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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논평 No.2019-21]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의 통미배남 입장과 한국의 대응 방향

등록일 2019-06-28 조회수 7,313 저자 정성장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의 통미배남 입장과 한국의 대응 방향

 

[세종논평] No. 2019-21 (2019.06.28)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softpower@sejong.org

 

북한 외무성의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은 627일 개인 명의의 담화를 발표해 조미[북미]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권정근은 또한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고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북한 외무성은 스스로 대안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미국과의 실무협상을 통해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도 거부하며, 일방적으로 미국에게만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결코 주체적인 태도가 아니며 매우 대미 의존적인 입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권정근은 조미[북미]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북한]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남한과의 대화 거부 입장을 밝혔다. 권정근은 이어서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조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 있는 연락통로[채널]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앉아 하게 되는 것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남한에 대한 철저한 배제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처럼 미국하고만 대화하고 남한과의 대화는 거부하겠다는 권정근의 통미배남(通美排南)’ 입장은 공식적으로는 미제국주의를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동족인 남한을 외면하고 미국만을 바라보는 북한 외무성의 대미 사대주의적(事大主義的)이고 반민족적인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입장은 내부적으로 비핵화 협상 주도권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넘어가면서 나타난 대남정책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186월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개최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던 작년 2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방한 시 북미정상회담 추진을 적극 제안한 것도, 동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것도, 그리고 5월에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취소 입장을 밝혔을 때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에서 만나 제1차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추진될 수 있게 한 것도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였다.

 

뿐만 아니라 작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개최된 제1차 북미고위급회담의 결렬로 북미 관계가 냉각되었을 때 다시 북미 대화의 불씨를 살린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조미관계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김정은]와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기초하여 나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은 대화에서 빠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매우 배은망덕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남북 정상은 지난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합의했다.

 

남북 정상은 또한 9.19 평양정상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로 합의했다. 그런데 북한 외무성의 미국 담당 국장이라는 핵심 간부가 이처럼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간의 합의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무시한 것이고 김 위원장의 대외적 약속에 대한 신뢰도를 실추시킨 것이다.

 

따라서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으로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 의지가 있다면 이처럼 겉으로는 반미 입장을 보이면서 실제로는 대미 사대주의적이고 반민족적인 입장을 보이는 양봉음위(陽奉陰違: 보는 앞에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음), 면종복배(面從腹背: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하는 인사를 보다 민족주의적이고 대외 실무협상에 적극적인 인물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북한 외무성이 나아가야할 길은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청와대 및 외교부와 매우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남한의 협력을 거부하면서 북한 혼자 초강대국 미국과 외로운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태도는 얼핏 보기에는 매우 대담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북한을 외교적으로 더욱 고립시키고 대미 협상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북미 관계 정상화와 대북 제재 해제를 이끌어내고 보다 안전하고 번영하는 북한을 만들고 싶다면 대미 사대주의적인 외무성 간부들에게만 비핵화 협상을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협상팀에는 외무성뿐만 아니라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와 국제부 간부들도 참여해 앞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과도 긴밀하게 소통, 협의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도 북한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 받으려면 북한과 미국 모두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북미 합의안 초안을 국내 전문가들의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해 마련해서 북미 협상의 성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포괄적인 공정표와 합의안 초안을 마련하는 작업은 소수의 전문가나 몇몇 관료들의 힘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는 보수와 진보의 성향을 넘어서 이 분야의 권위 있는 국내 전문가들의 역량을 결집해 북한과 미국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연연해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 아니라 국내적 합의를 기초로 미국과 향후 북한 비핵화 협상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정부는 종전선언추진에 대해 국내적으로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미국과도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20184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과 종전선언추진에 합의했다. 이후 심각한 남남갈등과 한중, 북미, 한미 갈등을 초래한 사실은 북한과의 대화 이전에 국내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협의 및 소통 그리고 미국과의 합의 선행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년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결과 김 위원장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런데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 +α의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고 북한이 ‘+α의 비핵화 조치에 준비되어 있지 않아 결국 회담이 결렬되고 말았다. 이 같은 사실은 북한 비핵화 협상 방향이 한미 간에 우선적으로 큰 틀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남북대화가 이루어져야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선순환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