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五里霧中)속 솔즈베리 독극물 사건: 21세기형 전통·비전통 안보의 혼재
3월 들어 연일 영국과 러시아간 23명 외교관 맞추방 결정 등 상호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어제(18일) 있었던 러시아 대선결과 향후 6년간 푸틴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실해 졌지만, 영·러 양자관계는 물론 강대국간 국제안보협력 지평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3월 4일, 러시아 군사첩보원(GRU 소속) 출신으로 2010년 영국에 망명한 스크리팔(66세)과 그의 딸(33세)이 영국 남부도시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 벤치에서 외상없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된 데서 비롯된다. 사흘후 영국 반테러경찰은 샘플 조사결과 ‘노비촉’이라는 독극물이 사용됐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신경작용 화학무기로 구소련에서 개발된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이것이 신경전달 장애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인체기능의 체계적 붕괴를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영국에 망명한 전직 러시아 첩보원들의 독극물 사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2년전 (2006) 전직 연방보안대원 (FSB) 리트비넨코가 방사성물질 (폴로늄-210)이 섞인 차를 마시고 사망했는데, 최종처리가 미진했다. 영국 검찰은 러시아인 2명의 소행이라 했지만, 이들이 부인했고 러시아 정부는 범죄인소환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영국은 4명의 외교관을 추방하는 데 그칠 수 밖에 없었고, 더구나 러시아도 상응조치를 취했었다. 이번 신경화학제 검출은 이의 연장선상에서 영국인들로 하여금 영국정부에 대해 좀더 영향력있는 결의와 결단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메이총리 개인에게도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사실이 부담이 된다. 영국이 영토내 국민과 거주자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라는 명예를 잃게 되는 것이다.
메이총리는 사건 8일만일 3월 12일 러시아를 향해 24시간내 노비촉의 영국내 반입과 사용에 대한 전면적 설명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선언했다. 응하지 않을 경우 “광법위한 조치”가 따를 것이라 했다. 러시아가 응하지 않자 총리는 14일 의회연설을 통해 암살시도가 불법 무력사용의 일환이며 러시아 정부의 책임 혹은 통제에 실패했다고 결론짓고 일련의 대러보복 조처를 밝혔다.
이중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이 1주일내 미신고 첩보활동을 하는 외교관 23명의 추방이다. 영국과 소련(러시아)간에는 스파이 활동에 따른 외교관추방 및 맞추방의 오랜 역사가 있다. 이번 추방은 단일사례로는 냉전기인 1971년 105명 추방이후 40여년만에 최대규모의 추방이다. 현재 영국주재 58명 외교관중 43%인 23명을 첩보관련 직원이라 본 것이다. 그간 영국정부는 이들의 활동이 반테러작전 등에 초점을 둔 활동으로 간주하고 묵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내에서는 대부분 이 조치를 지지하면서도 전례적 방식의 외교관 추방의 한계를 지적한다. 선언적, 시위적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러시아 경제를 압박하는 것도 아니고, 디지털화된 이즈음의 세계에서 큰 방첩효과를 갖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메이총리가 제시한 여타 조치들로는 항공, 관세, 화물에 대한 검색강화; 영국 국민 혹은 거주자의 생명 혹은 재산 위협에 쓰일 수 있는 러시아정부의 영국내 자산동결; 각료와 왕족의 2018 러시아 월드컵 불참; 예정된 양국 고위급 회담 전면 중단; “적대국 활동”억제 목표의 신규법 제정 등이 포함된다.
러시아가 반박하고 나셨다. 메이총리의 발표와 함께 주영 러시아대사는 이 조처가 “수용할 수 없고, 부당하며 근시안적”이라 비난했고, 나아가 대선하루 전날인 17일 러시아는 전격적으로 1주일내 23명 영국외교관 맞추방, 모스크바 영국문화원 폐쇄, 상트 페테르부르그 영국 총영사관 개설 취소 등 강한 보복을 선언했다. 푸틴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는 강한 러시아의 모습이 부각되었을 것이다.
이에 영국내 반러여론이 커지면서 추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조치로 러시아 올리가르키의 런던내 사치성 부동산 접근억제 방안, 미신고 자산압류 방안, RT등 러시아방송의 활동금지 등이 점쳐지고 있지만 어려운 결정들이다.
그렇다면 국제지평은 어떠한가. EU차원에서 새로운 제재가 가능할까. 현재 영국의 대러제재는 EU제재의 일환으로 수행중이다. EU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및 동우크라이나 반군지원에 따라 부과한 것이다: 러시아 국영은행에 대한 장기차관 금지; 군사적 목적으로의 전용이 가능한 이중사용 기제 수출 및 무기거래 금지; 원유산업 기술 수출금지; 150명 개인 및 35개 기관에 대한 자산동결 및 여행금지가 포함된다.
솔즈베리 독극물 사건에 대해 EU관리들은 “거의 확실히 러시아가 개재된 잔인한 공격”이라며 조만간 중지를 모을 것이라 한다. 그 결과 대러 추가제재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기존 대러제재의 보다 엄격한 이행으로 귀결될지 지켜보아야 한다. EU를 대상으로 한 EU를 떠나는 영국의 설득력을 실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향후 구체적 수사결과가 더 큰 관건이 될 것이다.
한편 메이총리의 “불법 무력사용”의 일환이란 말은 29개 동맹국으로 구성된 NATO의 조약5장 집단방위를 상기하게 한다. 실제로 이번사건에 대해 NATO관리들은 “동맹국 영토에서 신경제가 공격에 쓰인 것에 대해 심대한 우려”와 함께 러시아에 대해 영국의 질의에 답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단, 메이총리나 영국정부, NATO내 누구도 조약5장을 거론하지는 않고 있다.
영국은 또한 이 사건의 국제화도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가 노비촉 프로그램에 대해 ‘화학무기금지기구’ (OPCW)에 모두 완전하게 공개해줄 것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소련붕괴 및 냉전종식 이후 국제사회는 비정부 단체 혹은 불량국가에 의한 생화학 무기, 물질, 기술의 확산 혹은 사용가능성을 극단주의 단체의 테러 등 여타 ‘비전통 안보위협’요소들과 함께 우려해 온 바이다. 국제평화와 안전 담보의 책임을 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두 상임이사국이자 양극체제하 상반된 진영에 속했던 두 강대국관계속에서 신경작용제 사용에 대한 책임규명을 소재로 긴장관계가 야기된 것은 기대 밖이다. 솔즈베리 독극물 사건은 메이총리가 피력한 것처럼 영국에 대한 러시아의 직간접 ‘불법 무력공격’으로까지 보지 않더라도 향후 강대국간 국제안보협력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시리아 내전에서도 화학무기가 사용됐음이 드러난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