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 2026년 4월 2~3일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이는 2015년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 전 대통령 방한 이후 11년 만의 프랑스 대통령 방한이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이루어진 유럽 정상의 국빈 방문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성과 외교적 무게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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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시대의 개막과 남겨진 숙제 ― 일본-프랑스 정상회담과의 비교를 통해 본 제도화·사업화 과제 ― |
| 2026년 4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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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장세종연구소 부소장 | softpower@sej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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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 2026년 4월 2~3일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이는 2015년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 전 대통령 방한 이후 11년 만의 프랑스 대통령 방한이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이루어진 유럽 정상의 국빈 방문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성과 외교적 무게가 컸다.1)
이번 방한은 2025년 11월 남아공 G20 정상회의 계기로 양 정상 간 접촉에서 합의한 일정을 구체화한 것으로,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기존의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Partenariat stratégique global)’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2)
이는 경제·문화 중심의 협력 틀을 넘어 에너지, 핵심광물,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우주, 방산, 해상교통로 안보 등 전략 분야를 포괄하는 장기 협력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프랑스가 유럽의 핵심 강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격상은 한국이 유럽과의 전략적 연계를 보다 공세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외교적 기반을 확보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마크롱 대통령이 올해 G7(선진 7개국) 의장국으로서 이재명 대통령을 G7 에비앙(Évian) 정상회의에 공식 초청하고, 연내 추가 정상 접촉의 가능성까지 열어둔 점 역시 이러한 관계 격상이 일회성 이벤트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이와 관련 “140년 동안 탄탄하게 쌓인 양국의 깊은 우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새로운 140년의 기회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다졌다”고 선언하였다.3)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정확히 평가하려면 성과만이 아니라 한계까지 동시에 보아야 한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 서울에 오기 직전 도쿄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안보·원자력·경제안보 분야에서 보다 제도화된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은,4) 이번 한불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가장 유용한 비교 기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일본을 먼저 방문한 뒤 한국을 찾았다는 일정의 순서 자체가 아니라, 프랑스가 도쿄와 서울을 연쇄 방문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협력축을 일본과 한국에 동시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다만 그 결과물만 놓고 보면, 일본과 프랑스는 이미 제도화의 단계로 들어가 있는 반면 한국과 프랑스는 이제 막 그 문을 열었다는 차이도 분명히 드러났다.
본고는 ① 관계 격상의 의의 ② 안보 제도화 수준 ③ 원자력·경제안보 합의의 구체성 ④ 후속 정상외교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네 기준으로 이번 한불정상회담을 평가하고자 한다. -
1. 한불 이해관계의 수렴과 관계 격상
이재명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에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시라크 대통령이 수립한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22년 만에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하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5)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는 조약 동맹(집단방위 의무를 수반하는 법적 동맹)보다는 한 단계 낮지만, 경제·안보·기술·글로벌 어젠다를 아우르는 포괄적, 장기적, 고위급 협력 관계를 표현할 때 쓰이는 개념이다.
한국이 이 관계를 공식 수립한 사례는 2023년 한-영 런던 다우닝가 협정(공식 명칭은 “The Downing Street Accord: A United Kingdom–Republic of Korea Global Strategic Partnership”)이 최초였으며, 이번 한불 합의가 두 번째다. 다우닝가 협정은 안보·국방, 과학기술, 에너지 안보 등 전 영역의 협력을 ‘최고 수준의 전략적 야심’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적을 명시했다.
이번 한불정상회담의 전략적 배경은 복합적이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 동맹의 거래화 가능성, 러북 군사협력의 심화, 중국의 군사적 부상, 중동 불안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동시에 부상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모두 전략적 자율성 강화와 공급망 안정, 안보 협력 다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환경에 직면해 있다.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의 마크 쥘리엔(Marc Julienne) 아시아연구센터장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조건 아래에서 프랑스·일본·한국의 이해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수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6) 이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우호의 재확인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불확실성 심화 속에서 양국이 보다 높은 수준의 전략 협력으로 이동할 필요성을 공식화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엘리제궁이 밝힌 이번 방한의 목적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전략적 분야에서의 양자 협력 강화; 둘째,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한 공동 입장 조율; 셋째, G7 에비앙 정상회의 의제 사전 조율. 프랑스는 미국의 ITAR(국제무기거래규정: 미국산 군사기술 수출을 통제하는 연방 규정) 제약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민감 군사기술 협력의 잠재력이 상대적으로 크며, 한국의 중요한 전략 협력 대상국으로 평가될 수 있다.7)
이번 한불 관계 격상의 의미는 세 가지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다. ①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EU 핵심 국가로서 한국이 글로벌 다자외교 무대에서 전략적 지지 기반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② 마크롱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G7 에비앙 정상회의에 공식 초청한 사실과 맞물려 한국의 G7 외교 참여 기반이 강화되었다. ③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틀은 구체적 협력 의제들을 지속적으로 다루는 상위 프레임이 될 수 있다. 다만 외교에서 명칭 격상이 실질 격상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선언의 진정한 가치는 향후 제도화와 사업화 성패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2. 14건의 협정·MOU·협력의향서 체결과 협력 기반 확대
정상회담을 계기로 협정 3건의 개정과 11건의 MOU·협력의향서가 체결되었다.8) 문화기술협력협정(e스포츠 등 신흥 콘텐츠 분야 확장), 워킹홀리데이 협정(연령 상한 30세→35세 상향),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성격의 협정) 개정은 양국 관계의 폭과 깊이를 동시에 넓히는 장치다. 특히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개정은 단순한 상징 조치가 아니라 향후 방산 협력, 연합훈련 참여, 민감 정보 교환, 상호운용성 확대를 뒷받침할 최소한의 제도 인프라를 보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9)
경제 분야에서도 양국은 2025년 기준 약 150억 달러 수준인 양국 교역액을 2030년까지 200억 달러로 확대하고 현재 약 4만 명 수준인 양국 투자기업 고용 규모를 향후 10년간 8만 명으로 두 배 늘리겠다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관계 격상을 구체적 경제 목표와 연결하려 했다.10) AI·반도체·양자 협력 의향서와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의향서는 경제협력을 전통 통상을 넘어 경제안보 영역으로 격상시킨 조치로 평가된다.
보훈·문화유산·ODA(공적개발원조)·산림 등 분야의 협력 기반도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함께 확충되었다. 이는 양국 관계의 외연이 전략 분야를 넘어 사회·문화·개발협력으로도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원자력 협력의 진전
이번 회담의 가장 실질적인 성과는 원자력 협력 분야에서 나왔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오라노 간 MOU는 우라늄 원료 확보부터 전환·농축에 이르는 핵연료 전주기 공정 전반에서 협력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11) 오라노는 라아그(La Hague) 재처리 시설(연간 처리능력 1,700 tU)을 포함한 세계 최대 수준의 핵연료주기 역량을 보유한 프랑스 국영 기업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우라늄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 MOU는 한국의 원전 연료 공급망 안정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한수원은 오라노 외에도 원자로 설계·핵심 기기 제작 전문 기업인 프라마톰(Framatome)과 핵연료 기술 협력 MOU를, 프랑스 최대 전력공기업 EDF(프랑스전력공사)와는 전남 영광 해마 해상풍력 발전사업 공동개발 MOU를 각각 체결하였다.12) 공동성명은 사용후핵연료 관리, 4세대 원자로, 핵융합 협력으로 이어지는 중장기 비전도 담고 있다.13) 이는 단순한 자원 확보 차원을 넘어 향후 글로벌 원전 시장과 에너지 기술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열었다는 뜻이다. 다만 현재 단계의 합의는 아직 장기 공급계약이나 공동투자, 제3국 공동진출 같은 사업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원자력 협력은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이면서도, 동시에 향후 성패가 가장 분명하게 갈릴 분야라고 할 수 있다.
4. 외교안보 및 호르무즈 협력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 의제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였다.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교통로 안전이 크게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및 국제법 프레임워크 안에서 모두의 역내 평화와 안보를 보장하는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역내 국가들과 긴장 완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14) 한국과 프랑스 모두 원유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공통 이해가 이 협력 의지의 실질적 기반을 이룬다. 구체적 안보 성과로는 2026년 가을 프랑스 공군의 인도태평양 합동훈련 임무인 PEGASE(페가세)15) 에 한국이 참여하기로 한 것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개정을 통한 방위 정보 공유 강화가 있다.16)
5. 후속 정상외교의 모멘텀 확보
마크롱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을 올해 6월 15~17일 G7 에비앙 정상회의에 공식 초청했고,17) 또한 9월 7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영상산업 정상회의(Moving Image Summit)에 한국을 공동 의장국으로 초청하며 국빈 방문을 제안했다.18) 4월 서울·6월 에비앙·9월 파리로 이어지는 연내 세 차례 이상의 정상 접촉은 전례 없는 밀도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G7+ 외교 강국 실현’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이 접촉들이 G7 의장국 초청이나 문화행사 계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정상 간 친밀한 분위기와 연내 추가 회동만으로는 전략적 관계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제도화된 정례 채널 수립이 뒤따라야 한다는 과제는 이후 Ⅳ장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겠다. -
이번 한불 정상회담의 성과를 과대평가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방한 직전 도쿄에서 개최한 일본-프랑스(日佛) 정상회담 결과와의 비교가 필수적이다. 4월 1일 일본과 프랑스는 제8차 외교·국방장관 2+2 회의(7년 만의 대면)를 별도로 개최하고,19)
방위 로드맵을 채택했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고속로(高速爐, 기존 경수로보다 핵연료 효율이 높은 차세대 원자로) 개발·핵연료주기 촉진·핵융합 에너지 협력을 담은 공동선언을 채택하였으며,20)
카레마그(Caremag) 희토류 재활용·정제 공장 건설 지원을 포함한 핵심광물 협력 로드맵도 마련하였다.21)
이처럼 일불 관계가 이미 제도화의 심화 단계에 진입해 있는 데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일본은 2013년 양국 관계를 ‘예외적 파트너십(partenariat d'exception, 일반적인 전략 동반자보다 높은 수준의 정치적 신뢰와 제도화를 수반하는 관계)’으로 격상한 이후 정례 2+2, 방위 로드맵, 핵연료주기 공동선언 등 촘촘한 협력망을 착실히 구축해 왔다. 특히 2016년 아베 총리의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 이후 프랑스와의 외교를 ‘전략 외교’ 차원에서 체계화하여,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전략 협력을 이어온 결과다. 즉 일불 관계의 제도화는 10년 이상의 의도적·지속적 투자의 산물이다. 반면 한국과 프랑스는 이번에 관계 명칭을 높였고 협력 분야를 넓혔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례 협의체, 공동 로드맵, 장기 실행체계는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이 차이는 두 관계의 성격을 구분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평가는 이렇다. 한불 정상회담은 상징성과 잠재력, 협력 의제의 폭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안보 제도화와 기술 협력의 심도, 실행장치의 구체성에서는 아직 일불 관계보다 한 단계 뒤에 있다. 한국이 이 격차를 좁히려면 단발성 이벤트 외교에서 벗어나 중장기 전략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
① 정상회담과 외교안보 협력의 제도화
이번 한불 공동성명에는 연례 2+2 외교·국방 장관회의, 방산협력 로드맵, 정례 전략대화의 주기와 형식이 명시되지 않았다. 이것이 이번 회담의 가장 뚜렷한 한계다. 관계 격상은 이루어졌지만 그에 상응하는 운영 메커니즘이 없는 것이다.
정상 간 친밀한 분위기와 연내 추가 회동—에비앙 G7(6월), 파리 Moving Image Summit(9월)—만으로는 전략적 관계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 세 차례의 정상 접촉이 G7 의장국 초청이나 문화 계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이를 실질적인 제도화로 전환하는 것이 관건이다.
적어도 외교·국방 2+2 신설, 방산·우주·사이버 안보 분야의 3~5개년 협력 로드맵 수립, 연례 또는 격년 정상회담 원칙의 명문화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한불 관계는 선언의 수준을 넘어 전략적 운용의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다. 한일 관계의 ‘셔틀외교’처럼 연례 또는 격년 정상회담 원칙을 6월 G7 에비앙 정상회의나 9월 이재명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 방문 계기에 차기 공동성명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② 원자력 협력의 사업화
원자력 협력은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실질 성과였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사업화의 시험대에 오를 분야이기도 하다. 한수원–오라노 MOU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려면 장기 공급계약, 공동투자, 제3국 원전 시장 공동 진출, 사용후핵연료 관리 협력 같은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아울러 핵연료 공급망 안정화 실무협의체를 조기에 출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합의는 좋은 문구를 담은 협력 선언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한불 원자력 협력의 핵심은 프랑스의 연료주기·설계 역량과 한국의 시공·운영·사업 수행 역량을 결합해 공동이익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제는 문서가 아니라 계약과 투자, 공동 프로젝트로 옮겨가야 한다.
③ 핵추진잠수함 협력 의제의 공식화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SSN, 핵 동력으로 추진되는 잠수함) 확보와 관련한 협력 가능성이 공식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서방 국가 중 유일하게 LEU(저농축우라늄, 핵무기 제조에 사용하기 어려운 낮은 농도의 우라늄) 기반 핵추진잠수함을 운용한다. 이는 HEU(고농축우라늄)를 사용하는 미·영 잠수함과 달리 핵비확산 체제(NPT 등)와 양립 가능한 협력 모델을 제공하며, 미국의 ITAR 규제를 받지 않아 기술 이전 자율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의 최적 협력 파트너로 평가된다.22)
프랑스의 쉬프랑(Suffren)급 핵추진잠수함은 LEU 기반 운용의 실증 사례로, 한국 SSN 개발 시 기술 모델이 될 수 있다. 또한 프랑스 원자력에너지군사응용학교(EAMEA, École des Applications Militaires de l'Énergie Atomique)는 잠수함 원자력 추진 분야의 교육·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어 한국 장교 연수 협력의 유력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에서는 민간 원자력 협력은 진전된 반면, 전략 원자력 협력의 상징적 의제라고 할 수 있는 핵추진잠수함 문제는 공식 의제에서 비켜나 있었다. 차기 정상회담에서는 SSN 협력을 공식 의제로 설정하고, EAMEA 연수, 핵연료 전주기 기술 협력 심화, LEU 기반 추진 체계 정책 대화 같은 간접적·점진적 접근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미 협력 경로와 별개로, 프랑스와의 협력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열어두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④ 경제안보 협력의 실행기구 구축
핵심광물,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 분야에서 협력 의향서가 체결된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이를 실제 성과로 전환할 정부 간 실행기구나 공동 작업반이 없다는 점은 분명한 약점이다. 일본과 프랑스가 핵심광물 공급망 로드맵과 Caremag 관련 협력처럼 보다 측정 가능한 결과물을 제시한 것과 달리, 한불 경제안보 협력은 아직 선언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향후에는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로드맵을 보다 구체화하고, AI·반도체·양자 분야의 공동연구 작업반 또는 정부 간 실행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2030년 교역 200억 달러 목표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분야별 이행 일정과 정기 점검 메커니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이후 올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지만, 일본은 네 번째로 방문했다. 이 같은 차이는 한국이 그동안 미국·중국·일본 등 주변 4강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일본은 유럽의 중강국(中强國)23)
들과 꾸준하게 전략적 대화와 협력을 축적해 온 결과다. 한국이 대유럽 및 중강국 외교에서 일본보다 뒤처져 있는 현실이 이 수치에 압축되어 있다.
이번 한불 정상회담은 한불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라는 새로운 틀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분명한 성과를 거두었다. 원자력·경제안보·문화·인적교류 분야에서 협력의 외연도 의미 있게 넓어졌다. 그러나 일본-프랑스 관계와 비교하면, 한불 관계는 아직 안보 제도화, 원자력 협력의 사업화, 경제안보 협력의 실행체계 구축이라는 과제 앞에 서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추가적인 수사나 관계 명칭의 반복이 아니라, 정상회담 정례화, 2+2 체제, 원자력 공동사업, 핵심광물 협력 실행기구, 그리고 핵추진잠수함 협력이라는 민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전략 의제를 단계적으로 제도화하는 일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각각 인도태평양과 유럽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중강국이다. 미국의 확장억제 약화와 다층적 안보 위기가 교차하는 현 국제정세에서, 중강국 간 전략적 연대는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한국이 이제라도 전략적 사고를 갖고 확장억제 불확실성 시대에 한국․일본․프랑스․영국․독일(캐나다와 호주, 이탈리아 등으로의 확대도 가능)이 참여하는 중강국 5개국(MP5) 안보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주도한다면, 대 중강국 외교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점차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24)
이번 회담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그러나 한불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시대의 진정한 성패는 이제부터 무엇을 제도화하고, 무엇을 사업화하며, 어디까지 전략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Ⅰ. 성과와 한계가 공존하는 출발점
Ⅱ. 이번 한불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
Ⅲ. 일본-프랑스 정상회담과의 비교: 왜 한불 관계는 아직 ‘개막’ 단계인가?
Ⅳ. 남겨진 숙제
Ⅴ. 결론
1) 청와대, “한-프랑스 정상회담 결과 관련 강유정 수석대변인 서면브리핑,”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4.3. 올해 1월 17일~19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방한은 ‘국빈 방문’이 아니라 ‘공식 방문(official visit)’으로 분류된다.
2) 정성장, “한불 수교 140주년과 중강국(中强國) 협력의 새로운 설계,” 『세종포커스』, 2026.3.26.
3) “4/3(금) 한-프랑스 공동언론발표문,” 2026.4.3. https://www.president.go.kr/cms/board/boardView.do?MENU_CD=puvIc0NF&CONTENTS_CD=vqNUjDNc&BBS_CD=4ctKz7GJ&pageNo=1 (검색일: 2026.4.5.).
4) 경수현, “일·프랑스 정상회담…공급망·원전 협력 방침 확인,” 『연합뉴스』, 2026.4.1.
5) “대한민국 대통령과 프랑스공화국 대통령 간 공동성명,” 2026.04.03., https://www.president.go.kr/cms/board/boardView.do?MENU_CD=NQo0Qlts&CONTENTS_CD=vqNUjDNc&BBS_CD=DU6LJ2gY&pageNo=1 (검색일: 2026.4.5.); Élysée, “Déclaration conjointe du Président de la République française et du Président de la République de Corée,” 2026.4.3., https://www.elysee.fr/emmanuel-macron/2026/04/03/declaration-conjointe (검색일: 2026.4.5.)
6) Marc Julienne, “Emmanuel Macron in Japan and South Korea: A Historic Opportunity for Euro-Asian Rapprochement,” IFRI Editorials, April 2, 2026, https://www.ifri.org/en/editorials/emmanuel-macron-japan-and-south-korea-historic-opportunity-euro-asian-rapprochement (검색일: 2026.4.5)
7) 정성장, “한불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한 ‘빅딜’ 전략: 핵추진잠수함·핵연료주기·방산 협력의 교환 구조와 추진 로드맵,” 『세종포커스』, 2026.1.21.
8) 김경록, “한-프 정상회담 계기 성과 문건 14건…한수원, 오라노·프라마톰과 MOU,” 『뉴시스』, 2026.4.3. 참조. MOU(양해각서·업무협약)와 협력의향서(LOI·Letter of Intent) 모두 비법적 구속력(Non-binding) 문서로서 “본계약 이전 단계에서 협력 의지를 문서화한다”는 점은 같지만, 일반적으로는 MOU가 더 포괄·구체적이고, 협력의향서는 더 간단·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9) 한·불 군사정보(군사비밀)보호협정은 2000년 3월, 군사·군비협력 확대와 방산·고속철(TGV) 등 대형 사업을 포함한 양국 전략 협력 심화 속에서, 군사비밀 정보를 상호 안전하게 교환·보호하기 위한 법적 틀을 만들기 위해 체결되었다. “한.프랑스 군사비밀보호협정 서명,” 외교부 보도자료 (2000.3.6.).
10) 박기석, “한·불, 원전·핵심광물 협력 강화… 워킹홀리데이 연령 상향,” 『서울신문』, 2026.4.3.
11) Orano, “KHNP and Orano Sign a Memorandum of Understanding for Nuclear Fuel Cooperation,” 2026.4.3., https://www.orano.group/en/news/news-group/2026/april/khnp-and-orano-sign-a-memorandum-of-understanding-for-nuclear-fuel-cooperation (검색일: 2026.4.5.).
12) “한-프 정상, 원자력 협력에 손 맞잡았다…호르무즈 봉쇄 공동 대응도,” 『한국일보』, 2026.4.3.
13) “대한민국 대통령과 프랑스공화국 대통령 간 공동성명,” 2026.4.3.
14) “4/3(금) 한-프랑스 공동언론발표문,” 2026.4.3.
15) 한불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나온 PEGASE는 프랑스 공군·우주군(Armée de l’Air et de l’Espace)의 장거리 공중전개 임무인 “미션 페가세(Mission PÉGASE)”를 뜻한다. 공동성명은 국방 분야 기밀정보보호협정 개정과 함께, 2026년 가을 이 임무의 한국 기항(escale)을 계획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16) 청와대, “한-프랑스 정상회담 결과 관련 강유정 수석대변인 서면브리핑.”
17) 청와대, “한-프랑스 정상회담 결과 관련 강유정 수석대변인 서면브리핑.”
18) “4/3(금) 한-프랑스 공동언론발표문,” 2026.4.3.
19)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Eighth Japan-France Foreign and Defense Ministers' Meeting ("2+2"),” 2026.4.1., https://www.globalsecurity.org/wmd/library/news/japan/2026/japan-260401-jp-mofa02.htm (검색일: 2026.4.5.).
20)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Japan-France Summit Meeting and Working Dinner,” 2026.4.1., https://www.mofa.go.jp/erp/erp_1/fr/pageite_000001_01563.html (검색일: 2026.4.5.).
21) Prime Minister's Office of Japan, “Japan-France Summit Meeting and Working Dinner (Summary),” 2026.4.1., https://japan.kantei.go.jp/105/diplomatic/202604/01france.html (검색일: 2026.4.5.). ‘Caremag 정제공장’은 프랑스 남서부 라크(Lacq) 산업단지에 건설 중인 Caremag의 희토류 재활용·정제 공장을 가리킨다. 이 시설은 폐자석 2,000톤과 광물 농축물 5,000톤을 연간 처리해 고순도 희토류 산화물을 생산하는 프로젝트다. 유럽 최초의 대규모 희토류 재활용 시설이자 서방의 핵심 중희토류 정제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22) 정성장, “한국-프랑스 핵추진잠수함 협력 전략과 로드맵 — 저농축우라늄 기반 함정통합과 상호 호혜적 파트너십 모델 —,” 『세종포커스』, 2026.2.10. 참조.
23) 본고는 ‘Middle Power’를 기존의 ‘중견국(中堅國)’이라는 용어 대신 ‘중강국(中强國)’으로 번역한다. ‘중견국’이라는 개념은 ‘기둥·버팀목’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역할·책임’에 초점이 있는 규범적 성격이 강하다. 반면, ‘중강국’이라는 개념은 초강대국(超强大國)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분명히 강국(强國)의 반열에 있는 중간 규모 국가의 실질적 역량과 전략적 위상을 보다 정확히 반영한다.
24) 정성장, “포스트–확장억제 시대의 새로운 안보 아키텍처 — 한·일·프·영·독 ‘중강국 5개국(MP5) 안보협의체’ 구축 구상 —,” 『세종포커스』, 2026.2.24. 참조.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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