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커스

북한의 ‘80일 전투’ 선포 배경과 함의 [세종논평 No.2020-22]

등록일 2020-10-16 조회수 5,240 저자 양운철

 

북한의 ‘80일 전투’ 선포 배경과 함의  


[세종논평] No. 2020-22 (2020.10.16.)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ucyang@sejong.org


삼중고 극복의 한계


북한은 2020년 들어 경제적으로 심각한 삼중고를 경험하게 되었다. 첫째로는, 전 세계를 휩쓴 중국발 코로나19 사태, 둘째로는 강력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셋째로는 2020년 늦여름과 가을 북한을 강타한 태풍의 피해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타격을 준 요인은 코로나19 사태라고 판단된다. 북한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였고, 이 여파로 대중국 무역이 급감하고 인적교류도 중단되었다. 북한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의 경우 국경봉쇄로 직원 교체를 하지 못한다는 보도도 있다. 북한 계획경제의 핵심인 기업소들은 원자재 부족, 판매 중단 등으로 상당한 피해를 받고 있다. 북한경제의 다른 성장의 축인 시장도 공급물자 부족, 주민들의 구매력 하락으로 거래가 크게 위축되었다.


북한이 경제성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정면돌파, 국산화, 자력갱생 노력은 그 효력을 잃었다. 북한도 지난 8월 19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국가 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 되고 인민 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가 빚어졌다”라고 경제계획 실패를 인정하였다. 10월까지 종결하기로 계획했던 태풍 피해 극복도 달성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히려 북한경제에 필요한 것은, 기본 생산회복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본과 에너지, 그리고 식량 배급이다.


80일 기한의 속도전


전통적으로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을 속도전의 형식을 띤 대중 노동력 동원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이 방식은 주어진 짧은 기간에 최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상혁명의 성격을 지닌다. 소위 70일 전투, 100일 전투 등으로 표현되는 강제 동원 방식의 기본은 강력한 자력갱생 의지에 기초한다. 따라서 국가의 주요 기념일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이 도래할 때마다, 새로운 속도전이 전개된다. 1971년 인민경제발전 6개년계획 수행을 독려하는 100일 전투가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여러번의 속도전식 사업이 전개되었다.


실북한은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2020년 10월 5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9차 정치국 회의에서 “80일 전투를 힘있게 벌일 것”을 선포하였다. 물론 속도전을 전개한다고 해서 경제가 갑자기 회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과거 북한이 실시했던 속도전이 성공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주민들을 압박하여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는 클 것이다.

 

군에 대한 높은 신뢰

 

실제 이번 회의에서 주목할 점은 리병철 당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에게 군 원수 칭호를 부여한 사실이다. 암울한 경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은 군부를 활용하는 것이다.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는 몰라도, 군의 위상을 존중했고, 군에 의존한 면이 많다. 시급한 국가 건설 사업의 경우도, 군대가 주축이 된 돌격대를 활용하여 완수하였다.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특히 기회비용이나 상충관계(trade-off)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이 경제 어려움 극복을 위해 군을 활용하는 정책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선군 정책에 기반한 군사 국가를 운영해 온 북한으로서는, 국가 안보를 후순위로 미루는 대신, 가장 효율성이 높은 집단인 군에 대한 의존을 높이는 정책이라고 판단된다. 다른 이유는 정신 무장을 앞세워 최고 권력자의 경제정책 실패를 회피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북한이 어려운 경제 여건을 극복하려면 적극적인 개혁개방을 시행하고, 기업소에게 더 큰 자율권을 보장하며, 시장 활성화와 같은 강력한 개혁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조금이라도 손상할 수 있는 체제이행의 성격을 지닌 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차선책으로, 자강력 제일주의와 같은 사상기반에 기초한 국가동원령을 발동하고, 군을 전면에 내세워 최대한 활용하는 정책에서 스스로 만족감을 얻는 것 같다. 속도전에 민간인들도 동원되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북한의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오랫동안 고립되어 세습을 유지한 체제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근본적인 정책변화가 없는 한, 북한경제의 어려움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 『세종논평에 개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