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및 강제동원 문제 해법: 한일관계 재구축을 위하여
남기정(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부교수)
<목표는 한일관계 개선이 아니라 재구축이다>
한일관계가 위기 징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물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11월 화해・치유재단의 설립허가를 취소하여 재단을 해산하는 절차에 들어가자 이에 반발하는 일본의 태도가 경직되기 시작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어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미관계가 진전되는 동안에는 한일관계 악화가 초래할 심각한 결과가 체감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하노이 회담에서 합의가 불발되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주춤하는 가운데 악화된 한일관계가 우리 정부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강제동원 관련 대법원 판결은 1965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한일관계를 복구하는 길은 차단되었다. 따라서 대일외교에서 우리 과제는 한일관계 개선이 아니라, 재구축이다. 또한 목표로 할 것은, 동북아 냉전과 한반도 정전을 보증하는 한미일 안보삼각형의 하위동맹으로서 한일관계가 아니라, 동북아 냉전과 한반도 정전을 극복하는 남북일 평화삼각형의 밑변으로서의 한일관계이다.
남북일 평화삼각형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1998년 한일공동선언에서 개시되었다. 한일공동선언은 가해자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가 미래 지향의 노력을 기울이는 ‘화해’의 모범을 제시한 것으로, 2002년의 북일공동선언에 계승되어 북일 사이에서 ‘화해’를 이루는 과정에 합의한 바 있다. 그 두 가지 공동선언 사이에 2000년에는 남북공동선언으로 한반도의 평화협력 시대가 개막되었다. 1998년에서 2000을 거쳐 2002년에 이르는 시기에 남북일의 평화삼각형 구축이 개시되었던 것이다. 한국, 북한, 일본을 세 꼭짓점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평화의 핵심삼각형은 한일관계의 1965년 체제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점으로 만들어진 자산이었다. 이후의 과정은 ‘역사화해’와 ‘평화국축’이 둘이 아닌 하나의 과정임을 보여주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의미하는 것>
작년의 일련의 대법원 판결은 1965년 체제로 한일간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본으로부터 제기한 사건이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구제가 청구권 문제를 벗어나, 불법적 식민지배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문제제기였기 때문이다. 즉 대법원 판결은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관계의 근본을 이루는 1965년 체제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한일기본조약에서는 식민지배의 기원이 된 1910년 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미 무효’라는 문구의 해석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해 왔다. 우리 정부는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합법적이고 유효했으나 1948년 우리 정부 수립으로 무효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로 우리 정부는 이 해석의 차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우리 정부의 해석으로 일치시켜야 하는 의무를 안게 되었다.
나아가 대법원은 청구권과 경제협력의 대가성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대법원 판결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요구한 손해배상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별도로, 한일 양국 정부가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을 일치시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면, 피해자들이 사법적 해결에 나서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1965년 체제의 한계를 궁극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공동선언을 채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가볍게 여길 경우, 부작위의 책임이 발생하게 된다.
<한일 신공동선언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노력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1993년 고노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한일공동선언, 2002년 북일공동선언 등을 거쳐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켜 왔다. 이는 물론 민주화 이후 성장한 우리 시민사회의 문제제기에 촉발된 것이었으며, 특히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이루어낸 것들이었다.
일본 안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역사화해와 평화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간 나오토 총리는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이러한 일본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를 수용하여 한일합병 100년의 해인 2010년에 새로운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에서 간 총리는 3.1운동을 언급하여, 식민지 지배가 ‘한국 사람들의 의사에 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이한 우리 정부는 간 나오토 담화의 이 부분에 특히 관심을 갖고, 1910년 조약의 불법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일본 정부의 일방적 담화가 아닌, 양국의 공동선언에 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일본이 1910년 조약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순간 발생하게 될 일본정부의 배상책임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리 정부와 국민이 결단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불법성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일본에게 더 이상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1910년 조약의 강제성과 불법성이 확인되는 순간, 일본이 지불한 이른바 청구권 자금은 민사상의 재산문제가 아니라 불법적인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법적 배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청구권협정에서 제외되었다고 하여 2005년 이후 한국정부가 새롭게 제기하여 해결을 요구하고, 일본 정부가 ‘도의적 책임’으로 실시해 온 사할린 동포 귀국 사업과 한국인 피폭자 문제, 아시아여성기금과 관련한 노력들도 법적 배상의 범주에서 실시된 사업들이라는 성격을 획득할 수 있다. 나아가 2015년 ‘위안부’합의로 일본이 지불한 10억 엔도 법적 배상의 성격을 획득하게 되어, 한국 정부가 이를 받아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사업에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로서 한국 정부는 헌법에 각인되고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확인된, 대한제국 정부를 계승하여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의 법적 정통성을 국제적으로 확인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사죄 반성하여 식민지 배상을 실시한 최초의 국가로서 역사화해의 새로운 모범 국가가 될 수 있다. 일본을 이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일본으로 하야금 邪路로서 出하야 동양 지지자인 중책을 全케 하는” 3.1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다. 이 방식은 북일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북일 수교 이후에는 남북일의 신공동선언으로 확대 발전시켜, 한반도-일본 간의 식민지 지배 역사를 총괄 극복하는 길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재단 설립이 현실적 대안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긴 과정이다. 따라서 당장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해서는 실질적이고도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에 선다면 이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이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가 주도하고 청구권 자금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과 일본의 강제동원 기업이 참가하는 방식으로 재단을 설립해 대응할 것을 제안한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일본의 정부와 기업이 대법원 판결에 반발하거나 이행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나온 대안으로서 재단 설립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과녁을 놓친 것이다. 또한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가로 칭송되는 독일조차도 법적배상을 비켜가며 민간재단 방식으로 개인 보상을 실시했다는 사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피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청구권자금으로 성장한 기업이 그 이익을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해당 기업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대법원 판결은 대한민국이 1948년에 신생국가로 건국되었다는 단절론을 배제하고 있다. 그 판결을 존중한다면 대한민국임시정부 하에서 일어난 ‘징용’ 및 ‘징병’ 등 강제동원으로 발생한 국민들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의 일부는 대한민국 정부에 귀속된다. “대한민국은 대한인민으로 조직함”을 천명한 대한민국 임시헌법 1조에 따라, 대한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대한민국 정부에 있고, 외국의 강점상태를 용인하여 그 불법행위로 인해 자국민이 생명을 잃고 재산을 보호받지 못한 상태를 시정하지 못한 책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2015 합의 완성으로 풀어야 한다>
한편 2015년 합의는 여가부를 중심으로 한 국내적 노력에 외교부의 대일외교에서 출구전략을 마련함으로서 완성될 수 있다. 이미 우리 정부는 합의 파기와 재협상이 대안이 아님을 확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합의가 미완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완성시켜가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내적 노력의 일환으로 여가부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데 따를 후속 조치로, 새로운 기구를 설립하여 위령 및 추모 사업을 전개하고. 진상규명과 교육기관으로 ‘세계 여성인권과 평화 기념관/연구원’을 건립하고, 이를 국제기구화하여 전시성폭력 문제와 관련한 국제적 문제제기와 연대활동의 장을 국내에 마련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외교부가 집중해야 할 일은 10억엔의 ‘금전적 조치의 의미’를 확인하는 일이다. 즉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피해자와 한국 국민에 대한 직접적 공개적 사죄’로 구체화하여 이를 확인하는 노력에 더해 ‘금전적 조치가 실질적 배상에 해당한다는 공식적 해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소녀상’ 이전 문제와 ‘직접 사죄’를 2015년 합의 이행의 출구에 놓고, 이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을 일본 정부와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는 합의의 외부에서의 보완이나 수정이 아닌 합의의 완성을 이루는 방법이다. 여기에서 직접 사죄의 수준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역사수정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아베 총리에게 이를 위한 구체적 행동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 대신 합의문의 3대 핵심사항을 기림비에 새기고, 이를 수용하는 일본 정부/국회 인사가 기림비 건립행사에 참석함으로써 직접 사죄를 확인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균형을 잡고 용기를 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진정 피해자 중심주의에 서기 위해서는 역사의 정의와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균형을 잡고 용기를 내야 한다. 역사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일본 쪽에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적극적 태도를 이끌어 내야하고, 우리 국민에 대해서는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가능한 최대치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일본에는 역사적 정의에 설 것을 요구하여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의 해석을 일치시키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우리 피해자에게는 재단을 설립하여 해결하는 방식을 국민에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과거사청산기본법,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법안을 마련하여,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재단을 설치하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국내적 조치들을 완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민 눈높이 외교를 위해 ‘대일 국민외교 협의회’를 구성하여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 내고, ‘대일외교조정관’을 두어 일본과 협의하는 것과 동시에 국내 시민사회와 대화하는 등 두 수준(two level)에서의 협의와 대화를 동시에 수행해 나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런 한편 외교적 노력으로는 일본의 중재 요구를 받아들여 역제안으로 형세를 역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재 과정에서는 위안부 합의를 지렛대로 삼아 청구권협정이 식민지 지배 시기 일본의 불법적 행위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본조약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새로운 관계 설정의 필요성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악화된 한일관계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 한일관계가 이대로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동아시아 평화 없이 한반도 평화가 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악화된 한일관계에 대한 고민 없이 한반도 평화를 논할 수는 없다. 한일관계 재구축을 위해 우리 정부가 균형을 잡고 용기를 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