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북정상회담 평가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망
[세종논평] No. 2018-** (2018.5.2)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softpower@sejong.org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채택했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 연내 ‘종전선언’ 추진,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및 남북관계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 의지를 과시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 청와대조차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남북 정상이 연내 ‘종전선언’ 및 남북관계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까지 합의한 것은 분명히 기대 이상이었다. 남북 정상이 이처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및 남북관계 발전을 ‘속도전’ 식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은 핵과 미사일 강국을 추구했던 김 위원장의 입장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했고, 올해 신년사에서도 자신의 책상 위에 ‘핵단추’가 놓여 있다고 미국을 위협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와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에 대한 태도를 180도 전환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작년에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직면하게 된 상황에 대해 먼저 분석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작년에 수소폭탄 핵실험과 백악관까지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능력을 가진 ICBM 시험발사에 성공했지만 그로 인해 북한의 대외수출 대부분이 차단되는 심각한 경제적 봉쇄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경제 파탄을 감수하면서 핵개발을 계속할 것인지 대미 협상을 통해 자신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북미 수교와 한반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전면 해제 등과 교환할 것인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극비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난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 내정자가 지난 4월 29일(현지시간) ABC 방송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지속적인 압박작전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 계속 처할지 아니면 그 이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뭔가 크고 대담한 다른 것을 찾을지에 대해 중대결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북한에 요구해온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약칭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과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모호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CVID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문 대통령이 이와 다른 ‘완전한 비핵화’ 개념을 수용했을 리 없다. 그리고 김 위원장이 CVID 수용을 거부했다면 남북정상회담이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며 문 대통령이 연내 ‘종전선언’ 및 남북관계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 등에까지 합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자신이 극비리에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이유에 대해 “누군가를 얼굴을 맞대고 만나면 그들이 진짜로 역사적이고 과거와는 다른 무언가를 할 준비가 있는지를 더 잘 읽게 된다”며 “과거 대북 협상의 긴 역사에서 여러 차례 그들의 약속이 거짓이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나의 목적은 (비핵화) 성취에 대한 기회가 있는지를 타진하며 알아보려는 것”이었다고 지난 4월 29일(현지시간) 밝혔다. 그리고 그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의 방법론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과 깊이 있게 논의했으며,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진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북 강경파인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비추어볼 때 김 위원장의 작년 발언과 행동을 근거로 그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시간벌기’를 추구하고 있다고 예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것에 동의한 것은 그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기로 이미 결단을 내렸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최근에 국내의 한 언론은 북미정상회담 실무접촉에서 북한이 미국에게 △미국 핵 전략자산의 한국 철수 △한-미 연합훈련 때 핵 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북미 수교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과거에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조건으로 ‘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와 ‘미군철수 선포’ 등 한미가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같은 무리한 요구는 철회한 것이다.
이미 북한은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보장 및 북한의 핵 포기와 관련해 상당한 정도의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그 같은 의견 접근이 없었다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과거에 ‘리틀 로켓맨’이라고 조롱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에 김 위원장에 대해 “우리가 보고 있는 바에 근거할 때 매우 많이 열려 있고 매우 훌륭하다”하다고 극찬할 이유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미시간주 워싱턴에서 열린 유세 집회에서 “내 생각에는 북한과의 회동이 오는 3~4주 내에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5월말 또는 6월초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었던 북미정상회담 개최 일시를 5월 중으로 특정했다. 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 북미 간의 입장이 상당히 근접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모두 발언을 통해 “정말 수시로 만나서 걸리는 문제를 풀어나가고 마음을 합치고 의지를 모아서 그런 의지를 갖고 나가면 우리가 잃어버린 11년이 아깝지 않게 우리가 좋게 나가지 않겠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전통의장대와 행렬하던 중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말하자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고 답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에 매우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것은 문 대통령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면서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개최와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먼저 제안하기는 했지만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불안할 수 있다. 그런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신뢰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한국에게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