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커스

독일총선 이후 포스트 메르켈 외교안보 정책 전망 [정세와 정책 2021-11월호-제43호]

등록일 2021-11-01 조회수 2,397

독일총선 이후 포스트 메르켈 외교안보 정책 전망

 

고상두 (연세대학교 교수)

stko@yonsei.ac.kr

 

 

독일 주요 정당의 외교안보 분야 총선 공약

 

대부분의 나라처럼 지난 9월 독일총선에서도 외교안보 정책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주요 이슈는 아니었다. 하지만 16년 집권하였던 메르켈 총리가 퇴진하고 중도좌파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향후 독일의 외교안보 정책에 작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독일 주요 정당들은 최근의 국제정세를 21세기 주도권을 둘러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체제 간의 경쟁으로 인식하고, 그 대응책으로서 글로벌 및 유럽 차원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독일의 역할강화론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주요 정당 간에 다소 차이가 발견된다.

 

기민당은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하고 있다. 총선 정책공약집을 보면 외교안보 정책의 주제가 새로운 세계적 책임: 평화, 자유, 인권이며, 독일이 국제사회의 안정추가 되어야 하고, 유럽에서는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지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화주의 정당을 표방하는 사민당은 외교안보 정책주제로 세계에 우뚝 선 유럽을 제시하였다. 물론 나토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그와 동시에 유럽연합의 군사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관심이 있으며, 유럽군을 창설하여 세계 평화유지군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녹색당은 페미니스트 외교노선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국제분쟁이 힘이 아닌 협상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외교안보 주제는 국제적 공동행동이다. 녹색당은 유럽안보동맹을 지지하는데, 그 이유는 공동체 차원의 무기수출 통제가 가능해지고, 회원국의 방위비 절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색당은 민간부문의 예산에 부담을 주는 유럽방위기금에 대해서는 폐지를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녹색당의 관심이 유럽연합의 안보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자민당은 가장 친유럽적 정당으로서 유럽연합이 진정한 글로벌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민당의 외교안보 주제는 자유로운 전략적 주권으로서, 유럽연합이 독자적인 대외역량을 갖추기를 바라며, 유럽공동방위동맹과 유럽군의 창설을 적극 지지한다.

 

침략의 과거사 때문에 군사력의 사용 문제는 독일에서 민감한 이슈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독일군의 파병문제를 논의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기민당은 군사력을 외교의 수단으로 인정하고, 동맹국과 함께 다국적군으로 참여하고, 국제법과 독일 헌법을 준수한다면 파병에 제약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경운동과 평화운동 시민세력이 창당한 역사를 가진 녹색당도 더 이상 독일의 군사적 개입을 배제하지 않는다. 물론 제재 등과 같은 모든 평화적 수단이 무용하고, 인종청소 방지와 같이 불가피한 경우에 한정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요 정당들은 예외 없이 방위력 증강을 지지하고 있다. 기민당은 현재 185천 명의 병력 규모를 203천 명으로 늘릴 것을 주장하며, 심지어 녹색당도 독일군의 해외파병에 대비하여 인원과 장비를 증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나토가 2014년 웨일즈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0년 이내 GDP 2% 이상의 국방비 지출에 대해서는 정당 간에 이견이 있다. 기민당과 자민당은 약속준수에 적극적이지만, 사민당은 소극적이고, 녹색당은 반대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독일 국방예산이 GDP1.36%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신정부의 특별한 의지 없이는 2024년에 2%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바이든 정부와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될 수 있다.

 

연립정부 구성 전망과 대외정책의 집권화 가능성

 

이번 총선에서 사민당은 박빙이지만 기민당을 이겨 제1당이 되었고, 녹색당, 자민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3당 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만일 이 협상이 성사되지 못하면 기민당이 사민당을 대신하여 새로운 협상자로 등장할 것이므로, 녹색당과 자민당은 어떤 경우든 연정에 참여하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의 신호등 연정이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연정 협상에 1-2개월 소요되었으나, 최근 점차 길어져 4년 전의 협상은 6개월이 소요되었다. 연정 합의문도 길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정 협상 성공의 관건은 서로 다른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들이 공동정부의 국정과제에 합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합의사항은 정당 간의 장차관직의 배분이다.

 

전통적으로 2개 정당이 연정을 구성하던 시기에는 총리직은 다수당이 맡고, 외교장관직은 소수당이 맡았으나, 현재의 신호등 연정 협상에서는 사민당이 총리직을 맡고, 증세를 반대하는 자민당은 재무장관직을 선호하고, 녹색당은 환경부를 확대한 기후변화부를 신설하여 맡을 것을 논의하고 있다. 따라서 자리배분 협상에서 외교장관직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그동안 독일에서 꾸준히 제기되었던 대외정책 결정의 집권화를 실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연립정부는 각 정당이 자신의 정책선호에 맞게 장관직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상호 간의 정책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장관이 소속 정당의 정책선호에 따라 행동하는 장관의 정부(ministerial government)”현상을 초래한다. 그 결과 독일의 외교, 국방, 경제, 재정 등 각 부처가 대외문제의 해결에서 서로 충분히 조정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총리실이 대외정책을 총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러한 조직개편을 위해 총리실에 장관급 외교안보 특보를 신설하고, 국가안보회의를 설치하여 외교부의 유럽담당 차관을 이동시키는 등 외교부의 권한과 역량을 총리실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총리실이 미국의 대통령실과 유사하게 개편되면, 정부 부처 중심의 개별적 대외정책이 보다 융합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나토 핵공유 체제는 유지될 것인가?

 

신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내려야 하는 중대한 결정은 독일의 나토 핵공유 프로그램 계속 참여 여부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이 유럽에 배치한 핵탄두 중에서 150발을 유럽동맹국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적극적인 핵확장 억지력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5개 국가 중에서 독일은 뷔헬(Büchel) 공군기지에 배치된 20발의 핵탄두를 유사시 나토 사령부의 지휘하에 전폭기에 장착하여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임무를 수행할 독일공군의 토네이도 전폭기가 노후화로 인하여 2024년 퇴역이 예정되어 있다. 그동안 집권 기민당은 현재 85대의 토네이도 후속 기종으로 핵탄두 운반능력을 갖춘 미국의 F-18을 고려하였지만, 핵 공유의 종결을 주장하는 사민당과 녹색당의 반대 때문에 결정이 계속 미루어졌다. 하지만 이젠 더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고가의 전폭기 구매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독일이 핵공유에 불참하게 되면, 현재 핵공유를 하고 있는 이태리, 벨기에, 네덜란드도 독일의 선례를 따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 나라에서는 독일보다 핵 공유에 대한 여론이 더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나토 핵공유 체제가 사라진다면 2,000개에 달하는 러시아의 전술핵무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억지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대중 강경노선으로 선회할 것인가?

 

메르켈은 실용외교를 추구하였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러시아의 크림합병을 비판하고 대러 제재를 주도하면서,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해 해저가스관으로 독일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노르드스트림2 사업을 관철하였다. 안보 대결과 에너지 협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러한 정경분리 노선은 독일외교의 전통적 관행에 속한다.

 

하지만 미중대결이 격화되고 있는 최근의 국제현실은 지정학적 이익과 정치적 가치를 위해 경제를 무기화하는 정경연계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정당들은 공통적으로 중국을 경쟁자인 동시에 협력대상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정당에 따라 경쟁을 강조하거나 협력을 강조하는 차이는 있다.

 

기민당의 메르켈은 중국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최대한 자제하였고, 차기 총리후보인 사민당의 숄츠는 중국을 거의 비판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민당 소속의 마스 외교장관은 중국을 노골적으로 비판해왔다. 중국에 가장 비판적인 정당은 녹색당이다. 녹색당은 중국의 패권추구와 홍콩과 신장 위구르 등지의 인권탄압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기업친화적인 자민당은 중국과의 비즈니스 이익을 중시한다.

 

중국은 독일 수출액의 10%를 담당하는 중요한 시장이다. 하지만 그동안 친중 로비에 열성이었던 독일 경제계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 대표적 경제단체인 독일산업협회(BDI)2019년에 중국을 경제적 체제 경쟁자로 규정하며, 중국과의 협력이 단기적으로는 이득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높이고, 현재 독일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국민여론 또한 대중관계에서 경제이익 보다 정치안보적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메르켈 시기보다 중국에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유럽연합 정책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메르켈은 유럽의 이익이 독일의 이익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여러 차례 유럽위기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면서 유럽의 지도자로 부상하였고, 독일의 유럽 리더십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유럽시민 대상 여론조사를 보면 독일의 리더십은 경제통상 분야에 국한되어 인정받고 있으며, 외교안보 분야에서 독일의 리더십에 만족하는 응답자는 20% 수준에 불과하다.

 

그동안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전략적 자율성을 주창하며 독일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 개념은 유럽의 안보를 위해 스스로 주요 안보 사안에 관한 의제설정과 정책결정을 하고,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이 나토동맹의 대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의존을 줄이고 그만큼 유럽 동맹국 간의 다자적인 협력을 강화한다는 개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독일과의 군사 안보협력을 강조하여, 2017년에는 역사적인 양국 안보방위회의를 개최하였고, 양국은 상설구조적 협력(PESCO)과 유럽군 창설에 합의하였다. PESCO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공동 투자와 개발을 통해 서로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사실 이 사업은 이미 리스본 조약에서 합의되었지만, 그동안 지지부진하다가, 전략적 독자성이 강조되면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독불 양국의 방위협력은 엘리제 조약 2.0 버전이라고 불리는 아헨조약으로 제도화되었다. 아헨은 현재의 독일과 프랑스 영토를 통치하였던 샤를마뉴 대제의 수도로서, 양국이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하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도시이다. 1963년에 체결된 엘리제 조약의 목표가 독불화해와 청소년 교류였다면, 2019년에 체결된 아헨조약에서는 군사안보 분야의 독불협력으로 확대되었다.

 

독일의 모든 주요 정당은 유럽통합의 강화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연립정부가 구성될지라도 프랑스의 전략적 자율성에 동조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경제분야에 국한하였던 독일의 유럽정책이 군사방위로까지 확대되면, 독일은 유럽에서 보다 완결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