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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정책 2019-07호] 2019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와 유럽통합의 미래

등록일 2019-06-04 조회수 5,221


2019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와 유럽통합의 미래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chs@ssu.ac.kr
 

유럽의 민주주의, 그 아홉 번째 실험

 

지난 달 23일부터 26일 사이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28개 회원국에서는 유럽의회 571명의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동시에 치러졌다. 인구 5억이 넘는 유럽연합의 유럽의회 선거는 인구 13억의 대국 인도의 총선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불린다. 유럽선거의 특징은 한 국가의 의회를 뽑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28개국에서 의원을 각각 선출하여 하나의 초국적(supranational) 의회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나라마다 약간씩 다른 선거제도가 적용되기는 하지만 각 국의 시민이 직접 대표자를 선출하여 유럽의회의 구성에 동참한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와 비교정치가 절묘하게 융합되는 실험이다.

유럽이 임기 5년의 의원을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이었음으로 지난 40년 동안 벌써 아홉 번째 선거를 치른 것이다. 당시 유럽은 종합적 정치 공동체를 지칭하는 유럽연합이 아니라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제한적이고 기능적인 국제기구였다. 직접 선거를 통해 강한 민주적 정통성의 의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유럽의회는 존재했지만 그 때는 각국의 의회에서 대표자를 파견하는 형식이었다.

1979년 이후 아홉 번의 유럽의회 선거를 치르면서 유럽통합은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였고 유럽의회의 성격도 이에 따라 크게 강화되었다. 우선 1979년 유럽경제공동체의 회원국은 서유럽 9개국에 불과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이 원래 유럽을 창설한 6개국이었고, 1973년에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가 가세한 결과이다. 이번 2019년 유럽의회에는 모두 28개국이 선거에 참여했으니 회원국 수만 해도 3배나 불어난 것이다.

유럽은 또 경제공동체에서 연합으로 발전하였다. 경제의 분야에서는 단일시장을 형성하여 자유로운 교역과 투자, 노동의 이동을 보장하는 한편, 정치와 외교, 사법과 환경 등 거의 모든 정책분야에서 유럽의 역할이 강화된 것이다. 따라서 역내 무역이나 대외 경제 정책에 한정되었던 유럽의회의 개입 분야 또한 거의 모든 정책으로 다양하게 확장되었다.

게다가 예전에는 회원국 정부가 형성하는 이사회(Council)에서 주요 결정을 내리고 행정부의 역할을 담당하는 유럽집행위원회(Commission)에서 집행을 담당하는 구조였지만 점차 유럽의회가 공동결정에 참여하고 집행위원회를 감시하는 기능이 커졌다. 따라서 유럽의회는 민주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기구에서 이제는 유럽의 다양한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초국적 의회로 성장하였다.

 

전통 중도 세력의 약화와 신흥 세력의 약진

 

2019년 유럽의회 선거의 결과는 많은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전통적 중도 세력의 약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여기서 전통적 중도 세력이란 중도 우파의 기독교 민주주의 세력(179)과 중도 좌파의 사회 민주주의 세력(153)을 지칭한다. 이들은 각각 우파와 좌파로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통합에 찬성하는 중도 세력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유럽정치의 안정적 지주로 여겨져 왔다.

기민주의 계열의 유럽민중당(European People’s Party)과 사회민주당(S&D, Socialists and Democrats)은 유럽통합에 기본적으로 우호적이며 시장경제와 복지국가를 겸비한 유럽의 정치경제에 대한 합의를 공유한다. 이 두 세력을 합칠 경우 유럽의회에서 의석의 과반수를 초과하는 중심을 형성했고 유럽통합을 지지하면서 정책적 어젠다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두 세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둘을 합쳐도 과반수에 미달하는 결과(332/751)를 얻은 것이다.

기민주의와 사민주의를 대신해 부상한 세력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극우 민족주의 세력으로 유럽통합에 반대하면서 회원국 차원의 결정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들이다. 기민주의나 사민주의가 나라마다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상당한 공통점을 보여주는 반면, 이들 극우 민족주의 포퓰리즘 세력은 하나로 묶기 어려운 다양성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유럽차원의 집합을 형성하기도 어렵고 실제 ECR(63, 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 ENF(58, Europe of Nations and Freedom), EFDD(54, Europe of Freedom and Direct Democracy) 등 세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있다. 일부 영미 언론에서는 극우의 부상을 집중해 강조했지만 사실상 유럽 안에서는 극우 세력의 확장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었다.

새롭게 부상한 또 다른 하나의 세력은 녹색당(69, Greens/European Free Alliance)이나 자유민주주의 계열(105, Alliance of Liberals and Democrats for Europe)의 신흥 세력들이다. 물론 녹색 환경주의나 자유 민주주의는 이미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기민주의와 사민주의에 눌려 소수 세력에 불과했다. 신흥이라는 표현은 이들이 이번 선거에서 주요 세력으로 새롭게 부상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종합적인 평가는 기민·사민 전통 중도세력의 약화(-72)와 녹색·자민 신흥 중도세력의 부상(+54), 그리고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견고화(+22) 정도로 내릴 수 있다.

유럽 민주주의에 있어 긍정적인 요소는 시민의 관심이 증가하여 선거 참여율이 50%를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지난 2014년 유럽선거의 투표율은 42% 수준에 불과했다. 전통적으로 시민들은 유럽의회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고, 따라서 위정자를 선택하는 국내 대선이나 총선과는 달리 유럽선거는 불만을 표명하는 항의성 투표가 유행하는 애매한 성격의 선거였다. 이번에도 이런 특징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점은 유럽의회의 민주적 대표성이 강화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국가별 특수성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연합의 정치 온도를 재는 행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에 28개 회원국의 서로 다른 정치 상황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국가는 단연코 영국이다. 원래 브렉시트를 통해 유럽연합에서 탈퇴했어야 하지만 집권세력의 분열로 탈퇴에 실패했고 그 결과 어정쩡한 입장에서 유럽의회 선거에 강제로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집권당인 보수당(8.8%)과 제1 야당인 노동당(11%)은 모두 참패하였고, 브렉시트 당(31%)1, 그리고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자유민주당(20%)2위를 차지했다. 브렉시트와 관련한 영국의 여론에 그만큼 양분되어 대립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갖고 있는 독일에서 기민당은 제1(29%)의 위치를 유지했지만 사민당이 몰락(16%)하고 녹색당이 2(21%)로 올라섰다. 사민당을 중심으로 주니어 파트너의 역할을 했던 녹색당이 이제는 중심으로 부상한 모양이다. 극우세력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부상이 주춤했다는 사실(11%) 또한 독일 선거 결과의 특징이다.

유럽연합에서 대국의 역할을 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극우 세력이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프랑스의 민족동맹(23%, Rassemblement National)과 이탈리아의 라리가(34%, La Liga)가 나란히 선두에 나섬으로써 영··이의 극우 산맥을 형성했다. 하지만 성격은 약간 다르다. 프랑스의 민족동맹은 2014년 선거에 비해 약간 후퇴한(-1.5%포인트)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커다란 약진(+28%포인트)을 보였기 때문이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중도 좌파의 민주당이 2(23%)로 어느 정도 영향력을 유지한 반면, 프랑스의 사회당(6%)이나 공화주의 세력(8%)은 몰락하고 마크롱의 신흥 세력 전진하는 공화국’(22%)2위를 차지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의석이 많은 스페인과 폴란드는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다. 스페인에서는 사민주의 정당(PSOE, 33%)1위를 차지한 반면, 폴란드에서는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집권당(PiS, 45%)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럽선거는 나라마다 각국의 정세와 특징을 반영하는 모자이크 그림과도 같다.

 

유럽통합의 미래

 

유럽의회의 중요성을 강화하는 역사적 변화 가운데 가장 가시적인 혁신은 제일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정치세력에서 집행위원장을 배출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유럽연합의 조약에 명백하게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유럽의회 선거결과를 감안하여 집행위원장을 선출한다는 추상적 원리를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한 방식이다. 이에 따라 2014년 가장 많은 의석을 얻은 유럽민중당의 대표 장클로드 융커가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지난 번 선거에서 만들어진 원칙이 이번에도 반복되면서 하나의 전통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9년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은 여전히 유럽민중당이며 이 세력의 대표 주자는 독일의 만프레드 베버다. 하지만 유럽의회의 축을 형성했던 기민·사민 세력이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집행위원장 선출에는 다른 세력의 도움이 필요하다. 올 여름에는 따라서 여러 정치 세력 간에, 그리고 회원국 정부 사이에 다양한 협상과 줄다리기가 진행될 예정이다.

집행위원장도 상징적으로 중요하지만 실제 집행위원회의 구성이 앞으로 몇 달 동안 서서히 협상과 타협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유럽은 초국적 공동체이기 때문에 집행위원회의 구성은 다양한 균형을 맞추는 고차원 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좌파와 우파의 공존, 대국과 소국의 균형, 부국과 빈국의 조정, 남유럽과 북유럽의 조율, 남성과 여성의 밸런스 등 고려해야할 요소가 한 둘이 아니다.

어떤 점에서 집행위원장의 선출과 집행위원회의 구성은 유럽연합이 그 동안 반복해서 치러왔던 과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2019년 이후 유럽통합의 전망에 큰 영향을 미칠 요소는 브렉시트의 향방이다. 보수당의 극단적인 지도자가 등장하여 노딜 브렉시트를 밀어붙이는 위험을 감수할지, 아니면 새로운 총선이나 국민투표를 거쳐 브렉시트 자체를 취소할지 아무도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딜 브렉시트와 브렉시트 취소라는 두 극단적 선택 사이에 협의된 브렉시트도 가능하다. 영국 선거 결과는 극단적 분열을 보여줘 미래를 예측하기가 그만큼 곤란하다.

영국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나머지 27개국의 유럽도 정치적 분열 또는 다양성이 강화된 모습이다. 유럽통합을 지지하는 신흥 중도 세력과 반대하는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모두 성장하면서 양극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런 상황이 유럽통합 문제를 정치화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동안 유럽통합은 중도 기민·사민 세력이 활발한 민주적 토론보다는 암묵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해 왔는데 이제는 통합 찬·반에 대한 진정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의회가 형성되었다는 의미다.