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의 회복을 위한 한국의 대일정책 전환 방향:
정 성 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softpower@sejong.org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아베 신조 총리와 가진 첫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할 뿐 아니라 지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라며 “과거 역사적 상처를 잘 관리하면서 미래지향적이고 성숙한 협력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해 함께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에 아베 총리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 미래 지향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 차원의 긴밀한 소통을 토대로 함께 협력하자”고 호응했다. 그러나 한․일 정상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체결한 한일 ‘위안부’(이하 ‘일본군 성노예’로 표기) 합의 문제에 대해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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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리자 한일관계는 다시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그리고 동년 11월 한국정부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합의를 근거로 설립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자 일본 내각이 다시 이에 강렬하게 반발하면서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마침내 일본은 지난 7월 4일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소재 3개 품목에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취한데 이어 8월 2일에는 아베 총리 주재로 각료 회의를 열어 한국을 통관절차에서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도 지난 8월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을 발표했고,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내용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 고시를 이번 주에 관보를 통해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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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일관계 파국의 가장 큰 책임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 경제 보복으로 대응한 아베 내각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정부가 일본과 ‘강 대 강’으로 정면충돌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한국 내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한국인의 일본 관광 축소로 일본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만 양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 한국 경제상황의 악화도 불가피하다. 한일 간 원천기술의 격차를 단기간 내에 좁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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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아베 내각의 감정적 대응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한일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는 다음의 여섯 가지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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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방안은 징용 피해자들이 압류 재산 매각에 나서는 것이다. 이 경우 사법부에서 외롭게 투쟁해온 피해자들이 이번에는 일본의 강제동원 기업(과 일본 정부 및 국민)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남기정). 만약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이 진전된다면 한일관계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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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방안은 청구권협정 제3조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해결하는 것인데 결론이 나오기까지에는 최소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그때까지 피해자 구제가 지연되는 문제가 있다(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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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방안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한․일이 공동으로 제소해 징용 문제에 대해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의 3자적 판단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한․일 양국이 징용 문제를 ICJ에 공동 제소하면서 양국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지 의문이며, 국제사회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이 낮은 상황에서 부분 승소, 부분 패소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고(이원덕), 패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남기정). 이와 관련 과거 제국주의국가들이 식민지배에 대해 배상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ICJ에서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적어도 3~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만큼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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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방안은 한국 정부가 주도하고 청구권 자금으로 성장한 한국 기업과 일본의 강제동원 기업이 참가하는 1+1+1 방식(남기정) 또는 지난 6월 19일 한국 외교부가 제안한 한국기업+일본기업 출연방식에 의한 위자료 지급방안에 한국정부의 역할을 더하여 2+1 체제로 꾸려 일본과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이원덕). 이 경우 피해자 그룹과 국내 출연기업 및 일본기업의 3자 동의가 필수적인데 이 같은 합의가 가능하다면 피해자도 신속하게 위자료를 받을 수 있고 한일관계가 조기에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피해자 그룹과 국내 출연기업 및 일본기업의 3자, 특히 일본기업의 동의를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아베 내각이 1+1+1 또는 2+1의 배상 방식을 수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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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방안은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징용 피해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먼저 배상금을 지불한 후 일본정부와 외교협상을 벌이는 ‘선 지급, 후 구상권 청구’ 방식(진창수) 또는 청구권 수혜 한국 16개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 먼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나중에 일본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양기호)이다. 만약 한국 정부나 기업들이 먼저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한다면 아베 내각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겠지만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아베 내각이 구상권 청구 협상을 수용하거나 일본 기업들에게 협상하도록 허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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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방안은 경제성장으로 재정 규모가 커진 한국정부가 징용 피해자에 대해 배상하고 일본에게는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 반성을 요구하는 도덕적 우위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진창수·이원덕). 만약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게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요구하지 않을 테니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인정하라는 입장을 취한다면 아베 내각은 더 이상 경제보복을 유지할 명분을 상실하게 되고 외교적으로 매우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한․일 문서 공개에 기초해 2007년 당시 노무현 정부가 6,300억 원 정도의 보상금을 식민지 시기 피해자에게 지급한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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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책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일본 아베 내각의 치졸한 경제보복에 똑같이 경제보복으로 대응하면 일본도 피해를 입겠지만 우리 경제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일본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가 일본과의 경제전쟁으로 한국이 입을 피해보다 크지 않다면 한국정부가 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 대신 위자료를 지급함으로써 경제전쟁을 중단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과 한미동맹 및 북한 비핵화를 위한 관련국들 간의 협력을 위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 한국정부는 “싸워서 이기는 것은 최하책이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지적한 손자(孫子)의 가르침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