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국가 대표’ 권한이 국무위원장에게 이양될 수 있을까?
[세종논평] No. 2019-15 (2019.04.17)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softpower@sejong.org
지난 4월 11일 개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최룡해 신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이며 공화국의 최고영도자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할 것을 제안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때 최룡해가 국무위원장 직책에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에 대해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해 국무위원장에게 국가의 대표 자격, 즉 대외적 ‘국가수반’ 지위를 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로,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라는 표현은 김정은 위원장이 일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처럼 특정 선거구의 주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북한 인민을 대표하는 직책이라는 의미이지 국가를 대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약 북한이 헌법 개정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국가 대표’ 권한을 부여하고자 했다면 최룡해가 추대사에서 국무위원장 직책에 대해 “공화국의 최고영도자이자 최고대표자이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야 했다.
둘째로, ‘국가 대표’ 권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최룡해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에 선출하면서 동시에 ‘국가 대표’ 권한을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이양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만약 북한이 이번에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 대표’ 권한을 국무위원장에게 이양하고자 했다면 기존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직책을 폐지하고 최룡해를 국가 대표 권한이 없는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직에 선출했어야 했다. (졸저: 『김정은 시대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세종연구소, 2014 참조)
북한 헌법 제117조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금까지 해온 ‘국가 대표’ 역할이라는 것은 대체로 외국 대사의 신임장과 소환장을 접수하고, 외국 정부, 정당, 민간 대표단들을 면담하며, 외국에 축전과 조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국제사회의 초강력 대북 제재로 인해 악화되고 있는 경제를 살려야 하고 올해에도 미국과의 협상에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국가 대표’ 권한까지 차지해 과연 외국 대사의 신임장과 소환장을 접수하고 외국에서 오는 많은 정당 및 민간 대표단까지 만날 여유가 있을까?
북한에서 1972년 헌법 개정 이전에도 현재와 같이 외국에 주재하는 대사·공사의 임명 및 소환, 외국사신[외교사절]의 신임장 및 해임장의 접수 등과 같은 ‘국가 대표’ 권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 속했다. 그러나 1972년 헌법 개정으로 이 같은 ‘국가 대표’ 권한이 공화국 주석에게 넘어가면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폐지되고 대신 신설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는 주로 입법권만을 가지게 되었다.
김일성이 1972년에 헌법을 개정해 “국가의 수반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주권을 대표”하는 ‘공화국 주석’직을 신설해 외국 대사의 신임장과 소환장을 접수하며 외국의 많은 정부, 정당, 민간 대표단을 만날 때에만 해도 북한의 대내외 환경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김일성은 1974년에 자신의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했고 이후 김정일이 곧 노동당을 신속하게 장악하면서 그를 보좌했기 때문에 김일성은 사망시까지 계속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은 심각한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에 직면해 노동당과 군대를 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주권을 대표하는 ‘공화국 주석’제를 폐지하고, 국가 대표 권한이 없는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신설했으며, 경제는 내각에 맡기고, 국가 대표 권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다시 맡겼다.
김정은도 2011년 집권 이후 주로 노동당과 군대를 중심으로 북한을 통치해왔는데 2017년의 제6차 핵실험과 제3차 ICBM 시험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초강력 제재로 인해 현재 경제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미국과의 협상에 모든 외교역량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헌법을 개정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국가 대표’ 권한을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이양하고 외국 대사의 신임장과 소환장을 접수하며 외국의 많은 정부, 정당, 민간 대표단을 만날 여유는 없을 것이다.
현재 북한 헌법 100조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공화국의 최고영도자’로 규정하고 있고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가지고 있는 ‘국가 대표’ 권한을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넘긴다고 해서 김정은의 권력이 실질적으로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최룡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아래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에도 선출되었기 때문에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의 대외적 국가수반 지위가 국무위원장에게 넘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이전에도 북한의 국가기구 서열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국무위원회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최룡해가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에도 선출되었다고 해서 국무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간의 상하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발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대외적으로 상징적인 ‘국가 대표’ 지위와 입법 권한은 가지고 있었지만 대외협상이나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영향력이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에도 선출됨으로써 그가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 전 내각 총리와 국무위원회 위원들인 김재룡 새 내각 총리, 리용호 외무상까지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1일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의 헌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 신설 및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국무위원회의 상대적 권한 확대와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헌법을 개정해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라는 호칭을 추가할 수는 있지만 ‘국가 대표’ 권한까지 부여할 가능성은 낮다.
현재 독일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독일 수상의 이름은 알아도 독일 대통령의 이름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독일 ‘국가원수’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고 정상외교에는 독일 수상이 나서고 있다. 이처럼 ‘국가원수’직이 반드시 대외적으로 한 국가의 최고직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가원수’를 보는 시각으로 다른 정치체제의 ‘국가원수’직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부적절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