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커스

[정세와 정책 2022-10월호 제47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의미와 시사점

등록일 2022-10-04 조회수 5,754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의미와 시사점

 

이효영 (국립외교원 부교수)

 

hylee17@mofa.go.kr


I.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주요 내용과 의미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816일 서명하여 즉시 발효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은 총 7,73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예산을 기후변화 대응, 보건 분야 복지 개선, 기업 과세 개편 등에 투입하여 미국의 재정적자 해소 및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을 통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효과를 추구하고 있다. 이 중 4,330달러는 정부 직접 보조금 및 세액공제 등의 형태로 친환경 에너지 산업 육성, 청정연료 사용 자동차 산업 지원,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와 같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역점사업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IRA의 모태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을 위하여 추진 중이던 더 나은 미국 재건법(Build Back Better Act, BBB)’인데, BBB 법안의 당초 3.5조 달러 규모의 예산 패키지가 환경 및 보건 분야로 집중 및 축소 제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IRA 제정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4,330억 달러 규모의 예산은 미국 소비자의 에너비용 감축을 위한 세금환급 및 세액공제, 풍력터빈, 태양광 패널, 배터리 등 에너지 생산·저장시설의 국내 제조 지원, 신규 및 중고 친환경차(clean vehicle)의 판매 진작을 위한 중산층 소비자 대상 세액공제 등 인센티브 정책에 투입될 계획이다. 문제는 친환경차의 판매 진작을 위한 인센티브의 수혜 대상이 되기 위한 조건이 미국 내에서 제조되는 전기차와 배터리에 한정되도록 법률상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IRA법의 시행에 따라 북미(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되어야 한다는 조건(최종조립 요건)과 함께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된 일정 비율 이상의 배터리 핵심광물(critical minerals)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요건(핵심광물 요건)북미에서 제조된 배터리 소재가 일정비율 이상이어야 한다는 요건(배터리 소재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최종조립 요건2022년 즉시 발효되며, 핵심광물 요건의 경우에는 2023년부터 40% 비율을 충족해야 하고 2024년 이후 50%, 2025년 이후 60%, 2026년 이후 70%, 2027년 이후 80%의 사용비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배터리 소재 요건은 2023년 이후 50% 기준부터 시작하여 2029년 이후 100%의 사용비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외에도 중국 등과 같은 우려국가에서 공급되는 핵심광물(20251월 이후 적용)이나 소재(2024 1월 이후 적용)가 일부라도 사용된 전기차는 보조금 및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IRA는 미국내 또는 북미 지역에서 제조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정부 보조금과 세액공제의 혜택을 제공하여 외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인 적용 크게 우려되고 있다. 이와 같은 차별적인 법 적용의 배경에는 미국 시장 내에서 한국산 전기차의 미국 시장점유율이 2위라는 점 등 미국산 전기차와 외국산 전기차가 경쟁 관계에 있고, 전기차량용 배터리의 일부 소재는 중국산 비중이 90% 이상인 것도 있어 배터리 소재의 과도한 해외의존 문제도 작용하고 있다. 또한 전기차 배터리 분야는 중국 뿐 아니라 EU, 한국 등의 적극적인 산업 정책으로 인해 보조금 경쟁이 보다 치열한 분야로서 미국은 자국 기업을 중심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공정한 경쟁 환경(level playing field)’을 조성하고자 하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사실은 IRA는 미국의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환경, 노동 등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정치적 성과사업을 담고 있어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매우 신속하게 입법화되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이 내재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2. 국제통상법의 관점에서 IRA 관련 쟁점

 

IRA 이행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에서 생산 및 수입되는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는 WTO 및 한-FTA 규범에 위배될 소지가 높다. 특히 동 법의 이행 직후 미국 정부의 세액공제 지원을 받았던 현대차의 전기차 품종은 최소 7,500 달러 비싸게 미국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면서 올해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미국 시장점유2위를 차지했던 수출 실적이 무색하게 되었다. WTO 및 한-FTA 규정상 협정참여국은 타 참여국에 대하여 비차별대우(최혜국대우 및 내국민대우) 의무가 있으며, 법률상 명시적으로 차별적인 내용이 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실제 법 이행의 결과로 타국 제품에 대하여 국내 제품과 다르게 차별적인 대우를 하게 될 경우 규정 위반에 해당되어 통상 분쟁의 제기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WTO 보조금 규범상 타 회원국의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는 보조금 조치는 금지되어 있는데, IRA에 따라 적용되는 최종조립 요건 및 핵심광물, 배터리 소재 요건들은 사실상 외국산 제품의 수입을 국내산 제품으로 대체하는 목적과 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IRA는 미국의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정책의 취지와 상반되게 공급망 협력국에 대한 역차별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국제통상규범을 무시하는 과도한 자국산 소재 사용요건(local content requirement, LCR) 등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추구하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협력 기조와 맞지 않을뿐더러 모든 참여국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하는 협력의 전제를 무시하고 있다. 특정국에게만 이익이 집중되는 형태의 협력은 구축되기 어려우며, 구축이 된다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한국은 미국의 공급망 강화를 위한 핵심적인 협력대상국으로서 향후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CHIP 4(또는 FAB 4) 반도체 동맹 구상, 핵심광물 안보파트너십(MSP) 등 다양한 공급망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IRA가 도입하고 있는 차별적 내용은 협력의 동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향후 한-미 간 경제협력 약속의 원활한 이행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상법의 관점에서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의 대상이 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국내산 소재 사용요건(LCR)은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국내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정책수단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미국 바이든 행정의 출범과 함께 공표한 바 있는 ‘Buy American’ 규정은 대표적인 LCR 정책으로, 미국 내에서 제조되거나 미국 내에서 조달된 중간재 및 소재를 사용한 비율이 일정 이상 충족되어야 미국 정부 또는 기업이 구매 및 제조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정하고 있다. 관련 부처의 재량에 따라 LCR 면제 적용도 가능한데, IRA의 경우 면제조항에 대한 내용은 아직 정해진 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례로 202111월 발효한 미국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 법(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에서 정하고 있는 LCR 기준의 경우 면제 적용을 위해서는 국내에서 해당 물품을 조달하는 것이 공공이익(public interest)’과 상치되는 경우, 국내적으로 해당 물품의 조달이 어려운 경우, 국내에서 조달된 물품을 사용하는 경우 해당 인프라 투자사업의 비용이 25% 이상 상승하는 경우 등에 한정된다.

 

미국 정부는 Buy American과 같은 LCR 정책에 대하여 국가안보 및 경제안보에 필수적인 제품의 국내조달을 위해 해외에 구축된 생산시설의 국내 유치를 유도하여 공급망을 재편하거나 타국의 경쟁적인 산업정책으로 인해 상실되었던 자국의 기존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매우 효과적인 정책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국내산업 보호 목적의 수입규제 조치인 관세 또는 쿼타(quota)는 무역상대국의 상호주의적인 시장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과 효과를 위해 사용되지만, LCR은 민간기업상업적인 해외조달(offshoring) 결정에 의하여 국외에 분산되어 있는 생산역량을 현지화하여 완결적인 국내 공급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되는 산업정책 수단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LCR 정책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생산 투입재의 무역을 왜곡시키고 국내 소비자 및 생산자의 비용 상승을 초래할 뿐 아니라 무역상대국의 수입을 대체하는 목적과 효과가 명백하게 존재하므로 국제통상규범 하에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WTO 규범상 규정하고 있는 내국민대우(national treatment) 의무는 회원국들의 정부조달(government procurement) 조치에 대하여 예외의 적용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GATT협정 제XX조의 일반예외 규정에 의거하여 국민보건 및 안전을 위한 국내조치, 자원의 고갈 방지를 위한 국내소비 및 수출통제 조치, 국내 생산역량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수입규제 조치 등에 대한 예외 적용이 허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정부조달목적을 위한 조치에 대한 예외 규정을 명시하고 있는데, 미국의 Buy America 정책이나 금번 미국의 IRA에서 정하고 있는 전기차 세액공제를 위한 LCR 요건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GATT협정 제III조 제8항 상의 예외로서 LCR 정책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해당 물품의 조달을 정부가 직접 해야 하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LCR 정책이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데, 금번 IRA에서 정하고 있는 LCR 요건은 미국 기업에 의한 전기차 공급에 적용되며 기업의 상업적 이익을 수반하고 있으므로 예외조항의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가 IRA의 이행을 위해 적용하고자 하는 LCR 요건은 국제통상규범에 대한 위반 사항으로서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3. 시사점 및 대응방안

 

국제통상질서의 관점에서 IRA의 파급효과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IRA를 비롯하여 바이든 대통령이 제정한 반도체과학법(CHIPS Act)’와 최근 행정명령으로 추진 계획을 밝힌 의약품 등 바이오기술 산업 강화를 위한 보조금 지원 정책은 향후 국가 간 치열한 보조금 전쟁을 확산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각국의 미래 기술 산업 육성 및 강화를 위한 경쟁적인 보조금 지급은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을 초래하며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근린 궁핍화(beggar-thy-neighbor)’ 정책과 다름없다. 특히 경제안보의 논리를 활용하여 전략적 첨단기술 산업에 대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여 상대적 경쟁 우위를 더욱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여 글로벌 패권 지위를 공고히 하는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글로벌 의제의 이행이라는 명분 하에 그동안 WTO 규범상 애매모호했던 친환경 보조금 관련 규제의 봉인을 해제하게 된 격으로, 이제는 모든 국가들이 각국의 탄소배출량 감축목표 달성이라는 명분으로 규제 없이 보조금 정책을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외국 제품에 대한 차별대우 및 수입대체 효과를 가진 국내 조치들이 별다른 규제 없이 도입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IRA의 국제통상법적 쟁점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정책적 한계와 문제점에 대하여 우리 정부는 다양한 정치·외교·경제 및 실무적 협의 채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IRA의 개정, 이행 연기, 법 적용에 대한 예외 또는 면제 등을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IRA의 개정을 요구하는 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동 법이 미국 행정부가 아닌 의회에서 발의된 법안으로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바이든 정부의 역점사업의 성과를 축소시키도록 요구하는 비효과적인 접근방식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법 서명과 함께 발효된 IRA의 이행 시기를 한국의 현대차 공장이 설립된 2025년 이후로 연기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현재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비롯하여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시설까지 투자 약속을 한 우리 기업에 대하여 IRA 적용대상으로부터 면제를 부여받도록 요구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EU2026년 시행 예정인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 부담금의 미국 면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데, 반대급부로서 미국의 IRA에 대한 EU 전기차의 적용 면제를 확보하기 위한 협상 카드로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정부도 현재 미국과의 통상현안 중 상호주의 차원에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협상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