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히든 카드와 북미대화 :
연구위원 박지광
지난 3월 5일서 6일까지 1박 2일간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대표로 하는 대한민국 특별사절단은 기대를 뛰어 넘는 성과를 도출해냈다. 4월중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개최, 남북정상간 핫라인 개설, 한반도 비핵화 의지 천명, 북한의 미국과의 대화 용의 표명,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조건부 중단, 남북 체육·문화교류 등 여섯 가지 사항으로 이루어진 남북합의문은 비록 선언적 의미의 합의문이지만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 하다.
이번 남북합의문 중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제안이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과의 대화 개시의 전제 조건으로 일정기간 도발 중지를 요구한 것을 북한이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북미간 “탐색적” 대화가 시작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궁극적인 목적이 단순한 탐색적 대화가 아니라 경제 제재 해제를 위한 협상이라면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선언만으로는 미국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의외인 것은 3·5 남북합의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게다가 3월 9일 정의용 실장의 백악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의사를 표명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미국의 반응을 보아서는 정의용 실장을 통해 미국에 전달된 북한의 히든 카드가 3·5 남북합의를 뛰어 넘는 제안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언론에서는 이 히든 카드가 무엇이냐에 대해 두 가지 추측성 보도를 내 놓고 있다. 먼저 3월 8일자 조선일보는 북한의 히든 카드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개발의 중단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 제안이 본격적인 북미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조선일보 보도와 같이 북한이 ICBM 개발중단만을 회심의 히든 카드로 제시했다면 북한은 미국이 미국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개발을 레드 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은 북한이 미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을 포기한다면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보도가 맞다면 북한은 ICBM 개발만 포기하고 핵무기는 계속 보유하겠다는 생각으로 판단된다.
미국이 “ICBM 개발 포기+핵무기 보유”라는 히든 카드를 받아들여 대북한 경제 제재를 해제해 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먼저 미국은 제재 해제를 위한 본격적인 협상의 전제 조건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핵폐기 (CVID,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임을 이미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다. 비록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 때대로 상충되고 혼선을 빚어왔지만 미국이 현재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입장은 제재 해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객관적으로 검증된 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에게 ICBM 개발 문제는 후차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협상을 파기한 것도 이란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은 핵확산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 핵무기가 다른 독재 국가나 테러조직에 수출될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염려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히든 카드가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지한다는 “약속”이라면 트럼프 행정부는 매력을 훨씬 덜 느낄 것이다. 북한이 시험없이 핵과 ICBM을 비밀리에 대량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이미 신년사에서 핵과 탄도미사일의 대량생간 및 실전배치를 천명한 바 있다는 점도 미국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본격적인 북미대화가 성공적으로 시작되기 위해서는 미국에 전하려는 북한의 비밀 메시지가 “비핵화 검증”에 관한 것을 반드시 포함하여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3월 7일 JTBC 뉴스 보도는 흥미롭다. JTBC에 따르면 히든 카드의 본체는 비핵화 문제이며 북미 회담에 임하려는 북한의 의지, 자세, 비핵화에 대한 더 구체적인 워딩이 포함됐다고 한다. 북한의 히든 카드가 비핵화 검증에 관한 것이라며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 동안 북핵문제가 제자리를 맴돈 것은 북한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되어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주장해 온 반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우선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 측에 비핵화 검증에 대한 전환적인 태도를 전달한 것이라면 현재의 두 나라간 교착상태는 타개될 확률이 높다. 사실 북한은 1994년 북핵 위기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락한 적이 있다. 따라서 미국이 아닌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에 의한 비핵화 검증이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만은 아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을 보아서는 북한이 비핵화 검증과 관련해서 전향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북미정상회담을 포함한 북미대화일정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북한과 이러한 합의를 도출해 낸 한국 정부가 앞으로 북미대화와 비핵화 검증 과정에서 중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