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경제-핵 병진노선 폐기 배경과 비핵화에 대한 입장 평가
[세종논평] No. 2018-22 (2018.4.23)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softpower@sejong.org
북한은 지난 4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혁명발전의 중대한 역사적 시기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단계의 정책적 문제들을 토의결정하기 위하여” 다음날인 20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20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이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이 “위대한 승리로 결속[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의하면 ‘결속되다’는 말은 ‘끝나다’는 의미]”되었다고 주장한 만큼 새로운 노선은 기존의 경제-핵 병진노선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정치․경제․군사․외교․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이끌어가는 핵심 엘리트들인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200여명 이상이 참가하는 매우 중요한 회의이다. 북한은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해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급속한 고도화를 뒷받침한 경제-핵 병진노선을 발표했고, 2017년 10월에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를 개최해 당 핵심기구 엘리트들의 1/4 이상을 교체했다. 북한이 이번에 개최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는 기존의 경제-핵 병진노선에서 한 축을 이루었던 ‘핵무력건설’을 포기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노선을 제시하는 대전환을 보여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1주일 앞두고 이처럼 갑자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해 새로운 노선을 발표한 데에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입장 표명이 이루어지기 전에 북한의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북한의 정책 전환을 정당화할 필요성,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북한의 비핵화 결단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와 북미 및 북일 수교 및 남북관계 정상화로 인한 북한경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등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간부들과 주민들은 올해 들어 왜 김정은 위원장이 갑자기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왜 최근 로동신문에서는 더 이상 경제-핵 병진노선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대미 비난강도가 현저하게 낮아지고, 주한미군 철수 요구도 사라졌는지 매우 궁금해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그 결과가 공동선언의 형태로 발표될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간부들과 주민들이 받게 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새로운 노선을 서둘러 발표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도 필요 없게 되였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치였다”라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선언은 특히 미 행정부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북한이 아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완성하지 못했고, ICBM 능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ICBM의 추가 시험발사가 필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앞으로 ICBM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에게 큰 위협으로 간주되는 ICBM 능력 완성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결정서를 통해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내외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번에 ‘비핵화 선언’과는 거리가 먼 ‘핵보유국 선언’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례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4월 21일(현지시간)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 및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선언에 대해 ‘비핵화 선언’과는 거리가 멀고, 북한이 핵실험을 중단하고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핵 무기와 기술을 이전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도 “북한이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빅타 차의 주장이 부적절한 이유는 북한의 ‘비핵화 선언’은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관련 국가들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전면 해제하는 방안에 대해 포괄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때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현 시점에서 ‘북한 비핵화 선언’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
북한이 스스로를 ‘핵강국’으로 간주하는 것과 향후 비핵화 협상도 결코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비핵화 문제를 가지고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진행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결정서를 통해 “핵시험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다.”라고 밝혀 ‘핵군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런데 북한은 ‘세계적인 핵군축’에 대해 언급했지 미국과의 ‘핵군축 협상’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서의 내용을 가지고 북한이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인류의 공통된 염원과 지향에 부합되게 핵무기 없는 세계건설에 적극 이바지하려는 우리 당의 평화애호적 입장”에 대해 설명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 같은 ‘평화애호적 입장’을 가지고 향후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북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요구하는 문재인 및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북한이 결정서의 다른 부분에서 밝힌 것처럼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며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하기 위해서는 핵포기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김정은 위원장이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 중국 정부에 천명한 비핵화 의지와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무시하고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 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태도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의 발언과 결정을 통해 국제사회와의 비핵화 협상 및 경제발전에의 집중 의지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냈다. 김 위원장이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새로운 노선을 제시함으로써 경제발전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기대감도 커지게 되었다. 앞으로 김 위원장이 ‘북한판 덩샤오핑’이 될 수 있는지는 결국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북한의 안전을 어떻게 확실하게 보장하고 북한에게 경제발전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