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방미와 스톡홀름 남·북·미 3자협의 평가
홍 현 익(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
hyunik@sejong.org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정상회담 개최 희망 의사를 표명하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정은의 친서를 받았다고 공개하면서 연속적으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기대한다고 표명한 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전부장이 김정은의 특사로 워싱턴 D.C.로 직항하여 1월 18일 폼페이오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을 연달아 면담했다. 그 결과 백악관은 북·미 정상회담의 2월말 개최를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과의 만남은 믿을 수 없을만큼 좋았다”면서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많은 진전을 이루었고” 정상회담 개최국도 한 나라로 결정되었는데, 단지 발표는 미루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영철 부위원장의 워싱턴 북·미 회동에 배석했던 미국의 북핵 협상대표인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스웨덴으로 직행해 북한의 최선희 부상 및 한국 외교부 이도훈 평화교섭본부장과 2박3일 합숙 협상을 심도깊게 진행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영철의 방미를 통해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졌고 스톡홀름 협상에서 추가적인 진전이 도출됐다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본고는 작년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간 협상 전개과정과 미국의 대북 전략기조 변화를 살펴보고, 김영철의 방미와 스톡홀름 남·북·미 협상에서 논의된 2월말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예상의제들을 검토하면서 북·미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전망한 뒤, 한국의 역할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
미 행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의 선 비핵화를 주장해왔다. 오바마 대통령 같은 진보정치인도 ‘전략적 인내’라는 선 비핵화를 주장해 북한은 8년간 큰 걱정없이 핵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받아들인 것은 문재인 정부의 주선으로 성사된 작년 6월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에서였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미국인 억류자 3인을 돌려보냈고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대가없이 붕락시켰으며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우려하는 동창리 장거리미사일발사장의 해체작업을 진행하였을 뿐 아니라 미군 유해 55구까지 송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실시만 유예했을 뿐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북·미관계 정상화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초기단계 조치로서의 연락대표부 설치나 관계 개선 협상, 그리고 종전선언 등에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7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시 김정은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미국의 일방적인 비핵화 요구에 대해 북한 당국은 “강도같은 요구”라고 비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9월 평양을 방문해 남북간에 종전선언을 사실상 넘어 긴장 완화와 평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남북군사합의서를 체결하고 평양선언을 통해 동창리발사장에 대한 국제 참관 하 해체와 미국의 상응조치와 병행해 북한 핵시설의 70% 이상으로 추정되는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용의를 얻어냈다. 따라서 이후 북·미 협상은 미국의 상응조치 여부와 연계되게 되었다.
남북관계 개선을 디딤돌 삼아 폼페이오 장관이 10월 초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지만 미국의 입장에 변화가 없자 김영철 통전부장은 베이징까지 갔다가 11월 8일 예정된 미국 방문을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이후 북한은 미국의 실무 및 고위급 협상을 회피했고 북·미 양측간 기싸움 내지 줄다리기가 전개되었다. 그런데 북한보다 미국의 입장이 탄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11월 중순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었던 북한의 핵 신고를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유연성을 보였다. 12월 초에는 대북 강경파의 행동대장인 존 볼턴 안보보좌관이 “북한의 비핵화에 성과가 있으면 대북 제재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종전에 “북한의 완전한 변화가 있어야만 제재에 대해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상당한 변화를 보인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금년 신년사를 통해 다시 한번 한반도 정세 주도권 행사를 시도했다. 남북 관계 개선 용의는 물론이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에 준비돼 있음을 설파한 뒤 한반도 평화체제와 완전한 비핵화를 동시 진행하자는 용의를 표명하고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단지 미국이 일방적인 비핵화만을 압박하여 북한의 자주권을 무시한다면 부득이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월 3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이 짧은 기간 내에 만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며칠 뒤 김 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북·중 우호협력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길이 핵과 미사일 도발은 아닐지 모르지만 북·중 관계 강화를 통한 체제 유지일 수 있음을 과시했다.
이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1일 이집트에서 가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국민에 대한 위험을 계속 줄일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고 미국민의 안전이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으며, 18일 김영철을 만나기 직전에 한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미국을 위협했던 북한 핵·미사일 시험이 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그 위험을 줄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확장 능력을 줄이길 원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주장해왔던 완전한 비핵화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FFVD) 대신 핵과 미사일 동결이 이번 회담의 합의사항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와 성공을 위해 상당한 전략적 유연성을 과시한 셈이다.
어쨌든 북·미 양측 지도자들이 상호간의 신뢰와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연속적으로 확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친서 교환과 협상에서의 진전에 만족을 표명하고 있고 미국의 대북 협상 태도에도 유연성이 관찰되므로 2월말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일정 수준의 합의도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합의 예상
2월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몇 가지 합의는 순조롭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과 미국이 이미 언급했거나 시행을 예고한 사항들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풍계리 핵실험장 붕락이 과연 실효적으로 진행되었느냐는 의문이 서방에서 제기된 데 대해 북한측은 이미 국제 검증 수용 의사를 밝혀왔다. 동창리 장거리미사일발사장 해체작업도 국제 검증 하에 완료할 수 있다고 문대통령과의 평양선언에서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들에 대한 행동 계획이 발표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도 북한이 불법 입국한 미국인을 억류하지 않고 돌려보낸 바 있으므로 미국인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 인도주의적인 지원은 애초부터 이를 비핵화 등 정치문제와 연계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 행정부의 기존 방침이므로 발표문에 넣지 않더라도 재개 의사를 전할 수 있다.
여타 사안들은 협상을 통한 합의가 필요하다. 먼저 미국이 신고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에서 해제했으므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의 전모를 밝히는 목록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폐기 의사를 밝힌 영변 핵 시설과 장거리미사일에 대해서는 목록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미 작년 1차 정상회담에서 합의되었어야 할 부분이지만 이제까지 방기되어온 북한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 가동에 대해 이제라도 중단과 동결이 약속되어야 할 것이다. 단지 이를 위한 신고나 사찰 문제는 합의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신고는 건너뛰고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 뒤 검증과 사찰을 받겠다는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미사일에 대해서는 미국이 작년 5월 볼턴 보좌관이 말했듯이 적어도 장거리미사일의 일부를 미국으로 가져가기를 바랄 것이지만,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의 원천기술이 노출되므로 이전을 거부할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차선책으로 중국이나 러시아로의 이전을 요구할 수 있지만 북한은 주권문제라며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미국 참관단 앞에서 북한이 자체 해체한 뒤 전문가 감시 하에 보관하는 정도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단지 중·단거리미사일은 사실 북·미 협상보다는 남북 회담 또는 북·일 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대가로 미국이 상응조치로 무엇을 줄 수 있느냐도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북한은 최우선적으로 대북 제재의 완화나 면제, 또는 해제를 바라고 있는데, 미국의 제재 뿐 아니라 유엔안보리의 제재도 있으므로 복잡한 사안이다. 따라서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미국이 유엔안보리 제재의 단계별 부분 해제에 노력하는 동시에 미 행정부가 의회의 동의 없이도 할 수 있는 남북 경협에 대한 면제 등을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및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 착수 등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1월 22일 다보스포럼에서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땐 민간기업들이 진출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연관해 생각하면, 대북 투자를 위한 충분한 사전 검토와 준비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함을 알려준다.
북한의 또 다른 요구는 1차 북·미 정상회담 때 합의했던 북·미간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한 북·미협상 개시 또는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그리고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4자회담 등 국제회담의 개시나 종전선언 채택 등이 될 수 있다.
단지 상당한 수준의 합의가 나오더라도 일단 북한 핵의 전면적인 신고나 완전한 비핵화 절차가 합의되기는 어려우므로 한국과 미국에서 합의가 만족스럽지 않고 북한 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상당하다. 따라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문에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과 함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양측이 추구하는 최종목표라는 점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역할
북·미 양측 지도자들이 상호 신뢰와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고 있지만 아직 실무회담에 가시적인 큰 진전이 확인된 바 없고 미국내 전문가들과 언론 및 의회의 대북 불신과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 있으므로 회담 개최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스톡홀름 남북·미 3자협상에 참여해 북한 및 미국측과 양자 및 3자회담을 진행하면서 북·미간 이견차 해소와 중재 역할을 수행했듯이 가능하다면 초반부터 북·미 협상에 개입해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양측간 합의 도출을 지원해야 한다.
만약 작년 5월처럼 북·미간 견해차가 증폭돼 정상회담 개최 자체가 위기에 빠진다면 이를 돌파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 개최까지 검토하고 필요시 신속히 준비하고 개최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과의 공식 및 비공식 채널을 총동원해야 한다. 먼저 북한에게는 비록 미국과의 협상에서 완전히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북한이 반 발짝 양보한다면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가 가능하고 철도 및 도로 연결 및 현대화, 가스관 사업 등 대규모의 호혜적인 경협이 가능해 우리 민족 전체가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미국에게는 국제 대북 제재가 북한을 상당히 압박하고는 있지만 조만간 굴복시킬 정도는 아니고 내년이면 미국도 대선에 휩싸이게 되어 자칫 북핵문제 해결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미국도 상응조치에 융통성을 보여 이번에 비핵화에 큰 진전을 이루자고 설득해야 한다. Snap-back 등 일단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해주고 북한이 비핵화에 불성실하게 나오면 다시 강화하는 탄력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설득해야 한다. 미 행정부가 북한에게 적극적인 유인책을 구사하기 어렵다면 우리 정부와 민간이 기꺼이 경협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로 유도하겠다고 호소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단행될 김정은 위원장의 방한이 남남갈등을 유발하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남북한 주민들간 불신의 근원을 제거하고 우리의 독자적인 대북제재의 동기를 치유하며 나아가 남북간 경협을 진흥하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사전에 빈틈없이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