, 남북 핫라인도 먹통이다. 남북 교류의 상징적인 사업으로 여겨졌던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 사업과 개성 만월대 발굴 복원 사업도 2018년 이후로 중단되었다.
사회문화 교류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해소하고, 분단 이후 이질화된 남북 문화의 소통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목적이 있다. 분단 이후 사회문화 교류가 처음 시작된 1985년 이후로 사회문화 교류 사업은 미래를 향한 약속이나 신뢰의 상징으로 이어왔다. 2000년 6·15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된 사회문화 교류는 남북관계를 이어오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제도화된 틀을 마련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서 사업의 방향이 결정되었던 것은 사회문화의 본질적 목적과 달리 정치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 교류의 가장 큰 한계였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문화 교류는 분단 이후 남북회담에서 서로 합의한 분야였다. 사회문화교류를 통해 달라진 남북 문화의 차이를 확인하였고, 상호 소통의 가능성을 찾았다. 사회문화 교류의 의미에 대해서는 남북이 다르지 않았기에 「남북기본합의서」에서부터 빠지지 않고 언급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6조에서 “남과 북은 과학·기술, 교육, 문화·예술, 보건, 체육, 환경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고,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하고, 이산가족의 서신 거래와 왕래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비롯하여 철도·도로 연결과 항로개설을 비롯한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이 명시되었다. 사회문화는 곧 정치와 경제를 제외한 남북 사이에 이루어지는 모든 의미를 교류와 협력을 상징하였다.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2000년이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는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2007년 「10·4 공동선언」에서는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백두산 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하였다(제6조)”는 조항을 담아 더욱 구체화하였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부터 구체화 된 사회문화교류의 사항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남북이 사회문화교류의 의미를 공유하고, 여러 합의가 있었음에도 본격적으로 진전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신뢰 부족’이다. 남북관계를 지탱하는 신뢰의 구조는 대단히 취약하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은 남북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역사적 선언을 함께 한 역사적인 선언이었다. 하지만 분단 이후 최초로 이루어진 정상회담이 갖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탱할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남북은 분단 이후 지속적인 갈등과 충돌 속에서 적대적 상호의존성을 키워왔다. 필요에 따라 상대를 적대시하면서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돌렸고, 권력에 활용하였다. 남북이 상호 평화롭게 공조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크게 나쁠 것이 없었다. 적대적이면서도 대내외적 정치적 위기 상황에 이용할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였다. 새로운 남북관계는 정치적 차원으로 이용하는 남북관계가 아닌 정상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2020년은 남북 정상회담 20주년이 되는 해이자 6·25전쟁 70년이 되는 해이다. 70년 전에 전쟁이 있었고, 20년 전에 정상회담이 있었다. 남북 정상이 마주하기까지 50년이 걸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20년 동안 남북관계는 부침을 거듭했다. 오늘은 지난 역사의 결과이자 내일의 원인이다. 지난 역사는 한반도 미래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나아갈 지를 알려주는 지침서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대북정책이 달라졌고, 새로운 정권은 새로운 정책으로 새로운 관계 속에서 마주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정책으로는 신뢰를 형성할 수 없다. 신뢰는 그야말로 과정이다. 좋은 과정이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지난 20년의 남북관계가 보여주었다.
역사는 다시 우리에게 20년 후의 한반도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의 미래는 당사자인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냉철한 현실인식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
2020년 코로나 19 이후 대한민국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자발적 협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세계 속에 보여주었다. 국제사회의 신뢰도 한층 높아졌다. 세계에 새로운 모범이 되는 선진국으로서 이미지를 높였다. 위기를 극복의 계기로 삼아온 민족적 유전자는 한류에 이어 ‘K-방역’을 세계에 알리며 국격을 높였다.
높아진 위상에 맞추어 한반도 문제도 남북 차원을 넘어야 한다. 분단의 시선을 넘어 글로벌 평화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는 과감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기반으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세계 역사의 중심 국가로서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지난 역사의 선택이 오늘 우리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 지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야간통행금지, 해외여행자유화, 일본 문화 개방, 토요일 휴일제, 근로시간 단축 등도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적인 사건들이었다.
역사는 한시도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듯이 새로운 상상력과 실천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20년 후의 한반도 평화를 상상하며,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남북관계의 출발은 신뢰를 지치는 것이다. 새로운 무엇을 제안하기보다는 약속한 것을 지켜나가는 원칙이 자리 잡아야 한다.
※ 『세종논평』에 개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