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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정책 2022-4월호 제22호] 윤석열 정부 외교정책의 과제: 신남방정책을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등록일 2022-04-04 조회수 4,039

윤석열 정부 외교정책의 과제: 신남방정책을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최윤정(세종연구소 신남방협력연구센터장)

yjchoi@sejong.org

 

 

한국은 201711월 아세안과 인도를 대상으로 하는 신남방정책을 발표하고 지난 4년 반 동안 수행해왔다. 세계는 신냉전으로 치달으며 진영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무역기술사회문화 등 전 영역이 안보와 연계되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수많은 도전과제를 안고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신남방정책 또는 그에 준하는 지역전략이 필요한지부터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정책의 발전 방향에 대한 담론과 실천방안을 속도감 있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1. 한국 외교에서 신남방정책의 좌표

 

문재인 정부가 201711월 인도네시아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신남방정책은 아세안 및 인도와의 협력 관계를 주변 4강 수준으로 높여 한국의 외교, 통상의 레버리지를 강화하기 위한 대외정책이다. 신남방정책을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2017년 한국의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은 시장다각화를 위한 경제파트너로서 아세안(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10개국과 인도를 선택하였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 아세안의 3대 공동체 목표(3C)를 결합하여 신남방정책의 비전과 3대 축(Pillar)을 수립하였다.

신남방정책은 한국 외교정책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역대 정권은 한국의 국가 위상과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외교전략의 지평을 넓혀왔다. 노태우 정부가 시작한 북방정책은 한국이 러시아(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고 북방으로 경제영토를 넓히는 출발점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의 주춧돌을 놓았고,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과 연대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중심국가론을 통해 유럽연합과 같은 평화와 공생의 질서 구축을 지향하는 동북아 공동체건설을 도모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신아시아구상을 통해 4강에 치우쳐있던 한국 외교의 외연을 아시아권내 모든 국가로 확대하여 아시아와의 관계를 진일보시키기 위한 외교를 펼쳤으며,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대륙을 경제공동체로 발전시키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추진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동북아를 넘어선 외교 다변화를 지향하는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달성을 목표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실현을 위한 번영의 축인 동시에 평화의 축으로서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추진하였다.

그간 번영의 축으로서의 신남방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과 신남방 국가와의 교역규모는 2014~2016년까지 감소 추세였으나 2017년을 기점으로 반등하여 코로나19로 교역에 타격을 입은 2020년을 제외하면 1,500억 달러 규모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했다. 아세안은 한국의 2위 무역 및 해외투자 대상국이 되었고, 비자제도 개선을 비롯한 교류 활성화 조치에 힘입어 한국과 아세안 상호 방문객은 2018년 최초로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안보분야에서도 국방협력 양해각서(미얀마, 캄보디아, 브루나이), 군수지원협정(베트남), 군사정보보호협정(태국) 등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책의 3대 축인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 중에서 평화, 즉 정치안보 협력에 대한 한국정부의 의지가 미약한 점, 지역 질서에 대한 비전이 결여되어 있는 점 등은 정책의 대표적인 한계로 지적되었다. 이같은 한계는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아세안과 인도가 미중 패권경쟁의 무대가 되면서 역내 안보 의제의 비중이 높아지고 다른 의제와의 연결성도 강화되는 추세다. 무엇보다도 아세안과 인도를 인도-태평양(Indo-Pacific, 이하 인도태평양 또는 인태)이라는 지정학적 전략 단위 안에서 자리매김하는 통합적인 전략이 필요해졌다. 이미 신남방정책의 대상지역인 아세안과 인도가 자체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고, 미국을 비롯한 외부 행위자들은 인도태평양 지역 차원의 전략적 관점에서 이 지역에 대한 접근을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대내외 변화와 수요를 섬세하게 반영한 외교전략으로서 신남방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수립의 두 가지 고려 요인

 

신남방정책의 대상 지역인 아세안과 인도는 경제 성장, 안보 강화, 사회 발전이라는 내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미중이 촉발한 진영간의 대립과 경쟁이라는 외부 요인에 대응하기 위하여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같은 신남방정책 대상지역의 변화를 고려하는 한편 인도태평양이라는 새로운 지정학적 패러다임 속에서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다.

먼저, 신남방지역의 새로운 협력 수요와 과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신남방지역은 미중 경쟁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성장동력 확보가 시급하다. 무역분쟁이 심화되면서 미국, 일본 등 선진국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탈중국이 본격화됨에 따라 아세안과 인도는 중국의 대체 생산기지로서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같은 선발 산업국가와의 협력을 통한 산업화 실현과 글로벌 공급망 참여가 필수이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더욱 정교하게 추진하고 있는 경제안보전략은 산업화에 필요한 시장, 기술, 자금 등을 무기화하여 안보와 연계시키는 것이 특징으로, ‘안보의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체제를 만들고 있다. 또한 아세안과 인도에서는 코로나19가 촉발한 의료체계 붕괴가 가시화되면서 각종 감염병과 바이러스 대응체계 구축이 선결과제로 떠올랐는데, 미국은 미4자 안보협의체인 쿼드 작업반을 통해 관여하는 등 인도주의적 개입에도 안보 논리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미중간 패권적 다툼이 야기시킨 신남방지역의 치열한 전략 경쟁에 대한 고려도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은 201711월 시진핑 정부 들어 신시대(新時代) 진입과 중국 특색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을 목표로 천명하였다. 외교정책으로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를 설정하는 한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미국을 배제한 아시아 질서 수립에 착수했는데, 여기서 아세안은 핵심 지역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적극적인 대중국 봉쇄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미국은 일본, 호주와 함께 기존에 포용적인 아시아-태평양 지역주의를 폐쇄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주의로 변경한데 이어, 2018년에는 인도까지 포함한 ‘4자 안보협의체(Quad)’를 결성했다. 미국은 아시아와 유럽의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중국의 패권적 도전을 좌절시키고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유지 구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동맹국 및 우호국과의 안보 네트워크 구축을 도모하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서 중심 공간은 아세안과 인도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이다.

이에 아세안은 미국 주도 지역전략에 조응하면서도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 유지와 실질적 혜택이 있는 협력을 강조하고, 인도는 중국 견제 필요에 의해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자국 주도의 외교 및 통상전략을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견지하고 있다. 럽은 국별로 입장이 조금씩 다르나 중국을 배제하기 보다는 관리하여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두며, 그 방식으로 규칙과 규범을 강조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나아가 미국, 유럽, 인도, 아세안 등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주요 행위자들은 한국 인태전략과의 연계 협력을 모색해오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은 신남방정책의 틀에서 협력을 논의해왔으나 지역전략에 대한 비전과 목적상의 차이로 협력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대내외 여건을 감안할 때, 신남방정책을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외교정책을 수립해야 할 필요충분조건은 충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수립에 대한 정책 제언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한국은 신남방정책을 이행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교훈을 거름삼아 아세안, 인도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미국을 위시하여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연결성을 높임으로써 국익을 극대화하는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같은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수립에 필요한 원칙을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수요 우선의 원칙을 세우고 변화하는 역내 국가의 협력 수요와 한국의 비교우위를 고려한 전략 수립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협력의 1차적 대상은 이 지역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역내 제조업 육성, 공급망 참여, 중소기업 역량 강화, 인프라 건설, 통상협정 및 협의체 참여와 활용 지원, 디지털 전환 및 환경기후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 등을 우선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인도태평양 시대를 특징짓는 안보 편재(遍在)성의 원칙에 기반하여 모든 분야에서 안보적 함의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원이 안보적 고려에서 발생하였으며, 향후 이는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태지역이 겪고 있는 보건의료, 환경, , 식량, 해양 및 사이버 안보 등 다방면의 위협에 대한 공동의 대응 역시 사회안보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인도태평양 전략은 명확한 협력의 2차적 대상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에협력 확장성의 원칙을 세우고 한국이 역내외 국가를 아우르며 수행할 수 있는 독보적인 외교적 역할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 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여타 국가들의 다양한 관점과 전략을 비교,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협력이 용이한 형태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몰론 미 바이든 행정부와 인도태평양 비전을 공유하고 협력을 약속한 분야에 대해서는 계승하여 성실하게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한미동맹의 신뢰성을 높이고 변화하는 환경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해야 할 것이다. 다만 EU, 인도 등의 인태전략을 참고하여, 한미동맹은 강화하되 압도적인 경제력 및 군사력 2위 국가인 중국과는 의제별 협력 가능성을 열어놓는 방향으로 전략적 입장을 발전시키는 것이 한국 국익에 부합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 인태전략의 원칙을 수립하고 대내외 천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의 협력에 유연한 입장인 유럽, 인도 등과 교감을 통해 전략적 레버리지를 높이는 편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역내외에서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들 사이에서 오히려 이들을 활용하여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이론(network theory)의 전략을 새겨보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공통된 특징은 이들이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외교전략이라는 점이다. 모든 네트워크에서는 중심성을 지닌 행위자가 있고, 네트워크상의 구조적 공백을 메움으로써 가치를 높이는 행위자가 존재한다. 강대국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인도태평양 네트워크 전쟁에서 한국이 보유한 국력 이상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외교전략을 궁리해 볼 좋은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