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현재적 함의와 남북관계 개선 모색
남북경협과 공동번영
[세종논평] No. 2020-13 (2020.06.12.)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올해로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0년이 되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의 정상이 만나 논의한 내용이 담긴 본 선언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 공동 번영을 향한 중요한 이정표이자 이후 남북공동선언들의 원형이 되었다. 20년의 시간이 흘러 개선의 기대를 모았던 남북관계가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 6.15 남북공동선언의 발표와 이행이 남북경제협력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998년에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제시한 대북화해정책인 햇볕정책은 3대 목표와 6개의 추진 기조로 요약된다. 3대 목표는 첫째 북한의 무력도발을 허용하지 않으며, 둘째 남한 또한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고, 셋째 화해와 협력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6개의 추진과제는 안보와 협력의 병행 추진,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의 우선 실현, 더 많은 접촉과 대화 및 협력 추진, 남북 간의 상호 이익 도모, 남북 당사자 원칙하에 국제적 지지 확보, 투명성과 서두르지 않는 대북정책 추진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정부는 분단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분단이 만들어 놓은 현실을 극복해 나가고자 하였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가져온 가장 큰 성과는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본 선언에서 남북은 남북교류로 신뢰를 구축하고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지향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상호 신뢰 구축은 선언적인 구호가 아니라 서로 만나 교류하면서 접촉면을 넓혀 나갈 때 가능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위탁가공사업을 지속하면서 남북한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 등 다양한 경제협력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단발성 행사나 지원이 아닌 지속성을 갖고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94년 1억 9,500만 달러에 불과했던 남북교역액은 2015년 27억 1,400만 달러로 14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그리고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사업은 남북경제협력사업이자 한국의 경제활동 영역을 북방경제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 사업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안정적인 경제관계의 지속으로 한반도의 평화 증진, 남북 간 이질감 해소 등 경제외적인 효과도 발생하였다. 향후 경제협력사업으로 상호 이익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남북 간 화해와 평화를 증진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한편 한계도 있었다.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 본다면 남북경협사업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성장하였으나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였다. 남북교역액이 가장 높았던 2015년에도 당시 남북교역액은 한국의 대외교역액의 0.28% 수준이었다. 시계열적으로 살펴보면 성장세는 뚜렷하였지만 절대적인 수준은 낮았으며 남북공동번영이라는 목표에 비해 그 성과는 아직 미미하였다. 그러나 3단계에 걸친 개성공단 개발 계획이 1단계조차 완성되지 못하고 2016년에 전면 중단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경협사업의 성장 가능성이 경제외적 요인에 의해 차단되었기 때문에 이 결과만으로 경협사업의 성과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대응조치로 5.24조치로 모든 추가적 투자가 중단되었고 개성공단만 현상 유지 수준에서 가동되었다. 2013년에는 북한 핵심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개성공단의 가동이 6개월 간 중단되었다가 같은 해 8월 남북이 재가동에 합의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 받음이 없이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명시하였다. 2016년 2월 북한이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단행하자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핵·미사일 개발비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폐쇄를 결정하였고, 이로써 남북경제협력사업은 전면 중단되었다.
이후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둘러싼 환경은 변화하였다. 먼저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그에 대응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는 북한의 대외경제를 사실상 봉쇄하였다. 그 결과 현재 북한은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품목에 한해 최소한의 교역만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북한은 2018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경제 발전에 매진할 것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공식 발표 이전부터 북한은 해외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경제개발구를 북한 전역에 선정하면서, 입지 선정에서부터 경제적 효과를 우선 고려하고 법적·제도적 장치를 개선하는 등 대외경제 부문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낳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 왔다.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제교류가 가져올 후과에 대해 경계하며 경제적 논리보다 정치적 논리를 우선했던 모습에서 탈피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고려한다면 앞으로의 남북경제협력사업은 진일보된 구상이 필요하다.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는 기존 사업 방식뿐만 아니라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첨단 산업 부문에서의 기술협력 등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아가 동북아시아라는 지역 경제 내에서 북한과의 협력 사업을 구상함으로써 안정적인 남북경제협력과 공동 번영을 추진할 수 있다. 즉 한국은 경제 활동 영역의 확대를 통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고 북한은 확대된 대외 경제 관계 속에서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시작된 남북관계 개선의 움직임은 그 해 4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이어졌다. 특히 판문점 선언에서는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하여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으며, 평양선언에서는 이전까지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남북경제협력사업에 더해 서해경제공동특구와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계획까지 담아내었다.
그러나 2020년 현재 남북경제협력사업은 여전히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남북경협사업조차 이행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오히려 남북 간 적대와 불신이 해소되는 과정으로 보였던 최근 2년의 상황이 역행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자아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유엔 대북제재라는 현실적 한계 속에서도 한국 정부가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강한 의지와 구체적인 협력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의 확산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는 이 시점에서, 당장 경제협력사업을 재개하지 못하더라도 남북한 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는데 필요한 인도주의적 사업부터라도 우선 착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남긴 것은 후속 사업들이 가져온 성과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당사자로서 합의를 실천하기 위해 결단하고 설득했던 그 경험이다. 남북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은 발생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확고한 안보태세를 갖추고 대응하면서도 경제협력사업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분단이 만들어낸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실적 문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한편 그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조성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서기 위한 실천이 한국 정부에 남겨진 과제이다.
※ 『세종논평』에 개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