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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정치지형의 변화: 새로운 계급정치의 등장 [정세와 정책 2019-25호]

등록일 2019-12-12 조회수 5,192



민주주의 정치지형의 변화: 새로운 계급정치의 등장

 

 

강명세(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miongsei@sejong.org

 

 

 

선진민주주의의 정치지형이 대대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2016년 트럼프 당선, 영국에서의 브렉시트, 그리고 프랑스의 극우전선의 2017년 대선 결선진출은 전후 정치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다. 공통점은 고립주의이다. 각 선거에서 3국의 투표자는 트럼프, 르 펜, 그리고 영국의 존슨 등이 표방한 자국우선주의를 지지한 것이다. 보호주의와 자국우선주의는 전후 세계질서가 구축해온 자유무역질서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이중의 정치적 균열

 

정치지형의 변화는 사회적 갈등구조의 변동을 반영한다. 사회균열의 변화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면 아래에서 지속돼왔던 거대한 변화의 결과이다. 거대한 변화는 기술변화와 세계화, 탈산업화 등을 포괄한다. 지속적 변화로 인해 갈등의 이중적 구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제 과거처럼 좌우균열이 전체를 지배하지 못한다. 좌우의 이념적 균열 하에서 복지국가와 재분배정책을 둘러싼 쟁점이 지배구조를 형성했었다. 그러나 기술변화가 낳은 직업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며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은 더 세분화되었다. 탈산업화와 더불어 복지서비스가 크게 팽창하면서 사회문화관련 일자리가 대폭 증가했다. 주로 여성이 늘어난 복지서비스 및 사회문화전문직에 진출했다. 사회문화전문직은 직무 성격상 전통적 관리직이나 기술전문직과는 달리 문화적으로 위계적이지 않고 보편주의를 선호한다. 한편 노동계급은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감소하는 동시에 비숙련 노동이 증가했다. 노동계급의 직무는 성과달성을 목표로 하는 직무 특성상 조직 위계적이며 따라서 권위주의적 문화가 강하다. 지식사회에서 사회정치적 갈등이 경제적 갈등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회정치적 갈등: 이민과 다문화주의

 

세계화가 허용하는 노동이동은 사회정치적 균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데 기여했다. 이민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문제였으나 유럽연합 결성과 중동의 정치적 불안이 결합하여 서유럽의 최대 정치문제가 되었다. 저학력 저숙련의 노동계급은 이민노동자와 일자리를 경쟁해야 한다. 이들은 이민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와 소득을 위협한다고 믿고 배타주의와 폐쇄적 자국중심주의를 지지한다. 이민노동자가 자신들을 위한 복지제도를 악용하여 복지재정을 악화시킨다고 믿는다.

 

배타주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극우정당 지도자가 이들이 원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전략으로 지지를 호소한다. <그림 1>1990년대 전반에 비해 2010년대 후반 극우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가 모든 나라에서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독일에서는 2003년 선거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극우정당(AfD)2017년 선거에서 12.6% 득표하여 연방의회에 진입했으며 핀란드에서도 미미했던 세력이 2019년 선거에서 17.5% 득표를 기록했다.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는 노동계급의 지지 덕분이다. 이제 계급은 계급정치의 종언이 예측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가고 있다. 계급정치는 전후 복지국가를 추진했었던 경로와는 정반대로 부활 중이다. 좌파정당은 노동계급에 소홀했으며 노동계급은 좌파정당을 이탈했다.

 

                                                                 

 

계급정치의 파라독스

 

1980년대 일부에서 계급정치는 끝났다는 평가가 내려진 적이 있는데 많은 주목을 끌었다. 전후 정치는 계급 정당에 의해 주도되었다. 노동과 자본을 대표하는 양대 정당이 분명한 이념과 정책을 기반으로 대립하고 경쟁하였다. 사회당은 재분배와 증세를 제시한 반면, 보수당은 시장경쟁과 감소정책을 주장했다. 그러나 계급종언론은 탈산업화 사회에서 계급 사이의 차별성이 엷어지고 따라서 정당 간 차이가 사라진다는 주장을했다. 그러나 극우포퓰리즘의 득세는 계급종언은 계급의 변화를 간과한 착시에서 불과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다문화주의, 젠더, 외국인 노동자 등과 관련된 사회정치적 균열이 전통적 경제적 균열에 부가하면서 계급정치의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과거처럼 노동=사회당 등식의 계급정치는 사라졌다. 역설적으로 노동이 사회정치적 균열을 따라 극우정당을 선호하는 새로운 계급정치가 등장했다.

선진민주주의 노동계급이 사회당, 사민당을 버리고 극우정당을 선택하고 있다. 세계화의 결과, 민노동의 급증은 선진국 노동계급, 특히 저숙련 저학력의 노동자에게 위협적이다. 이민노동의 대체효과 탓에 일자리와 소득이 감소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재분배를 지지하면서 다른 한편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우경화한다. 노동계급이 극우정당을 지지함에 따라 극우정당의 프롤레타리아트화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한편, 중도/진보 정당은 수적으로 증가하는 전문직 중간계급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서민정책이나 여성 정책에 대해 특수주의보다 보편주의, 그리고 소수자 보호정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전문직 중간층을 겨냥한 보편주의는 노동계급의 사회정치적 권위주의와 갈등을 빚는다. 이민문제는 갈등의 핵을 차지한다. 반이민적 태도는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주요 요인이다.

 

<그림 2>2013년과 2017년의 노동계급(숙련, 비숙련)과 중간계급(중간층, 전문직)이 각각 전체 평균에 비해 극우정당을 얼마나 더 또는 덜 지지하는가를 비교한다.1) 숙련노동자의 극우정당지지는 평균에 비해 약 3% 더 높다. 같은 해 전문직은 평균에 2.6% 정도 낮다. 2017년에 오면 숙련 노동자의 극우 지지도는 평균에 비해 6.6% 더 높다. 한편 전문직의 극우 지지는 5.2% 낮다. 두 기간을 비교할 때, 노동계급의 극우정당 지지가 상승했다면 전문직 지지는 하락했다.

중도 정당의 딜레마

 

좌우의 중도정당의 지지층을 유혹하는 극우 정당의 전략이 성공함에 따라 중도정당의 지지가 위축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노동계급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중도좌파 정당은 좌측으로부터는 녹색당 등 신좌파, 우측으로는 극우 정당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형국에 처해있다. 특히, 극우 포퓰리즘 정당은 중도좌파 정당이 이민문제에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하며 기득권 이익의 수호자라고 비난한다. 한편 기독교 우파 정당이나 자유주의 정당이 이민 정책에서 분명한 노선을 제시하지 못함에 따라 이들을 지지해왔던 전통적 지지층이 극우 포퓰리즘으로 이탈하고 있다. 경제적 이해와는 독립적으로 보편주의-권위주의 가치의 균열이 지금처럼 지속되는 경우, 극우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지지는 늘거나 줄지 않을 것이며 이는 3당 체제의 성립을 예고한다. 극우 포퓰리즘이 경제적 균열에서는 좌파적 입장을, 그리고 문화적 균열에서는 권위주의적 가치를 주창하여 강력한 한 축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림 3>은 독일의 3 정당, 보수당, 사민당 및 포퓰리즘 정당(AfD)의 전략적 변화를 보여준다. <그림 3>의 두드러진 특징은 최근 연방의회 선거에서 12.7% 득표와 94석을 얻은 극우 포퓰리즘 대안정당(AfD)의 전략적 변화를 말해준다. 그림 X축은 진보/보수 또는 보편주의/권위주의 척도를, Y축은 두 가지 균열 즉 경제적 및 사회정치적 차원의 균열이다. 정강정책의 2013년과 2017년을 비교하면, 포퓰리즘 정당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진보적 위치 즉 좌측으로 이동하고 사회정치적 차원에서는 권위주의적, 반이민적 측면을 강화, 즉 극우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전략적 위치이동은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보편적 경향이다.


 

3당 체제의 구축

 

3당 체제가 가능한 것은 극우 포퓰리즘 정당을 지탱하는 독자적인 사회적 기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술변화와 교육의 지속적 확장으로 직업구조가 변하고 이에 따라 계급구조가 변했다. 복지국가의 확대는 공공서비스의 일자리를 늘렸고 사회문화 부문이 팽창했다. 제조업 생산계급의 수는 감소하는 대신 사회문화 서비스 분야의 종사자가 늘었다. 복지분야 공공부문이나 서비스업에는 고학력의 여성이 진입해왔다. 제조업 노동자는 성과지향의 업무 특성으로 사업장 문화는 위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재분배나 복지정책을 선호하지만 사회문화에서는 권위주의적이다. 한편, 새로이 성장하는 사회문화 분야의 전문직은 직업 특성상 자유주의적이며 보편주의적 문화에 익숙하다. 이들은 시장과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공공의 역할을 중시하는 점에서 전통적 노동계급과 이해를 공유하지만 동성애, 이민, 양성평등 등의 문화적 차원에서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갖는다.

 

단순다수제도를 이용하는 미국에서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두고 공화당 강경파와 온건파가 갈등하면서 제3당적 경향이 은폐된다. 제도적 조건으로 인해 공화당의 극우분파, 예를 들면 티파티 분파가 예비선거를 지배하고 극우적 권위주의적 후보를 최종 후보로 만드는 극단적 경향이 발생한다. 이 경향은 트럼프가 잘 대변한다. 일본의 자민당의 극우화 경향도 비슷한 논리를 따른다. 일본 자민당 스스로가 극우화함으로써 극우 포퓰리즘의 대역을 하기 때문에 독자적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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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지지도가 10% 이상을 기록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나라에 한정한다. 여기에는 오스트리아(FPO), 스위스(SVP), 덴마크(DF), 독일(AfD), 핀란드(PS), 노르웨이(FrP), 그리고 스웨덴(SD) 등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