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무리한 주한미군 분담금 인상 요구 배경과 대응 방안
[세종논평] No. 2019-29
박지광 (前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회의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2019년 11월 19일 개최된 한미방위비 3차 협상은 양측의 현격한 입장차이로 예정된 7시간보다 훨씬 짧은 90여분 만에 끝나고 말았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 정부에 방위비 분담금으로 작년의 5배가 넘는 50억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식을 뛰어넘는 무리한 인상폭에 보수 언론조차 당황해하고 있으며 이혜훈 국회의원 같은 보수적 인사도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반발하고 있다. 1)
이러한 미국측의 강경한 요구에 혹자는 “미국측이 정말로 50억불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 한번 찔러보는 것 아니야?”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쓴 『협상의 기술』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50억불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과도한 요구를 통해 분담금 협상에서 기선을 제압한 뒤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것으로 예측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타협 가능액은 일반 대중의 예상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이렇게 예측하는 것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은 미국 보수층으로부터 매우 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정책으로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핵심이슈로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높은 문제이다. 이러한 이유로 올 초 민주당이 장악한 미국 하원은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까지 감수하면서 미국-멕시코 국경 건설 예산의 대부분을 삭감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 장벽이라고도 불리는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의 건설은 현재 예상외로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국경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관세국경보호청(Customs and Border Protection)의 마크 모건(Mark Morgan)청장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은 70여마일 정도만 건설되었다. 2) 게다가 이 장벽들은 기존 세워져 있던 국경장벽을 허물고 다시 건설한 것이지 기존에 장벽이 없던 지역에 장벽을 새롭게 세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더딘 진척에 트럼프 대통령은 분노와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캘리포니아 오태이 메사(Otay Mesa)에 위치한 국경장벽 건설현장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내년 말까지, 즉 선거전까지, 총 500마일에 달하는 국경장벽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정치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한 트럼프 장벽의 건설이 더딘 이유는 장벽 건설과 관련된 기술적·법률적·행정적 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장벽 건설을 뒷받침할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2020년 예산안에 트럼프 장벽 건설을 위해 83억불을 배정하였지만 민주당이 지배하는 하원이 이를 통과 시켜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실제로 민주당은 1불도 승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따라서 국경 장벽 건설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위해서는 예산 마련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올 9월에 미 국방부는 내년으로 예정된 127개의 국방부 군사시설 프로젝트(주한미군시설 2개 포함)를 연기하고 이를 통해 마련한 36억불을 트럼프 장벽 건설에 투입하여 175마일의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연기된 국방부 프로젝트의 절반이 미국 내 미군기지 건설 및 개보수 비용인데 이들 기지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정치인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국내 군사시설 프로젝트를 국방부 계획대로 연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설령 정치인들의 반대를 이겨내고 미 국방부의 계획대로 36억불을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내년까지 500마일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예산이 부족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주한미군주둔 비용을 한국정부에 떠넘기고 이를 국경장벽건설에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미 국방부도 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해외 군사시설의 경우 동맹국들과의 비용 분담을 논의하겠다고 언급하였다. 3)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도 60억불의 부담금 청구서를 받았다는 것은 트럼프가 해외주둔 미군예산으로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을 건설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미국 내 정치적 상황은 50억불 인상을 갑자기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이 단순한 협상 전략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관련자들도 미국측의 태도가 매우 진지하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방위비 분담금의 파격적인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관측들 역시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조선일보는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기정사실화하여 대폭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한미방위조약으로 묶여있는 5대 방위 족쇄를 풀자고 제안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측의 태도는 내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서 크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트럼프가 당선되지 못하면 무리한 방위비 분담 요구는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공화당이 하원을 되찾을 경우에도 이러한 방위비 분담 압력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공화당 하원이 트럼프 장벽 건설 예산안을 통과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내년 선거가 민주당이나 공화당 중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즉 내년 선거결과에 따라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 환경이 크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번에 인상폭을 최소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2020년에만 국한해 일회성 추가지급을 하는 것도 좋은 대처방안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인상의 폭은 10%로 제한하되 이번에 연기된 주한미군 시설 공사를 우리가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한미동맹은 우리 방위전략의 근간이며 주한미군의 주둔은 우리에게 안보상의 이익을 제공하기에 한미동맹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미 하원이 이미 주한미군을 22,000명 이하로 감축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상황에서 안보외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트럼프 행정부의 무리한 요구에 선뜻 동의하
-------------------------------------------------------------
1) “이혜훈 ‘美대사, 관저로 불러 방위비 인상 요구만 20번...당황’,” 『동아일보』., 2019/11/19,
http://www.donga.com/news/Main/article/all/20191119/98439505/2.
2) 워싱턴 포스트 fact checker에 따르면 66마일. https://www.youtube.com/watch?v=Y1wy7lro4OY
3)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905/972804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