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북미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북한 외교에 대한 전망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sunnybbsfs@gmail.com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 역할’의 부상
6월30일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설득해서 성사된 것’이란 시각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사실이라면, 시진핑이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막후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이란 의미로 읽히는 대목이다. 본고는 제3차 북미회담을 전후한 중국의 전략적 시각을 반추하고, 중국의 향후 북한 외교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판문점 북미회담에 대해 “건설적이고 긍정적 성과”를 도출했으며 특히 북한과 미국 양측이 조만간 실무진 협의를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중국은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7월1일).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 “최근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조선을 방문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 넣었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막후 역할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중국의 전략적 관점에서 보자면, 6월30일 판문점 북미 회담과 그전에 거행된 시진핑의 북한 방문(6.20-21)은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갖게 된다. 한국 정부는 시 주석의 방북이 발표된 시점부터 일단 긍정적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6월18일 시진핑의 북한 방문에 관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동력을 살리고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을 내놓았다. 중국 정부의 설명과 유사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부분에 관해서는 완벽히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이 발언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대로 시진핑이 판문점 북미회담에 모종의 ‘중재’ 역할을 한 것이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국 관방언론이 밝힌 내용에 의하면, 과연 시진핑 주석은 평양에서 ‘북미 대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신화통신사 보도(6.20)에 의하면 시진핑은 “지난 1년간 한반도 문제는 대화 해결의 밝은 전망을 되살려 국제사회의 공감과 기대를 얻었다”고 운을 뗀 뒤,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추진노력을 적극적으로 평가”(積極評價... 推動半島無核化作出的努力)하고, “국제사회는 북미 대화가 진전되고 성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國際社會普遍希望朝美談下去並談出成果)고 하였다. ‘국제사회’란 주어를 빌렸지만, 중국이 북미 회담 성공을 바란다는 외교적 표현이다.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은 그 다음일 것이다. 시진핑의 주요 발언은 다음과 같다. 1)‘전략적 고도와 장기적 관점’(戰略高度和長遠角度)에서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확실하게 지키겠다. 2)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政治解決) 추진을 지지한다. 3)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와 경제 발전에 대한 걱정’(合理安全和發展關切)을 해결하는 데 중국은 힘이 닿는 한(力所能及) 도움을 줄 용의(願)가 있다. 4)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建設性作用)을 하겠다.
이 부분을 자세히 봐야 할 이유는 비록 중국도 미국처럼 북한의 ‘비핵화’를 원하고 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미국과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미중갈등 심화 속에서 향후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의 정책이 충돌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우선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미국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란 표현도 이제는 낯익은 표현이다. 핵을 포기하였을 경우에 북한이 느끼게 될 ‘안보 불안’이 이해된다는 것이다. 북한 편을 들어준 것이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이 북한과 같은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겠다는 정치적 배려다.
시진핑은 투철한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작년 김정은의 세 번째 방중 시 시진핑은 “변하지 않는 세 가지” (三個不變)를 약속하면서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는 “공산당이 영도하는 사회주의 국가를 견지하는 것은 북중관계의 본질적 속성이다” (坚持共产党领导的社会主义国家是中朝关系的本质属性)라고 한층 더 강조된 사회주의 연대의식을 표출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동질의식을 공유하는 중국이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에 대해 동감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에 대한 걱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힘이 닿는 한’ (力所能及)이란 극대화된 표현으로 형용하였다. 영어 표현 ‘to the best of one’s ability’으로도 그 의미가 선명해지는 이 문구는 친구 사이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이지, 현실주의 외교관계에서 흔히 쓰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혈맹이라 불리는 북중관계에서도 검색을 해보면 과거에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가 2009년 10월 평양을 방문해서 동일 표현을 썼던 것이 나온다. 2009년은 북중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올 해가 북중 수교 70주년이니 ‘10년에 한 번 쓰는 귀한 표현’인 셈이다.
또한, 집권 후 처음으로 방북한 시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建設性作用)을 하겠다"고 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말은 중국이 최근에 줄곧 얘기해왔던 바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북한을 방문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메시지를 다시 강조한 것은 좀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핵심은 시진핑이 이를 ‘전략적 고도와 장기적 관점’(戰略高度和長遠角度)에서 접근하겠다고 한 점이다. 다분히 추상적인 표현인데, 이는 중국이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 트럼프의 접근법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재를 통한 북한 비핵화’ 부정하고 中國方案 제시
트럼프는 지난 25년간 전임 미국 대통령들의 북핵 문제 접근 방식이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파격적으로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역사적인 면대면 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현재 북핵 문제는 싱가포르회담 이후 1년여의 과정을 거치면서 주춤한 상태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은 상황을 관망만하고 있었다. 중국이 ‘패싱’당했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이 북핵 문제에 있어 ‘적극적 역할’을 다짐하며 트럼프도 풀지 못하고 있는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도출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드리블하겠다는 것이다'라고 풀이가 나오는 배경이다.
종합적으로, 이번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북핵 문제에 있어서 중국이 중국식 해법인 소위 ‘중국 방안’(中國方案)을 제시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기존의 중국 방안 ‘쌍중단(雙中斷)’ ‘쌍궤병행(雙軌竝行)’이 북핵 문제를 ‘관리하는 법’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엔 ‘해결법’을 제시한 것이다. 시진핑 시대의 특징이기도 한 공세적 외교가 북핵문제에도 발현된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북한의 안전 보장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중국이 스스로 답을 하면서 다름 아닌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핵 문제에 있어 미국이 설정한 방법, 즉 ‘제재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부정하고 ‘안보 보장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인 중국식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덜어주어야만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에 기초를 두었다. ‘제재를 통한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미국과 근본적인 철학적 접근법이 다르다.
의미심장한 것은 시진핑이 북한의 안보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행동’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그 첫째는 이번 시진핑 방북에 먀오화(苗華)인민해방군 정치공작부 주임이 동행한 것이다. 중국이 북한과 군사 분야 교류를 시작한다는 확실한 정치적 신호를 준 것이다.먀오화는 인민해방군의 최고 계급인 상장(별 3개)이며, 군의 인사와 선전을 책임진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이 정도의 고위급 군 인사가 동행하는 것이 사실 ‘정상’이기도 한데 이것이 특히 관심 받는 이유는 지난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북중 사이에서 군사교류가 거의 전무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런 고위급 군부인사의 방문도 없었다. 이는 비정상이다. 이것을 바로 잡았다. 즉,‘비정상의 정상화’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로 인식된다.
이것은 당장 북한과 중국의 군대가 한미간처럼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군인 연수 프로그램, 북한군의 중국 인민해방군 훈련 참관 등, 조용한 군사교류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먀오화(苗華)의 이름도 중국 관방언론이 공개한 시진핑의 수행원 명단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북중 군사교류는 금년 10월6일 북중 70주년 기념일에 중국이 고위급 군사사절단 평양 파견을 통해 외부로 가시화되는 과정을 밟을 수도 있다.
둘째,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를 위해 중국이 한 것은 다름 아닌 ‘시진핑의 북한 방문’ 그 자체다.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평양 땅을 밟은 시 주석의 차량 행렬이 지나는 도로 양편에 25만명의 평양시민들이 도열해 ‘습근평'을 연호했다. 그들은 비록 동원되었겠지만 두 눈으로 직접 자신의 지도자 김정은이 강대국 중국의 지도자 옆에 나란히 서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는 말로만 들었던 ‘북중 우호’를 직접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4차례 중국에서 거행된 북중정상회담을 북한 주민들은 TV를 통해서 봤지만, 이번에는 평양거리에서 직접 ‘두 눈’으로 봤다.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로동신문에 기고하여 북한 주민들과 ‘지면 소통’을 하고, '조중우의탑(朝中友誼塔)'을 찾아 북중밀착을 과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생한’ 북중 밀착 체험이 북한주민들에게 안보에 대한 안전감을 심어주고, 김정은의 비핵화 지향 국내 정치에 힘을 보태준다는 논리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가져오려면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 주어야 한다는 맥락과 같다.
종합적으로, 이번 방북에서 시진핑은 북한에 대한 안보를 중국이 책임져 줄테니 안심하고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임하라는 ‘뒷배’를 제공한 것이다. 이는 모두에서 언급한 ‘시진핑이 김정은을 설득해서 판문점 회담에 나가게 한 것’이란 가설에 얼핏 힘을 실어주는 듯 보인다. 마치 시진핑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중재’한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막후 역할’이 ‘중재’는 아니다. 중국이 판문점회담을 직접 중재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북미 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중국이 '한 참모부'회의를 한 성격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시진핑이 보여준 모습은 또한 중국이 앞으로 북한 체제 보장 문제를 ‘의제화’하겠다는 예고다. 미국식‘제재를 통한 북핵 해결’ 접근법에 대한 부정이다.
전망
결과적으로, 시진핑 방북은 북미간 교착 상태를 다시 정상궤도로 올라가게 한 측면이 있지만, 판문점 북미 회담 이후 북핵 문제는 앞으로 상당히 난관 봉착 가능성도 열려있다. 이는 미중 간 궁극적인 북핵 접근법에 대한 정책적 접근법이 상이할 경우 둘 사이에서 한국의 ‘포지셔닝’(positioning)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근년에 한국 외교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특히 취약함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 첫째, 중국이 북핵문제를 뒷짐지고 ‘관망’하던 기존의 자세에서 벗어나 향후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표방함에 따라 한국의 ‘중재자’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중국은 오히려 한국에게 한중이 북핵 문제에 있어‘공동 중재자’ 역할을 하자고 제의할 수도 있다. 한국이 이 ‘한중 공조 강화’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이는 상대적인 한미 공조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중국이 북한의 안보에 적극 개입 의사를 밝힘에 따라, 비핵화 협상 구도는 ‘4자’ (북한, 미국, 한국, 중국)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3자 혹은 4자’이다. 둘 중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뜻은 아닐게다. 이 정책적 모호성 (strategic ambiguity)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정책적 명징성 (strategic clarity)으로 전환할 것인지, 그렇다면 언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검토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