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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논평 No.2019-07] 2차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미국의 인식

등록일 2019-03-01 조회수 7,060 저자 우정엽

2차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미국의 인식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woo@sejong.org
 

일단 미국에서 나온 첫 번째 반응은 놀라움이다. 이렇게 협상이 파기되는 것까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담에 앞서 미국에서 제기된 우려의 대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낮은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북한으로부터 받고 큰 규모의 제재를 완화 혹은 해제해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요원하게 만들고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우려가 전문가들과 언론을 중심으로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이번의 협상 결렬은 일단 놀라움으로 다가왔다.“No deal is better than a bad deal (나쁜 합의보다는 합의를 안 하는 것이 낫다)”라는 논리에 기초하여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던 사람들도 일단 안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 합의에 진심으로 임할 리 없다는 근본적인 불신, 지난 1차 협상 이후 아무런 성과가 없는 상황,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혐오 등이 이번에 복합되어 나올 수 있는 건 오직 Bad deal (나쁜 합의)이라는 게 그들이 가진 우려였다.
 

이러한 미국의 인식은 우리의 기대와는 많이 대비되었다. 이번 협상을 앞두고 우리는 긍정적인 결과, 다시 말해 영변이라는 요소와 제재 완화가 교환되어 북한의 비핵화도 진전되고, 제재 완화라는 요소가 향후 남북간의 관계 증진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이러한 기대의 배경 중 하나는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북한보다 더 급할 것이기 때문에 진전된 협상 결과를 얻기 위하여 북한이 원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제재를 완화해주고 영변 핵시설과 관련한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정이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상황과 관련하여, 바로 다음 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뮬러 특검의 결과 발표가 예고되어 있고, 또 하노이에서 회담이 열리는 시점에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것이 확실한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청문회가 열린다는 점이 이러한 예상을 가속화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있는 만큼 그에 대한 타개책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이용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북한과 어떠한 형태로든 지난 싱가포르 회담 당시의 합의문 보다 더 진전된 합의를 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문제는 지금의 미국 정치 상황은 그와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합의안을 가지고서도 북한이 더 이상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으며 미군의 유해가 송환되고 있다는 것으로 본인의 업적을 자랑하였다. 사실 미국 국내정치적으로는 그 이상의 성과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하여 진정한 핵 폐기에 대해 합의를 이루어 미국과 국제사회의 사찰 검증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북한의 미사일 등이 해체되는 장면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미국 정치에서 상당한 효과를 가질 것이나, 문서에서의 합의로 그치는 것들은 미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우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워싱턴의 안보 서클에 있는 전문가 그룹과 언론, 그리고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 등이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을 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북한의 인권 문제 등을 전혀 거론하지 않은 채 김정은 위원장과 협상을 계속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어설픈 합의 보다는 합의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이번 협상 결렬의 원인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북한은 제재 전체를 해제하기를 원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이에 대해 리용호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 그 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가해지고 있는 제재결의안 중에서 일부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북한의 말이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점은 20063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695호부터 시작하여, 2017122397호까지의 제재안 11개 중에서, 북한의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재는 북한이 해제를 원하는 20163월 부과된 2270호 제재안부터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볼 때에는 2016년 이후 부과된 제재안이 현재 북한의 행동 변화를 가져온 대북 제재의 핵심이다. 이란과 국제사회의 비핵화 협상이 시작될 때, 전문가 그룹에서는 대이란 제재와 대북 제재를 비교하는 연구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큰 차이가 경제 전반에 대한 제재가 가해지느냐의 여부였다. 이란과의 협상이 이란 경제 전반에 가해진 제재가 핵심 요인이라고 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처럼, 미국 역시 2016년 이후의 제재가 대북 제재의 핵심이라고 본다.
 

특히, 8개월 만에 개시된 북한과의 실무협상 과정에서 스티브 비건 대표가 아직 비핵화의 정의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북한과 하지 못했다고 밝힌 것은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의 최종적인 핵 폐기가 북한에서 인식하는 비핵화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 인식의 차이를 비건 대표가 확인하게 되면서 최종 목표 지점에 대한 확실한 동의 없이 중간 단계에서 제재를 풀어주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더욱 강하게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종 목표를 언제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만 그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합의가 가능하고, 그에 대해서는 미국 역시 단계적으로 제재를 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최종 목표에 대한 확실한 합의 없이 중간 단계에서 제재를 약화시키는 합의를 하게 되면 최종 지점에 이를 가능성 자체를 낮추는 것이 되기 때문에 현재 미국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최종적으로 미국은 북한이 기존에 만들어 놓은 핵무기와 핵물질 등을 완전히 폐기하는 시점까지 가장 큰 폭의 제재 해제를 남겨 놓아야 북한을 그 지점까지 끌고 갈 수 있는데, 북한은 초반에 영변 등의 폐쇄와 큰 규모의 제재 해제를 교환하길 원하고 있어 논리적으로 두 국가의 접점이 생기기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