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과 한미의 대응 방향
[세종논평] No. 2019-28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softpower@sejong.org
그런데 6․12북미공동성명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안전담보를 제공할 것을 확언하였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를 재확인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6․12북미공동성명에 한미가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이라는 명시적인 언급은 없지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확고한 의지’는 명확하게 표명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연합훈련이 “6․12북미공동성명에 대한 노골적인 파기”라는 북한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협상 의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결정을 밝혔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까지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과 방법에 대한 북미 간 논의를 거부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의 북미 고위급회담이나 실무회담에서 그리고 하노이 정상회담 및 스톡홀름 실무회담에서 ‘비핵화’의 개념과 ‘최종상태’ 및 방법에 대해 미국과 진지하게 논의를 진행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재개를 결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6․12북미공동성명을 파기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다.
북한은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그들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미국 대통령이 자랑할 거리를 안겨주었으나 미국 측은 이에 아무런 상응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미국측으로부터 받은 것이란 배신감 하나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2018년에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단, 핵실험장 폐기, 미군유해 송환 등을 통해 북미 대화 채널 구축, 북중 관계 개선, 남북 및 북미 군사적 긴장완화, 김정은 위원장의 대외적 이미지 개선 등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므로 북한이 2018년에 취한 조치로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북한이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나 국무위원회 명의로 대외적 입장을 발표하는 방식으로는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 국무위원회 성명, 국무위원회 대변인 성명, 국무위원회 대변인 중대담화,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 등이 있을 수 있다.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입장 천명이지만 앞으로 북한은 ‘국무위원회 대변인 성명’ → ‘국무위원회 성명’ →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의 순으로 입장 천명의 수위를 계속 높여갈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17년 9월 2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을 발표해 “트럼프가 세계의 면전에서 나와 국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며 우리 공화국을 없애겠다는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은 동년 11월 29일 미국 본토 전역까지 도달할 수 있는 제3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해 미국과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북한이 다시 ICBM을 시험발사할 경우 유엔안보리가 중국의 대북 원유공급이나 관광에까지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향후 ICBM 시험발사보다 신형 잠수함에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2019년 7월 23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공개한 데 이어 지난 10월 2일에는 동해의 원산만 수역의 수중발사대(또는 바지선)에서 신형 SLBM인 ‘북극성-3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향후 북한은 지난 7월에 공개한 신형잠수함(또는 시제품 잠수함)에서 SLBM을 시험발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신형 잠수함에는 SLBM 3개 정도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약 북한이 신형 잠수함에서 SLBM을 시험발사해 성공함으로써 잠수함에서도 핵무기 발사가 가능해진다면 북한은 더욱 위협적이고 고도화된 핵미사일 능력을 보유하게 되고, 북한의 비핵화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북한이 주요 고위급 인사들의 담화 발표에 이어 김정은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무위원회’의 대변인 이름으로까지 담화를 발표한 것은 이후 군사행동, 즉 국제사회가 크게 반발할 신형 잠수함에서의 SLBM 시험발사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 축적 차원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상당한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신형 잠수함에서의 SLBM 시험발사 및 비타협적인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북한을 다시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불러오기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내년 상반기까지라도 한시적으로 잠정 중단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한 한미의 결정은 2018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 남북정상회담 추진 →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추진 → 경제․핵건설 병진노선의 경제총력노선으로 전환과 핵실험장 폐기 →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연결되어 한반도 긴장완화와 북미 정치적 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만약 한미가 다시 연합군사훈련을 잠정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북한도 더 이상 미국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중국도 환영하지 않을 고립주의적인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도 11월 13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 증진을 위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추가로 축소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북한이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및 SLBM을 시험발사하지 않고 북미 비핵화 협상에 진지하게 나오는 것을 조건으로 미 행정부와 한미연합훈련의 잠정 중단 방안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