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김정은 세 차례 회담이 시사하는 북한의 미래
이성현(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민현종(서울대 국제대학원)
시진핑 국가주석은 3월부터 6월 사이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무려 세 차례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접견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난 꼴이다. 이는 그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한 것과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러시아와 일본은 현재까지 한 번도 북한과 정상회담을 갖지 못했다. 러시아는 김정은을 공식적으로 초청했고, 일본도 가을을 목표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그로 인해 중국은 북한 정세에 관련해 다른 지정학적인 주요 이해관계국들을 ‘앞질렀다’는 느낌에 의기양양해 하고 있는 모습도 감지된다. 또한 중국이 소외될 것이라는 소위 ‘차이나 패싱’에 대한 논란도 이번에 효과적으로 종식시키는 셈이 되었다. “우리는 세 번 만났는데, 한국과 미국은 몇 번 만났는가?”라는 한 중국학자의 반문은 북한 지도자와 만난 횟수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판단하는 중국의 셈법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중국과 북한은 얼마나 가까워져 왔는가? 표면적으로는 매우 가까워 보인다.
지난 6월 19일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당시 시진핑 주석은 ‘변하지 않는 세 가지’ (三個不變)를 약속하였다. 북중관계의 발전에 대한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의 지지, 북한주민들에 대한 중국인민들의 깊은 우정(友好情誼), 그리고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였다.
이 중 앞의 두 가지는 외교적 수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목은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사회주의인 북한’(社會主義朝鮮) 이라 칭한 것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지칭하는 표현에서 유사한 표현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다롄에서의 시진핑-김정은 2차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양국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中朝同为社会主义国家) 상호간의 중대한 전략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신화통신사 2018.05.08.). 좀더 거슬러 올라가 3월에 가진 제1차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사회주의’란 단어를 딱 한 번 썼지만, 시진핑 주석은 7번 쓴 것이 눈에 띈다 (중국외교부 2018.03.28.). 북한 노동당의 방중특사들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은 “양국의 사회주의 건설사업이 더욱 더 잘 되기를 바란다 (推动两国社会主义建设事业取得新的更大发展)”고 했다 (중국외교부 2018.05.16). 시진핑은 일관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투철한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2017년 10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習斤平新時代中國特色社會主義思想)을 선포하였다. 특히 서구의 발전 모델에 공들여 저항한 중국 지도부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상징되는 서구의 몰락을 통해 중국식 발전 경로에 대한 자신감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올해 3월 시진핑 주석은 칼 마르크스의 정치이론을 고수한다는 중국공산당의 결정이 ‘백번 옳다’(完全正確)고 하였다 (신화통신사 2018.05.04.).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지원해 풍요로운 민주국가로 만든 것처럼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한을 ‘한국과 같은 수준의’(on par with South Korea) 번영을 누리게 해줄 비핵화 해법을 수용하도록 재촉하였다. 미국의 해외 개입 외교 중 한국은 ‘민주화’(democratic transformation)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한국은 특히 민주화와 동시에 경제 번영까지 이루었기 때문에 미국이 외교 성공의 ‘모범 사례’(poster child)로 자주 인용한다.
자연스레 북한의 미래에 대한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과 중국 모두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미래와 정치체제에 대한 각각의 견해가 완전히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시진핑은 확고하다. 그는 북한이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 남기를 원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시진핑이 어떠한 조언을 주었을 지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이는 이후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즉,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 있어 남북한 의견이 엇갈리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의 편을 들 가능성이 자본주의인 남한의 편을 들 가능성보다 큼을 시사할 수 있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을 접견하면서 중국과 북한이 서로를 ‘한 식구처럼’ 도와왔다면서 북한이 중국과 ‘한 참모부’ 안에서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하였다. 마치 사회주의를 엄호하고 한반도의 또 다른 미래를 예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표현은 매우 흥미롭다. 6.25전쟁 당시 미국과 중국 간의 전투가 맹렬했을 때, 중국군과 북한군은 함께 ‘조중연합사령부’를 창설하였다. 연구자에게 이번에 김정은이 쓴 ‘한 참모부’란 표현이 심상치 않게 들리는 이유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북중관계의 ‘진화과정’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추측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 간 우리는 중국과 북한이 전략을 급격히 바꿔 서로 홀대하던 관계에서 상호간의 유대와 친밀감을 강화시켰으며 이를 통한 양자관계의 급격한 ‘변화과정’을 목격해왔다. 중국과 북한이 서로간의 동맹관계를 ‘피로 맺어진 관계’(血凝成的友誼)로 지칭하던 냉전의 한 때를 상기시킨다. 실제로 시진핑과 김정은은 서로를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관계’로 불렀다.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북중관계를 한미동맹관계 수준으로 향상시켜 이를 북한의 개혁개방에서 닥칠 외부 자본주의 유입에 대한 ‘보호막’으로 쓰려고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미래 모델은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한국과 같은 풍족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중국과 같은 풍족한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은 트럼프 행정부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한 가지 잠정적인 질문을 던진 셈이다. 즉, 우리는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같은 민족인 한국’보다 ‘같은 체제인 중국’과 더 가까워진다고 하면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가? 군사적 긴장이 완화된다 하더라도 북한의 사회, 정치적 자유, 정치범 등의 인권문제가 이슈가 될 경우 한국 정부는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의 문제도 나올 수 있다.
최근 몇 달간 계속된 평화무드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상황이 통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말 그대로 통일은 정치체제의 일원화를 뜻한다. 하지만 북한이 남한체제 주도하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은 둘째쳐도 중국이 한반도 북부의 ‘사회주의체제’를 선호한다는 것은 이런 희망을 구체화함에 있어서 닥칠 문제들에 대한 선제적 고민을 해봄이 필요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