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패싱’ 담론과 한반도 ‘당사자’론에 대한 고찰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이성현 연구위원
북핵 문제에서 자신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중국을 한국이 어떻게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 낼 것인지가 중요한 숙제로 다가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문제는 중국이 해결해야 한다” (North Korea is China’s problem to fix)고 했고 이는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반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은 계속해서 그렇게 여겨지는 것에 대해 거리를 두었으며 그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국제사회에서는 지난 10여년간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책임론’이 공론화되었고 심지어 중국 언론에서도 북핵이 지역 안보뿐만 아니라 지진 발생, 방사능 유출 등 중국에게 끼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북핵 문제를 자기가 인식하는 국익 관점에서 접근해 오고 있다. 중국은 북핵 해결에 대한 ‘책임’은 일단 부인하고,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은 놓고 싶지 않아한다,
중국 외교부는 “북핵 문제는 북미 모순이 실질적 원인으로, 미국이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朝核问题的实质是朝美矛盾,美方应承担起应有责任)고 하면서 미국측에 공을 넘겼다 (2016년 9월12일). 유사한 발언을 중국 외교부는 2017년 9월19일에도, 2018년 1월3일에도, 2018년 1월26일에도 했다.
중국은 ‘북핵 문제는 중국 책임이 아니니 중국과 북핵 문제를 연계하지 말라,’고 대외적으로 매년 표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중국이 최근 한반도 정세의 빠른 변화 와중에서 ‘패싱’을 당하는 듯하자 신속하게 어휘를 바꾼 점이 눈에 띈다.
중국 정부는 2018년 4월19일 “중국은 한반도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할 용의가 있다,” (作为半岛问题当事方,中方愿为此发挥积极作用)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국이 스스로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표정(標定)한 점이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스스로의 위치를 규정함에서 있어 최근까지는 ‘건설적’ (建设性) 역할을 하는 국가 혹은 ‘독특’ (独特)한 역할을 하는 국가로 스스로를 표현했는데, 이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외교부 기록을 보면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当事方)를 열거하면서 이에 북한 (朝), 미국 (美), 한국(韓)을 거론하였지만 스스로를 당사자 범주에 언급하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그러면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관련된 직접당사자들이 용감하게 자신이 져야할 책임을 지고, 해야 할 역할을 해주기를 희망한다,”(我们希望半岛问题的相关直接当事方应勇于承担起应有的责任,发挥应有的作)라고 권유하기도 했다.(중국외교부, 2017년 8월30일).
중국은 또한 이제껏 국제사회가 중국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인식하는 것을 극구 고사(固辭)해왔다. ‘당사자’가 되면 문제의 ‘책임’도 져야 하는데 중국은 자기는 당사자가 아니고 미국이 당사자이니 미국이 북핵 문제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를 사용했다. 대신 중국은 북핵 문제의 중재자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을 해왔다. 북핵 6자회담의 개최국 역할이 그 대표적이다. 또한 최근 중국은 자신이 내놓은 북핵 중재안인 ‘쌍궤병행(雙軌並行)’ 및 ‘쌍중단(雙中斷)을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중국 스스로도 찔끔했을 ‘논리적 모순’을 감수하고서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임을 표방했다. 이것이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전후의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한국은 예측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격적으로 진행된 3월말 북·중 정상회담은 이미 이를 시사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해외 정상회담을 중국에서 가짐으로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 누구도 중국과 상의 없이 한반도 문제를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분명히 한 셈이다.
중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4월말,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말에 각각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는 알면서도 ‘새치기’를 하듯이 전격적으로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중관계 정상화를 통해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의 주도권과 개입권을 다시 확보했다고 본다.
이렇듯 중국은 북핵 문제가 한국과 미국의 주도에 의해 현상변경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보에 발빠른 보폭을 보이고 있다. 이번 주엔 12년 만에 중국의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 중국이 보는 한반도 지정학 전략에서 볼 때, 트럼프의 전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선언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의 ‘패싱’ 불안감을 충분히 자극했다. 이는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더 이상 중국이 필요 없고, 미국이 북한과 직거래를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격이다.
중국은 자신이 제외된 상태에서 북핵 문제가 남북한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미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표명해왔다. 한반도 지정학에서 ‘중국 역할론’의 하향 조정은 중국에게 불리하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상황 전개는 북·미 구도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학자들은 미국과 한국이 중국을 등한시하고 북핵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중국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마 이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중국은 군용기로 하여금 한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을 침범하게 했을 것이다. 무려 네 시간 동안 중국의 군용기는 한국을 “포위”하는 형태로 한국 영토를 근접 비행하고 돌아갔다. 이러한 무력시위는 한반도 평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4.27 남북정상회담 바로 다음날 이뤄졌다.
중국은 중국이 북한에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영향력 (sphere of influence)을 한국과 미국이 존중해 줄 것을 원하고, 한국과 미국이 종전선언/평화협정 등 북한 관련 결정 사항에 있어 중국을 핵심 일원으로 여겨주기를 바란다. 만약 중국이 무시되거나 소외되게 된다면 중국은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기습적인 정상회담’에서 볼 수 있듯이 스스로를 북한문제에 대한 ‘결정권자’임을 과시하려 할 수 있다. 중국 학자들은 만약 미국과 한국이 중국을 소외시키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중국은 ‘훼방’(打乱)을 놓겠다고 한다. 북핵 문제에서 자신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중국을 한국이 어떻게 설득하고 지속적인 지지를 이끌어 낼 것인지에 대해서도 선제적인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