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이후 : 미국의 시각
연구위원 박지광
문재인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삼고자 북한대표팀 참가에 공을 들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노력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북한 특사로 서울에 와 청와대를 예방하고 김정은의 남북정상대화 제의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로 전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정부·여당은 앞으로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면서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은 북미관계 개선에도 또한 기울여 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부는 펜스 부통령 방한시 사상 최악인 북미관계를 개선시키고자 노력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필자가 보기에는 의외로 명확해 보인다. 사실 필자가 1월에 워싱턴을 방문하였을 때 이미 워싱턴은 한국정부가 평창올림픽을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삼으려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고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대화 움직임이 있을 것이고 북한의 대미대화 제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싱턴 조야의 분위기는 대체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제의를 한미관계를 이간질시키려는 북한의 전술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국 측 인사들은 남북대화는 한국 정부의 주권사항이므로 미국 측이 간섭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남북대화 성사를 위해 또는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가 북한에 어떠한 금전적 또는 물질적 대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러한 행위는 한국도 동의한 대북한 유엔제재 위반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알리지 않고 북한에 비밀리에 대가를 지불한다면 이는 대북제재의 균열을 의미하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하였다. 또한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하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우방에 그 진전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들도 개진되었다.
최근 펜스 부통령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태도의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부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이루어진 사적인 대화의 맥락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 발언을 어느 정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미지수이다. 문제의 워싱턴 포스트지 기사(사실 global opinions란에 실렸음) 작성자가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Josh Rogin)이라는 점 또한 이 기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지만 이러한 기사는 북미간의 대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사실 현재도 미 국무부는 북한과 뉴욕채널을 비롯하여 몇 개의 비공식적인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락통로로써의 대화채널이나 “대화를 위한 대화”를 넘어서는 북미간 진정한 협상의 기본 전제는 북한의 비핵화조치라는 것은 분명하다. 진정한 의미의 대화는 북한이 최소한 핵동결을 선언하고 이를 IAEA나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를 통해 검증받아야 시작된다는 것이 워싱턴의 일치된 견해이다. 이는 민주·공화 그리고 의회· 행정부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소한 북핵 동결 조치 없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도 대북제재를 해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전략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4월로 예정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워싱턴의 기류는 이미 한번 연기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재연기나 취소는 한미동맹이 훼손되는 행위라는 입장이다. 다만 훈련내용이나 규모는 매년 조정되어왔던 사항이기 때문에 올해에도 조정될 수는 있다는 입장이다. 즉 미국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재연기나 취소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축소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으로 파악된다. 다만 한국 측이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미 합동군사훈련에서 해병대 상륙작전을 빼는 사안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인사들이 있었다. 이미 미국 측이 준비를 한 상태이고 북한 측이 주시하고 있는 해병대 상륙작전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에서 빠지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