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부재의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북핵 역할에 대한 제언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민현종 (서울대 국제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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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북핵 문제는 리더십 부재의 국제사회 (‘G-Zero World’)에서 중국이 새로운 리더의 모습을 제시할 수 있는, 창조적인 외교를 펼칠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외교의 특징에 대한 기존 통념은 중국이 외교 사안을 ‘주도’(proactive)하기보다는 발생한 사안에 대해 ‘반응’(reactive)하는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북핵 외교에서도 자주 지적되어왔던 부분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이 적극적인 해결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제사회가 중국 외교의 리더십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시진핑 정부 들어서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한다’(奋发有为)는 외교정책 기조를 중국이 ‘주변국외교’(周边外交)에서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중국 내부의 생각(李敏捷, 中国国际问题研究院, 2017.10.20.)과도 부합하는 부분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다롄(大連)에서 만난 후 태도가 돌변했다며 소위 ‘시진핑 배후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북미회담 속도를 ‘늦추라’ (slow down)고 종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2018.5.24.). 이렇듯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과정에서 ‘훼방꾼’으로 비춰지는 것은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경계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는 또한 ‘책임 있는 대국’ (负责人的大国)을 줄곧 표방해온 중국의 국제사회 이미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좀 더 큰 틀에서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제사회는 리더십 부재 현상을 겪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이 방기하고 있는 국제사회 리더십 공백을 과연 중국이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해 다들 궁금해 하고 있다. 중국에게 있어 북핵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새로운 리더십 역량을 과시하고 구성원들의 환심을 사는데 있어 기회가 될 수 있다.
미중 경쟁 심화 국면에서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성공적으로 유인해 중국의 영향권에서 끌어낸 뒤 북·미가 함께 소위 ‘팀 아메리카’ (Team America)를 결성해 중국을 포위하는 새로운 전략적 공조가 형성될까 우려한다. 한마디로 ‘북한의 친미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중국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와 김정은 정상회담에서 혹시 자국에 불리한 ‘이면 합의’가 있었는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북한의 비핵화의 결과가 앞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것이 중국의 이익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불확실성을 느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북미 협상과정에서 ‘속도조절’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의 북미 협상 교착 장기화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는데서도 알 수 있듯, 만약 협상이 실패하고 북한의 비핵화가 여의치 않을 때 동아시아의 역내안보는 한 번 더 위기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중국의 안보환경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중국의 한 학자도 최근 회의에서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면 과거의 ‘악순환’으로 돌아가고, 미국의 대북 ‘군사 옵션’도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즉, 북미간 북핵 협상이 너무 빨리 진행되어도 중국은 불안하고, 비핵화가 더디게 진행될 때에도 중국에게 닥칠 수 있는 안보 불확실성이 있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중국에게 더욱 안 좋은 것은 북한의 비핵화가 지연되며 북미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심지어 중국의 ‘문지방’이라고 하는 한반도에서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fire and fury)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20년까지를 중국의 내실을 키워 중산층 사회 (小康社會)를 만드는 ‘전략적 기회의 시기’ (戰略機遇期)로 정했으며, 이 기간 동안 중국 주변에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지를 원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의 이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과 중국은 넓은 안보이익 교집합 공간을 공유한다.
한편 주변국들은 현재 격화되는 미중간의 세력경쟁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질서를 새로 세우는 믿음직스런 리더는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택해야 할 최선의 전략은 현 북미 협상과정을 더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핵문제 해결에 중국이 적극 기여하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중국의 부상’에 대해 국제사회가 가지고 있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에도 일조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중국은 기존의 해결 방안이 아닌 중국이 생각하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는 시진핑 시대 중국 외교가 강조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중국 방안’ (中國方案)’을 제시한다는 기조와 부합한다. 만약 중국의 역할과 기여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면, 주변국들의 중국에 대한 지지는 자연스럽게 상승할 것이고, 시진핑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带一路) 프로젝트 등 중국 주도의 국제적 사업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6자회담의 재개를 향한 중국의 외로운 메아리에도 주변국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사드(THAAD)를 철수하라는 중국의 요구도 타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수차례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할 이유가 없다고 표방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 리더십의 특징은 ‘팀’을 이룬다는데 있다. 미국에게는 친구가 많고, 동맹국들도 많다. 중국도 국제사회에서 친구가 필요하다. 유교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면 문화와 전통이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서양인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중국-한반도는 지경학적 운명 공동체”라는 중국학자의 견해처럼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신동아 2018.07.29) 한중은 한반도의 미래 평화 상황에 따른 경제이익의 교집합 또한 넓혀나갈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은 사드 보복때문에 생긴 한국인들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한국인들의 호감을 사는데도 어필할 수 있다. 또한 아태 지역의 다른 국가들도 중국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이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면서 자기들이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참고’로 쓸 수 있다 (동남아 학자와의 인터뷰 2018.6).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북핵 문제에서 중국이 지연/관망전략을 쓰기 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기여를 통해 북핵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 이 과정에서 한국과 긴밀히 소통/협력하고 중국의 리더십에 대한 한국의 존중을 얻는 것과, 최종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좋은 국제적 이미지를 형성함으로써 중국이 희망하는 역내 질서의 형성을 도모하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이는 시진핑이 주창하는 ‘중국몽’(中國夢)이 중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하고, 아시아를 아우르는 더 큰 꿈으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