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논평
2018.1.10.
피해자 중심의 해결에서 일본의 진정한 사과까지
이면우(세종연구소)
외교부가 강경화 장관을 통해 2015년의 위안부합의에 대한 처리방향을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피해당사자인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과의 소통을 거치지 않은 합의는 인정할 수 없지만, 2015년의 위안부합의가 한일 양국의 국가간 국제합의인 측면을 부정할 수 없기에 일본에 대해서 재협상은 추구하지 않고 일본의 자발적이며 진정한 사과를 기대하며, 피해자 분들의 명예회복과 상처치유를 위해 피해자 중심의 조치를 모색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2015년의 합의를 준수하라는 일본의 요구와 그것을 인정할 수 없으니 파기해야 한다는 위안부피해자들의 비판 사이에 놓여있는 정부로서는 대일정책으로 제시한 ‘투 트랙’ 전략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찾아낸 양 방향적 묘안이라고 생각된다. 묘안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10억엔의 기금에 대해 기존 사용분을 충당해 일본과의 협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놓아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상처치유를 위한 길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쌍방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고, 여차하면 양쪽 모두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의 처리방향에 대해서 인정할 수 없으며 합의를 준수하라는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과 그 지지단체들 역시 아직은 별다른 입장을 제시하지 않지만 이번 처리방향의 진전여부에 따라, 특히 피해자들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일본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가 묘연해진다면 비판적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번의 처리방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현 정부가 위안부문제를 대하는 자세라고 하겠다. 이번에 제시된 처리방안은 단적으로 얘기하면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내적 조치는 한국정부가 담당할 테니 일본은 자발적으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주길 바란다는 것인데, 이는 현 정부가 위안부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위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담당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의지와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것이 평가할 만하다는 것이다.
위안부문제는 피해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물론 한국도 비록 식민지배하의 일이지만 국가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역대 한국정부의 기본 입장은 김영삼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에서처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한국이 맡을 테니 일본은 진실성 있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라고 하겠는데, 이번 처리방안의 특징은 한국 정부의 역할로서 단순히 보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 및 존엄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이라고 하겠고 그만큼 진일보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안으로 위안부 문제가 원만히 종결되어 승화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하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정부는 이번의 처리방안에 대해서 우선은 수용할 수 없다는 종전의 입장을 다시금 강력히 피력했다. 이는 일본내의 상황을 고려한 선제대응이라고도 하겠는데, 일본에서는 언제까지 사과를 계속해야 하는가, 진정한 사과라는 것이 무엇인가 명확하지 않다는 불만이 있고, 과연 새로운 사과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하는 강한 의구심 및 불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정부의 자발적이고도 진정한 사과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이와 같은 ‘불가역적’ 해결 요구에 상응할 수 있도록 피해자들과의 소통 속에서 원만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국정부의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하겠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위안부피해자들이 이제까지 요구한 사과의 진전성에는 법적 책임과 책임자 처벌 등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은 식민지배에 대한 해석과도 연관되어 완강한 거부였다. 그 대응방안으로 2015년의 합의가 제시한 것이 일본정부의 사과와 함께 일본정부의 예산에 의해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었지만,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그것이 ‘보상’인지 ‘치유금’인지의 논란을 불러왔다.
또한 일본의 ‘불가역적’ 해결 요구에는 ‘소녀상’의 이전 문제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과연 위안부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선행된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어느 것을 먼저 할 것인지를 놓고 갈등이 빚어진다면 이제까지의 경과에서 보듯이 난항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결국 일본과의 원만한 해결은 타협을 위한 위안부피해자들의 양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하겠고 한국정부의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제시하는 소이라고 하겠다.
위안부문제의 해결은 작게는 변화하는 동북아의 국제정세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크게는 해방이후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겨져 있는 식민지역사의 총결산이라는 맥락에서 한국의 정신적 토대를 통괄한다는 역사적 의의와도 연관되는 일이다. 이러한 차원에서는 위안부피해자들과의 강한 연대를 가진 현 정부야말로 위안부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역사적 소명을 가졌다고 하겠다.
세간에선 합의준수라는 건지 파기라는 건지 애매하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위안부문제는 그렇게 일도양단으로 가릴만큼 간단치 않다. 외교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간단치 않고, 현재의 동북아정세는 더욱 그러하다. 이번의 처리방안이 피해자들의 명예 및 존엄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함은 물론, 위안부문제를 전시여성인권의 문제로 승화시키고 일본의 계속되는 망언을 방지하는 한국의 ‘불가역적’ 요구도 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